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나답게 만드는 관종의 삶
나는 관종이다. 공모전에 제출할 글의 서두를 이렇게 장식하는 것부터 내가 관종임을 증명한다. 어릴 적부터 나는 다른 사람의 관심을 받는 것을 참 좋아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엔 공부도 운동도 그닥 잘하지 못했고 외모도 뛰어나지 않아 크게 주목받지 못했기에, 이에 대한 보상심리로 더욱 관심을 갈구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관심받는 것이 좋다. 정확히 말하면 타인에게 인정받는 것이 좋다. 이상한 행동으로 억지로 관심을 받는 '어그로 끌기'가 아닌, 내가 한 행동에 대해 박수 받고 인정 받는 것이 좋다. 다른 어떤 것보다 '인정욕구'의 충족이 나를 춤추게 한다.
초등학교 시절 화이트 데이, 빼빼로 데이든 무슨 '데이'만 되면 양손가득 먹을 것을 사가 거의 전교생 모두에게 뿌려대던 것도(심지어 부모님 지갑을 몰래 뒤져 나온 돈으로),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들의 편애 대상이던 심화반에 들어가고자 한 문제에 두시간씩 쓰며 풀리지도 않는 수학의 정석 실력편을 죽어라 푼 것도 다 누군가의 관심과 인정을 받기 위해서였다. 서울에 있는 명문대학교를 갈 수 있었으나, '집안 사정이 어려워 학비를 다 내주기가 어렵겠다.'라고 말하며 눈물 짓는 어머니의 모습에 학비가 저렴한 국립 사범대를 선택한 것 또한 내가 효자여서가 아니라 '효자'임을 부모님과 친인척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한 마음이 컸다.
비교적 성숙한 뒤에도 나는 한결같았다. 대학 시절 과대표, 학회장, 단과 대학 대표, 교회 회장까지 대표란 대표는 다 도맡아 하던 것도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 위함이었다. 대표라는 말이 거창해 보이지만, 규모가 작은 집단의 대표는 혜택도 없고 일만 많아 모두 회피하는 자리일 때가 많다. 임용고시 응시지역을 고를 때 굳이 달랑 2명 뽑는 경쟁률 높은 지역을 고른 것도 마음 한 켠에 '나는 이 정도 경쟁도 뚫어낸 사람이다.'라고 인정받고 싶은 생각이 있던 탓이 컸다.(그래서 재수했다.)
한 때는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쫓아다니는 내 모습이 싫었다. 관심과 인정을 받기 위해 굳이 안해도 될 일들을 맡아 했고, 과하다 싶은 친절을 주위에 베풀었으며, 원하던 만큼 인정과 칭찬이 돌아오지 않으면 우울에 빠지곤 했다. 이렇게 타인의 반응에 따라 휘둘리는 내 모습이 싫었다. 관심과 인정을 좇는 삶보단, 타인의 시선에는 신경을 끄고 자기 만족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결심했다.
그런데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째는 스스로 만족하는 것이 타인의 인정을 받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것이었다. 매슬로우(Maslow)의 욕구위계설에 따르면, 사람의 욕구는 가장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 위험을 회피하려는 안전 욕구, 소속감을 추구하는 사회적 욕구, 타인과 자신으로부터 존중받기를 원하는 존중 욕구, 마지막으로 자아실현 욕구로 이루어져있다. 생리적 욕구가 가장 낮은 수준의 원초적 욕구이고, 뒤로 갈수록 더 높은 수준의 욕구인 것이다.
욕구위계설이 명확한 근거가 없다며 비판도 많이 받지만, 매슬로우의 이론 뿐 아니라 다른 많은 욕구 이론에서도 타인의 인정을 추구하는 욕구보다 자기존중 및 자아실현 욕구를 보다 궁극적인 욕구로 분류한다. 당장 우리가 굶주리고 있거나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에서 타인에게 칭찬 받는 것은 신경도 쓰지 않는 것처럼, 낮은 수준의 욕구가 충족되지 못한다면 상위 욕구는 관심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하위 욕구인 인정욕구를 무시한 채 상위 욕구인 자아실현만 추구하겠다던 나의 결심은 허무맹랑한 것이었다.
둘째는, 점점 '타인의 시선 따윈 신경쓰지 않는 나'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했다. 분명 다른 사람의 관심은 무시하고 내 만족만 보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날 봐! 나는 다른 사람의 시선 따윈 신경쓰지 않아! 멋있지?'라며 다시 한 번 관심을 온 몸으로 갈구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쯤되면 병이다. 한 번 관종은 영원한 관종인가 보다.
그냥 관종으로 살기로 했다. 관종이면 뭐 어떠한가? 일부러 다른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어 관심을 끄는 '어그로꾼'이 아니라, 나서서 일도 하고 칭찬만 후하게 해주면 좋다고 뭐든 하는 이런 관종 한 명쯤은 있어도 괜찮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런 사람이 과연 나 뿐일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는 사람은 누구나 관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를 좋아한다. 무관심보단 관심이 좋고, 비난보다는 칭찬을 좋아하며, 혼자보다는 여럿이 좋다. 혼자이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들 또한 가족이나 친한 친구 한 둘은 필요하다. 단지 사람마다 필요한 사람의 수와 관심의 정도가 다를 뿐이지, 우린 모두 관종이다.
관종임을 인정하고 관종으로 살기로 결심하며 나는 자유로워졌다. 돌이켜보면, 때때로 원하던 만큼 인정을 못받아 슬펐던 적은 있지만 그래도 관종의 삶을 살 때 나는 가장 나다웠다. 맡은 일을 마친 후에 누군가 해줄 칭찬 한마디를 기대하며 일하는 순간들이 즐거웠고,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찬사가 돌아올 때는 뛸 듯이 기뻤다. 또한 나의 관종스러움을 아는 지인들도 내가 사람들 앞에 나서고 적극적으로 행동할 때 '그래, 그래야 너지.'라며 인정한다. 가장 나다운, '관종스러움'에 대해 쓰니 이 글도 지금껏 쓴 글 중에 가장 수월하게, 즐겁게 썼다.
우리 모두 타인의 인정이 필요한 관종이다. 지나치게 타인의 시선만을 보고 사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인정받기를 추구하는 것 자체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이 달리 있는 것이 아니다. 관종임을 인정하고 나는 나다움을 찾았다. 당신 또한 관종이라면, 나처럼 인정하고 살아보기를 추천한다. 살짝 미치면 인생이 즐겁다.
- 화려한 조명이 나와 여러분을 감싸길 바라며, 한 관종이 다른 관종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