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주유소에서 주유를 하던 어느 날이었다. 연료 잔량을 보니 5만원 정도 주유할 수 있을 것 같아 선불로 5만원을 결제한 후 주유했다. 생각보다 남은 기름이 많았던지 4만원을 조금 넘어가는 순간 덜컥하는 소리와 함께 주유가 멈춘다. 이때부터는 휘발유와의 눈치싸움이 벌어진다. 넘치지 않을 정도로 휘발유 거품을 달래며 계속 주유한다. 4만 7천원을 넘어가니 이제 몇 방울만 더 넣으면 넘쳐흐를 것 같다. 아쉽지만 정량 버튼을 누른 후 4만 8천원에 주유를 마쳤다.
이렇게 선결제한 금액보다 적은 금액을 주유하면 셀프 주유기가 실제 주유 금액을 먼저 결제한 후 선결제 금액을 환불해준다. 그런데 하필 잔액이 얼마 남지 않았던 체크카드로 결제해서, 실 주유 금액을 결제할 잔액이 부족했다. 카운터로 가라는 알림이 주유기에 떴고, 주유소 사장님이 날 불렀다. 48000원 결제 실패라고 적힌 영수증을 건네받으며 사장님이 물었다.
"얼마 결제했었어요?"
"5만원이요."
잠시 사장님이 멈칫하시더니, 이내 사무실로 들어가시는 사장님의 등 뒤로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린다.
"거 2000원을 더 못 넣어서..."
배시시 웃으며 죄송하다 사과했지만, 결제를 마치고 주유소를 떠나는 순간까지 사장님의 표정은 어두웠고 말 한마디 더 하지 않으셨다.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2000원이든 20000원이든 굳이 저렇게 말할 일인가?', '내가 나이가 어려서 저런 식으로 대하나?', '뭐 급한 일을 하던 중이셨나?' 하는 등 별생각이 다 들었다. 2000원이면 휘발유 2리터 가격이 채 안 되는 금액이다. 물론 어찌어찌 잘 주유하면 넣을 수 있었겠지만,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주유를 멈췄는데 그 이유로 타박을 들은 것이 썩 유쾌하지 않았다. 어쨌든 난 돈을 지불한 고객 아닌가! 왜 꼭 안 해도 될 말을 해서 기분을 망쳐놓는 것일까.
'마지막 한마디'가 기분을 망치는 일은 일상에서 무수히 겪는 일이다. 공부하라고만 하면 될 것을 꼭 '커서 뭐가 되려고'라고 덧붙이고, 그냥 잘못했다고 사과하고 끝내면 될 것을 '근데 너도 이건 잘못했어.'라고 덧붙인다. 맛있게 잘 먹었다고 하면 될 것을 '국만 좀 덜 짜면 좋겠다.'라고 훈수를 두고, 옷이 예쁘다고 하면 될 것을 '가격 대비'를 꼭 덧붙여 칭찬을 안 하느니만 못한 상황을 만든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내 아내는 성격이 꼼꼼한 편이 아니라서 해야 할 일이나 챙겨야 할 물건들을 자주 잊곤 한다. 연애할 때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다. 그럼 그냥 내가 한 번 더 챙겨주고, 잊지 않도록 상기시켜주면 될 것을 꼭 한마디 씩 더해서 아내의 화를 돋운다.
"신분증이랑 도장 챙겼어?"
"응, 챙겼지."
"잘했어."
이렇게 끝났으면 아주 좋으련만, 꼭 마지막 한마디를 하고야 만다.
"또 까먹을까봐."
이 날 아내의 기분을 풀어주느라 참 애를 먹었다. 아내가 또 까먹을까봐 걱정할 수는 있지만, 그럼 그냥 챙기라고만 하면 되지 굳이 면박을 줄 필요는 없다. 1분만 지나 생각해봐도 안 할 말을 왜 굳이 던지는 걸까? 우리는 모두 나름 타당한 이유를 가지고 한 마디씩 덧붙인다. 걱정돼서, 답답해서, 혹은 이해할 수 없어서. 그렇지만 내 나름의 이유가 상대방에게 한마디 쏘아붙일 권리를 주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내가 한마디 더 한다고 상대방이 달라지던가? 백 날을 해도 백 번 싸우기만 할 것이다.
참자. 한 마디만... 한 마디만...
원체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 '마지막 한마디' 법칙에 벗어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바꿔 말하면, 우리 대부분 굳이 안 해도 될 '마지막 한마디'를 하며 산다. 딱 한마디만 덜어내자. 한마디를 더하면 백 마디 싸움이 되지만, 한마디를 참으면 평화를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