여전히 창밖은 짙은 어둠이 깔려있고 도로는 간간히 지나는 차들을 제외하곤 적막한 평화로움이 감돈다. 제이는 이 새벽의 차가운 공기가 참 좋았다.
커피를 한잔 내려 들고는 서재로 향한다.
12월 31일 갑자기 새벽에 일어나기로 결정을 하고 기상시간을 4시로 세팅을 해두었다.
새해가 되면 으레 무언가를 결심하고 새 마음 새 뜻으로 시작하는 것이 국룰과도 같은 제이였지만 그간 절대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새해 도전 리스트가 '새벽기상'이었다.
평소 심각한 불면증을 달고 살았던 제이는 지난 몇 달은 한두 시간도 채 자질 못할 만큼 밤을 새우는 일이 늘었다.
새벽 4시는 최근 겨우겨우 잠에 들던 시간이었다. 해가 뜨는 시간이 다가올 즘에서야 업무에 차질을 줄까 불안함에 급하게 눈을 붙였다 떼곤 했다. 그 시간이 3시에서 4시 사이였다.
그래서일까 호기롭게 4시에 일어나겠노라 땅땅 외치고는 그 시간에 일어나기 위해 일찍 잠들기 도전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불가능할 것 같던 일찍 잠에 들고 일찍 일어나는 새벽기상이 시작되었다.
처음 몇 주는 뜬눈으로 밤새고 하루에 1시간을 겨우 잠든 날도 더러 있었다.
일어나는 것에 포커스를 두니 생각보다 기상이 어렵지 않았다.
잠을 자지 않더라도 4시부터 그냥 일상을 시작하면 되는 것이니 피곤함을 제외하곤 괜찮은 듯 보였다. 오히려 거슬리는 것은 눈을 뜨고 움직이기까지의 침대 위에서 꽤나 허비되는 시간들이었다.
혼자만의 의지만으로 어렵겠다 싶어 5시에 기상 챌린지를 하는 팀들에 등록하며 같이 기상인증을 시작했다.
타인에게 피해 주는 것을 극도록 싫어하는 제이에게는 타인을 깨워줘야 하는 의무가 생기니 그보다 강한 동기부여는 없었다. 일어나는 것은 이제 괜찮은데 잠드는 것이 문제였다.
잠에 들기 위해 커피도 한동안 끊고 몸을 아주 피곤하게 만들어 보았다. 하루의 루틴을 짜서 빠듯하고 타이트하게 굴려보았다.
그랬더니 3일에 한번 꼴로 몰려든 피곤함에 지쳐 쓰러져 잠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3개월, 6개월, 그리고 1년이 되었다.
일어나기 위해 잠드는 일상을 만들며 새벽의 시간들이 변화되기 시작했다.
제이는 조용한 새벽시간 오롯한 나만의 시간이 좋았다.
소소하지만 작은 행복감들은 무너졌던 제이의 마음을 조금씩 단단하게 채워주는 듯했다.
새벽에 하고픈 일들이 늘어난 제이는 아직도 넘쳐나는 버킷리스트를 마주하며 새벽에 할 수 있는 일들을 추려본다.
책을 읽고 영어 공부를 하고 새로운 경제개념을 공부하는 것을 새벽일상에 넣어보았다.
그림을 그리고 운동을 하는 것도 넣어보았다.
또 욕심이 넘쳐흐른다.
제이는 가만히 모닝커피를 한잔 마시며 책상에 앉아 눈을 감고 지워낼 것을 생각해 본다.
'그림은 일주일에 한 번씩, 운동은 새벽에 30분만, 영어공부와 경제개념 공부를 함께 하면 시간이 줄어들겠구나, 영문 기사를 찾아 읽으며 공부를 해야겠다. 책은 잠들기 전에 읽는 것으로 하자. 그렇게 시작된 하루하루가 쌓여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되면 지금과는 조금 다른 내가 되어 있겠지. '
제이는 가만히 눈을 뜨고 영문기사를 찾아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제이의 아침 평화는 가족들에게 조금씩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잠결에 엄마가 옆에 없음을 느낀 아이는 새벽부터 잠이 깨 엄마를 찾아 서재로 오고 덩달아 이른 아침이 함께 시작되었다.
학습지를 하고 아침을 챙겨 먹었다. 그 덕에 제이의 루틴은 아이의 일상을 케어하는 것이 하나 더 들어와 기존의 루틴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제이는 안 먹던 아침을 챙겨 먹기 시작했고 좋아하지 않던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새벽기상을 시작한 제이가 아침마다 식사를 챙기기 시작하자 조금씩 살이 찌기 시작했고 늘 말로만 했던 운동을 시작하기로 했다. 제이가 운동을 하려 한 시간에 남편이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제이의 조용한 새벽이 가족들과 시끌벅적하게 바뀌고 있었다.
그녀가 새벽 기상을 한지 어느덧 1년이 되어갈 즈음이었다.
그녀의 표정은 1년 전 그해 겨울의 것과는 사뭇 달라져 있었고 조금 더 단단해져 있었다,
제이는 불만 쌓인 마음이 조금씩 감사함으로 변화해 감을 느껴갔다. 그녀의 일상이 고작 일어나는 시간이 달라지는 것으로부터 이렇게 쉽게 변할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었다.
하지만 작은 변화의 시작은 그녀로 하여금 다시 20대의 용감했던 '미친년' 제이를 서서히 불러내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반갑고 그리운 마음으로.
세상이 미친 속도로 바뀌고 있었다.
제이는 불안감을 누르고 자신만의 속도감으로 시간을 만들어가려 옆에 덮어두었던 책을 집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