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의 글폭격에서 살아남기
“가을이 오면 바람이 잎사귀에 정갈하게 흔들린다. 달과 별을 만나는 이 소리는 날이 갈수록 그리움으로 몸집을 불린다….”
위 글귀가 어떠한가? 우리가 '감성적'이라고 할 수 있는 요소가 다분히 많은 글귀이다. 잎사귀가 정갈하게 흔들린다, 소리가 그리움으로 몸집을 불린다와 같은 표현들이 참 인상적이다. 가을을 배경으로 한 소설의 도입 같기도 하다. 문학적 감성이 부족한 나로서는 이런 문장을 쓸 수 있는 작가가 부러울 따름이다.
이 문장을 쓴 주인공이 누구인지 아는가? GPT-2이다. 어느 유명 작가의 필명일까? 아니다. GPT-2는 미국의 비영리 연구 단체인 "Open AI"가 개발한 AI이다. 위에 제시된 글귀는 성균관대에서 주최한 국내 최초 AI 백일장 대회인 AI X Bookathon 대회에서 '가을이 오면'이라는 제시 문구에 GPT-2가 살을 붙여 완성한 글귀이다.(자료출처 - 2019. 11. 25. 동아일보) 충격적이지 않은가? 이세돌이 알파고에게 지기 전까지 바둑이 그러하였듯, 글쓰기는 AI가 아닌 인간의 영역으로 간주되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위 글귀는 100% 인공지능의 작품은 아니다. AI X Bookathon 대회는 참가자가 한 단어 혹은 문장을 입력하면, AI가 다음 문장을 쓰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즉, 인간과 AI의 합작품을 만드는 대회였던 것이다. 이외에도 일본에서 권위 있는 문학상인 '호시 신이치상' 예심을 인공지능이 쓴 소설이 통과하며 큰 화제가 되었으나, 인공지능 개발자가 직접 소설의 80% 정도를 인간이 썼다고 밝히는 일도 있었다. 이러한 사실들은 그래도 글쓰기는 인간의 영역으로 남아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AI는 혼자서는 글을 쓸 수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AI는 혼자서는 글을 쓸 수 없는 것일까? 전혀 아니다. 이미 AI가 쓴 글은 우리 일상에 침투해있다. 다음 두 글 중, AI가 쓴 글을 찾아보자.
1. 8일 마산구장에서 열린 2016 타이어뱅크 KBO리크 NC와 한화의 경기에서 NC가 한화에게 5:4로 신승을 거두었다. NC의 오늘 기록은 9안타 1홈런이다. NC는 0:0으로 경기 중이던 1회 말, NC는 먼저 나성범이 2루타를 터트려 1점을 얻었다. 이후, NC는 추가 득점을 하면서 팀 승리를 이끌어냈다. 한화는 4점을 냈지만 NC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 KIA는 광주구장에서 열린 SK와의 2016 타이어뱅크 KBO 리그에서 7:4로 승리했다. SK를 주저앉게 만든 KIA의 오늘 기록은 10안타이다. 1회 말 김민우가 1득점을 뽑아내면서 스타트를 끊었다. 이후, 김주찬이 활약해서 KIA의 승리에 큰 역할을 했다. 4점을 뽑아내며 승리를 노린 SK의 노력은 물거품이 됐다.
1번? 혹은 2번? 구별하기 쉽지 않다. 사람의 글과 비교했을 때 눈에 띄는 차이점을 찾기 쉽지 않다. 정답은 '둘 다'이다. 모두 프로야구 기사를 쓰는 AI인 '야알봇'이 쓴 기사이다. 당신은 둘 중 하나는 인간이 썼을 것이라 가정하고 글을 읽었을 것이고, 두 기사를 모두 읽고도 여전히 그 가정에 의심을 품지 않았다면, 적어도 AI가 '사람이 썼다고도 간주될 수 있는' 정도의 글솜씨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위와 같은 뉴스 기사를 보면 적어도 '정보전달'이라는 측면에서는 AI가 '기자'를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AI가 '작가'도 대체할 수 있을까? 기자는 사실을 전달하는 사람이지만, 작가는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다. 작가의 글 속에도 '사실'이 포함되지만, 작가는 본질적으로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울림과 감동을 선사하는 사람이다. AI가 쓴 글이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까?
