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나 작사가의 심사평을 통해 본 상대의 속마음을 만지는 공감의 기술
그 중요성을 익히 잘 알면서도 실천하기 참 어려운 일들이 있다. 내게는 '공감'이 그러하다. 교사로서 학생, 동료 교사, 학부모 등에게 공감해야 한다는 말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고, 스스로도 자주 되뇌며 반성하지만 내가 정말 공감 능력을 갖춘 사람인지 자신이 없다. 내 마음 하나 건사하기 힘든 삶 속에서 오롯이 남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능력도 여력도 없고, 공감을 위해 취하는 행동과 말 한마디가 자칫 값싼 동정이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도 든다.
상담 기법 중 '감정 되돌려주기', '사실 되돌려주기'와 같은 기법들이 있다. 가령, 직장에서 공을 가로채가는 상사의 이야기를 듣고 '상사가 너의 공을 가로채갔구나.'라고 되돌려주는 것은 '사실 되돌려주기'이고, 그로 인한 속상함을 상대가 토로하면 '상사가 그렇게 행동해서 네가 많이 속상했구나.'라고 되돌려 주는 것이 '감정 되돌려주기'이다. 일상에서 이런 기법들을 실천해보려 노력했지만, 과연 내가 진정 저 사람에게 공감하고 있는지, 이게 저 사람에게 위로가 되기는 할지 의문이었다. 진정한 공감이 무엇인지 체감이 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진정한 '공감'이 무엇인지 한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싱어게인'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다. 엄청난 개성과 실력을 갖춘 무명가수들의 무대가 유튜브 100만, 1000만 조회수를 달성하고, 무대마다 보는 이들의 탄성과 눈물을 자아내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있는 참가자들 못지않게, 심사위원들의 심사평 또한 주목을 받고 있다. 그중에서 김이나 작사가는, 심사평만 모아놓은 영상을 방송국에서 따로 편집해 올릴 정도로 마음을 울리는 심사평으로 주목받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J-7hnHzEuA
영상출처: Youtube - JTBC Voyage 채널
김이나 작사가의 심사평은 참가자들의 말과 노래 너머에 있는 마음을 꿰뚫는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 너머 숨어있는 속사람을 바라본다. '싱어게인' 속 11호 가수는 레이디스 코드 출신의 소정이다. 불의의 사고로 동료들을 잃고, 다시 활동을 하는 중에도 '불쌍한 그룹', '안쓰러운 사람들'이라는 시선에 매어 무대 위에서 마음껏 웃을 수조차 없었다는 11호 가수의 마음을 김이나 작사가가 만진다.
11호 가수가 속했던 그룹명을 듣고 사연을 알게 되자 김이나 작사가는 나지막이 '항상 이런 반응을 받았겠지.'라고 중얼거린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없음에도 사연만 듣고 11호 가수가 느껴왔을 감정을 짐작한다. 무대를 마친 후 김이나 작사가는 '사연을 배경 삼아 노래를 듣지 않았다. 그냥 너무 멋있게 봤다.'라고 말한다. 기쁨과 행복을 주고자 노래하는데 안쓰럽게 보는 시선들 때문에 웃으면 안 될 것만 같았다는 11호 가수의 속내를 담담히 만진다. 지나치게 상대의 입장에 몰입해서 동정하지도 않고, 상대의 감정을 지레짐작해서 함부로 말을 건네지도 않으며, 자신이 직접 개입해 도와주려 하지도 않는다. 그저 담담히 상대의 말속에 담긴 속마음을 듣고, 가장 듣고 싶었을 말을 해준다.
https://www.youtube.com/watch?v=OxVy7wAK0Jw&t=447s
영상출처: Youtube - JTBC Voyage 채널
30호 가수는 '싱어게인'이 낳은 최고의 스타 중 한 명이다. 매번 파격적인 무대로 큰 화제를 끌고, 독특한 캐릭터로 큰 인기몰이를 했다. 남부러울 것 없는 실력과 스타성을 가진 30호 가수이지만, 정작 자신은 스스로를 '애매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자신은 '충분히 예술적이지도, 대중적이지도 않고 충분히 락도 아니고 포크도 아닌 음악을 하고 있다.'라고 말하는 30호 가수의 마음을 다시 김이나 작사가가 만진다.
무대를 마칠 때마다 찬사를 받음에도 항상 자신은 '애매하다.', '보여줄게 더 없다.'라고 말하는 30호의 말 뒤에 숨어있는, 칭찬받기를 어색해하고 어려워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30호 안의 속사람을 발견한다.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 무대를 마치고 심사가 끝난 후에,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김이나 작사가가 마이크를 든다.
"30호 님이 자연스럽게 대중의 칭찬과 사랑을 받아주시기만 하면, 훨씬 더 멋있어질 것 같아요. 아마 사연이 너무나 길게 있겠죠. 그렇지만 충분히 크게 사랑을 받을 만하니 마음만 크게 열어주시면 좋겠는데."
김이나 작사가에 말에 30호는 눈물을 흘리고, 인터뷰를 통해 칭찬을 받아들인다는 게 본인에게는 참 힘든 일이었다고 말한다. 김이나 작사가의 말을 듣고 본인의 그릇이 자기 생각보다 조금 더 클 수 있겠다는 것을 알았다며 감사해한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과거의 사연에 대해 쉽게 말하지 않고 그저 30호 가수의 마음속에 있는 칭찬받기를 어려워하는 속사람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속사람에게 말을 건넨다.
사실 원래 김이나 작사가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약간 싫어했다고 하는 게 정확할 것 같다. 곡을 쓰고 노래를 하는 뮤지션들에 비해, 작사가라는 직업은 상대적으로 편하게 돈을 버는 것 아닌가 하는 편견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사람들의 속사람을 통찰하고, 적확한 표현으로 상대의 마음을 만지는 가사를 만들기 위해 쏟았을 노력과 마음이 느껴지니 어떻게 그녀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성공한 작사가가 될 수 있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내 말도 그녀의 말과 가사와 같은 위로의 힘이 있었으면 좋겠다. 학교에서 만나는 학생들의 말만 듣고 상처 받고 화내고 또 상처 주지 않고, 학생들의 말과 행동 안에 숨은 속사람을 보고 위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진정한 공감은 교과서에서 배운 상담 기법 속에 있는 것이 아니었고, 관찰할 수 있는 행동 속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겹겹이 쌓인 담벼락 너머에 있는 상대의 가장 내밀한 속사람을 보는 것. 그것이 곧 공감이다. 내 말과 행동이 조금 더 성숙해져서, 상대의 말과 행동 속에 숨은 속사람을 마주 볼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