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그게 내 인생에 무슨 상관인데?
'김00가 전에 산 아파트 분양권이 1억이 올랐다던데?'
'xx 삼촌이 이번에 주식으로 대박이 났대!'
주변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수도 없이 접했을 것이다. 가까운 사람이 투자를 잘해서 돈을 벌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아 나도 그 주식 사려고 했었는데.' 혹은 '그때 나도 집을 샀어야 했는데.' 하는 마음이 들고, 남들 다 돈 버는데 나만 홀로 소외되는 것 같다. '벼락 거지'라는 말이 생겨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가만히 있었지만, 가만히 있었기에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느낌을 받는 것이다. 이런 기분이 들기 시작하면 우리의 평화로운 일상은 깨진다. 분명 아무 문제없던 삶에 불만이 싹트게 된다.
그런데, 왜 지인의 소식을 듣기 전까진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일까? 부동산과 주식으로 돈을 버는 사람이 이전에는 없었을까? 아니다. 코로나 이후의 활황장세를 지나며 워낙 수익을 본 사람이 많아지긴 했지만, 불황장에서도, 소위 '박스피' 장에서도 투자로 큰 수익을 올린 사람들은 늘 있었다. '내 옆에' 없었을 뿐이다. 우리가 자신의 현재 상태에 불만을 갖고 투자 대상에 대해 갑작스럽게 큰 관심을 쏟는 이유는 '내 옆에' 수익을 올린 사람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뉴스에서 수십억을 번 투자자의 이야기가 나오면 우리는 '저 사람은 전문가니까.'라고 생각하며 별생각 없이 넘긴다. 나와 전혀 상관이 없는 '남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옆에 투자로 성공한 사람이 나타나면 더 이상 그 일은 '남 이야기'가 아니다. '내 이야기'의 한 장면이 된다. 구전되어 오는 속담이 '나라님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가 아니라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인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똑같은 사건도 내 주변에서 일어나면 나에게 의미 있는 사건이 되고, 비로소 우리는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바로 여기 '진짜 공부'의 요령이 숨어있다. 비록 지인의 성공에 배는 좀 아프겠지만, 잠시 감정은 치워두고 지인의 성공담이 나에게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지 생각해보자. 주변 사람이 부동산 투자로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를 생각해보자. 당신은 적어도 지인이 어느 지역에 있는 주택, 혹은 상가를 샀는지 정도는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전해 들은 말이나 부동산 애플리케이션에 나오는 정보로 그 부동산의 시세 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고, 좀 더 적극적인 사람이라면 지인이 어떤 방식으로 자금을 마련해 투자를 했는지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신문기사에 누군가의 성공담이 나왔을 때, 그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떤 투자 대상을 선택했고, 어떤 방법으로 돈을 조달했는지를 주의 깊게 읽은 적이 있는가? 기억하고 있는 사례가 있는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그 기사는 '남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 이야기' 속 사건에 대해서는 우리는 학습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어도 많은 것을 배운다. 이것이 바로 '진짜 공부'를 위한 첫걸음이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의미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엄청난 학습력을 발휘한다.
투자뿐 아니라 다른 분야까지 지평을 넓히면, 위의 '의미의 법칙'은 우리가 무언가를 배우는데 아주 유용한 법칙이 될 수 있다. 무언가 배우고 싶은가? 배워야 하는가? 그렇다면 그 일을 내 삶에 의미가 있는 문제로 만들자. 조금 추상적으로 들릴지 모르겠다. 사실 아주 간단하다. 일단 저지르면 된다. 투자를 공부하고 싶다면 아주 소액이라도 일단 투자를 하면 된다. 그때부턴 그 돈을 잃고 싶지 않아서라도 투자를 공부하게 된다. 일단 시작하고, 이익이 나면 왜 이익이 생겼는지, 손해가 나면 왜 손해가 생겼는지를 분석하고 반성해보는 것이 훨씬 빠르고 효과적인 공부 방법이다.
글쓰기를 하고 싶다면 일단 브런치, 네이버 블로그 등에 가입해 1주일에 1편씩 글을 쓰겠다고 선언하는 글을 올리면 된다. 운동이 하고 싶다면 일단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헬스장에 등록하면 된다.(물론 나도 이렇게 하고도 안 갈 때가 부지기수이다. 그래도 한 번이라도 가지 않나.) 가족이나 친구와 내기를 거는 것도 방법이다. 이렇게 일단 저지르고 나면 글쓰기든 운동이든 더 이상 '남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가 된다. 내게 의미 있는 일이 되고, 이 과정에서 무언가 문제가 생긴다면 그 누구도 아닌 내가 해결해야 한다. 일을 저지르고 문제에 부딪히며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진짜 공부'는 책이나 강의를 통해 배우는 수동적 학습보다 몰입도가 높을뿐더러 더 많은 것을 배우게 해 준다.
'의미'는 그 무엇보다 강력한 동기부여의 원천이다. '자기 결정성 이론'이라는 이론이 있다. 에드워드 데시(Edward Deci)와 리처드 라이언(Richard Ryan)이 주창한 자기 결정성 이론에 따르면, 학습자를 외재적 보상을 통해 동기 부여하려는 시도는 효과가 없으며, 내재적 동기 강화를 통한 동기부여만이 의미가 있다고 한다. 내재적 동기를 구성하는 요인으로 데시와 라이언은 자율성, 유능감, 관계성을 뽑는다. 타인과의 유대관계를 뜻하는 관계성은 제외하고, 앞서 말한 '의미의 법칙'은 학습자의 자율성과 유능감을 자극한다. 학습자가 학습을 강요받지 않고 스스로 학습의 과정을 통제하고 조절할 수 있을 때 학습자는 자율성을 느끼고, 능력이 발전함에 따라 유능감을 느끼게 된다. '의미의 법칙'은 이렇듯 내재적 동기를 자극해 학습을 촉진할 수 있는 학습법이다.
학습법에 관한 글을 부동산, 주식과 관련된 투자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한 이유는, 우리 삶에 가장 밀접해있기에 그만큼 '의미'가 큰 사례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이후 활황장으로 인해 명절날 가족들의 가장 큰 대화 주제가 '주식'일 정도로 투자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졌다. 이 과정에서, 이전에는 전혀 투자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투자를 시작하고, 대화와 스터디의 수준이 굉장히 올라갔음을 느낀다. 친구들 간의 대화에서 '재무제표', 'PER' 같은 단어들이 흔히 등장한 적은 지금까지 없었다. 투자에 대한 전 국민의 학습 수준이 굉장히 올라간 것이다.
이렇듯 '의미의 법칙'은 학습에 대한 엄청난 투자와 노력 없이도 우리의 학습 수준을 크게 발전시킨다. 앞서 말했듯 운동, 취미 등 어떤 목표를 정하더라도 활용할 수 있는 방식이다. 코로나 시기 주식으로 돈을 벌 기회는 놓쳤더라도, 이를 통해 깨달은 '의미의 법칙'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는 놓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