인간의 감정이 알고리즘의 산물에 불과하다면,
AI가 작가를 대체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AI가 쓴 글은 감동을 줄 수 없다 주장하는 사람들은, 글을 통해 감정을 자극하고 감동을 선사하는 것은 '공감'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이는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라 말한다. 즉, 마음의 공감이 '감정'을 자극해 '감동'을 선사하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AI의 알고리즘은 '마음'이 없기에 글을 통해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 그런데 '감정'이란 것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고, 단지 전기적 신호에 의한 알고리즘의 산물일 뿐이라면?
<사피엔스>의 저자인 유발 하라리는 그의 후속작 <호모데우스>에서 아래와 같은 사실을 밝혔다.
과학자들은 뇌의 한 영역에 격렬한 뇌우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당신이 분노를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 뇌우가 잠잠해지고 다른 영역이 켜지면 당신은 사랑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과학자들은 특정 뉴런에 전기자극을 주어 분노나 사랑의 느낌을 유도할 수도 있다. - <호모데우스> 중에서
위 발췌문에 따르면, 우리의 뇌를 관찰하면 우리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알 수 있고, 전기자극을 통해 특정 감정을 유도할 수도 있다. 미래를 추측하여 쓴 글이 아니고, 지금의 기술로도 충분히 구현할 수 있는 '사실'이다.
이 기술이 조금 더 발전한다면? 특정 단어와 문장을 읽을 때 우리의 뇌에서 어떠한 전기자극이 일어나고, 그 전기자극이 어떤 감정을 유발하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감정을 유발하는 단어와 문장들을 AI가 딥러닝을 통해 학습한다면? 빅데이터에 기반해 어떠한 표현, 문장 구조, 이야기 전개 방식을 사용했더니 사람들이 울고 웃더라는 것을 AI가 학습하게 된다면? 뇌의 전기자극이 감정으로 이어지듯, AI가 글이라는 매체를 통해 감정을 자극할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의 감정이 알고리즘의 산물에 불과하다면, AI가 작가를 대체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불행 중 다행으로, 아직까지 과학자들은 전기자극과 감정의 연관성만을 밝혀낼 수 있었다. 전기자극이 감정을 유발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감정을 촉발하는 '유일한' 요소인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우리에겐 아직 과학으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일뿐이다. 얼마나 가까운 시일 내에 과학자들이 감정의 메커니즘을 완벽히 설명해낼지 우리는 모른다. 앞으로 우리는 어떡해야 할까?
잘 쓰고, 잘살아야 한다.
개인적 생각이지만, AI가 글을 통해 사람의 감정을 만질 수 있게 되더라도 여전히 '인간 작가'의 역할은 남아 있을 것이다. 우리는 글을 보며 문자적 정보만 읽는 것이 아니다. 작가의 삶을 읽기도 하고, 삶과 글이 만나는 순간을 읽기도 한다. 김영하 작가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 중에는, 그의 소설뿐 아니라 '김영하'라는 사람 자체에 매료된 사람도 많다. '알쓸신잡'에 나오는 유시민 작가의 박식함에 매료되어 그의 책을 찾아 읽는 사람들도 많다. 이러한 작가들은 AI시대에도 살아남을 것이고, 이들의 글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힐 것이다. 이들은 잘 쓰기도 하지만, 삶의 단면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에게 울림을 선사할 만큼 잘 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잘 쓰고, 잘 살아야 한다. (TV에 나와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미디어에 노출되지 않고도 울림을 선사하는 작가들은 차고 넘친다. 도덕적, 철학적으로 잘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글쓰기 시장에서 AI 작가들이 차지하는 파이는 점점 커질 수 밖에 없고, 인간 작가들의 몫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그렇지만, AI를 압도할 수 있는 글쓰기 능력을 가진 작가, 글에서 읽히는 것 이상의 매력을 가진 작가, 무엇보다 잘 쓰고 잘살아서 삶이 곧 이야기가 되는 작가들의 존재는 더더욱 빛이 날 것이다. AI의 위협을 피할 수 없다면, AI가 가질 수 없는 것을 갖기 위해 힘쓰면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