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똑같은 하루도 다르게 사는 방법.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퍼지기 전인 2020년 1월 13일. 저와 아내는 부다페스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결혼 후 4개월밖에 되지 않은 때에 큰돈을 쓰며 굳이 유럽여행을 해야 하나 싶은 마음에 그다지 여행을 가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아니면 한 달 동안 유럽여행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평생 없을 것이라는 아내의 의견에 동의해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이 글은 여행기가 아니니, 자세한 유럽 여행담은 이후 다른 글에서 풀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한 달 동안 유럽 7개국을 여행하며 맛있는 것도 먹고, 루브르 박물관, 에펠탑, 베를린 장벽, 융프라우 등 멋진 곳들을 구경하였습니다. 여행은 굉장히 좋았고 많은 것을 보긴 했는데,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정확히 뭐가 좋았는지 콕 집어 설명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여행이란 것이 원래 그런 것이지 싶기도 하지만, 평생 다시 갈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여행을 다녀왔는데도 여행 중 내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무엇이 그렇게 좋았는지가 점점 희미해져 갔습니다.
그렇게 다시 일상에 적응하던 어느 날, 김영하 작가의 '오래 준비해온 대답'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오래 준비해온 대답'은 김영하 작가가 시칠리아에서 생활하며 쓴 여행 에세이입니다. '알쓸신잡' 속 김영하 작가의 모습과 말들을 통해 '참 멋진 사람 같다.'라고 느꼈기에, 기대하는 마음으로 첫 페이지를 넘기고 책을 탐독하였습니다. 책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 느끼는 게 다를까?"
분명 비슷한 광경을 봤는데, 저에겐 특별히 와 닿지 않았거나 기억조차 나지 않을 만한 광경에서 김영하 작가는 더 많은 것을 보았고, 느꼈으며, 그 경험에 대한 기록물은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그냥 흘려버리는 하루의 일상과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베스트셀러의 양분이 되는 멋진 이야기가 된 겁니다. 누군가에겐 짜증 나고 지루한 하루가, 다른 누군가에겐 자기반성과 성장의 밑거름이 됩니다. 똑같은 하루를 살아도, 누군가는 하루만 지나도 잊을 시간을 살고, 누군가는 후대에 영영 기억될 시간을 삽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똑같은 하룬데?"
"똑같은 하루를 다르게 사는 방법"
우린 모두 하루 24시간을 살아가고, 경험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살아갑니다. 직업과 환경에 따라 경험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대한민국 영토 안에 살며 하루를 살아가는 평균적인 모습들이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하루를 지각하는 방식이 다르다면, 그 차이는 무엇일까요? 많은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기록'의 유무라고 생각합니다. 기록하지 않은 경험은 쉽게 잊히고, 기록의 과정을 통해서 그냥 흘려보냈을 기억도 곱씹으며 그 의미와 가치를 되새겨볼 수 있습니다. 순간순간, 매일매일 가졌던 경험과 감정을 기록했더라면, 저의 여행 경험 역시 조금은 다르게 기억되지 않았을까요?
흘러가는 삶의 경험과 감정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에 브런치를 시작합니다. 일상에서 그저 흘려보낼 수 있는 이야기, 되새김질하듯 곱씹지 않으면 그저 불쾌한 기억으로 치부하며 넘겨버릴 그런 경험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반성해보기 위해 글을 쓰려합니다. 이 글을 읽으신 당신도, 짧게라도 하루에 대한 기록을 써보시는 게 어떠신가요? 어쩌면, 평범하다 느낀 우리의 하루는 생각보다 꽤 괜찮은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