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고시 수석합격 이후에야 배우게 된 '진짜 공부'
스스로가 굉장히 뛰어난 사람이라고 믿고 살다 어느 순간 그 믿음이 깨지는 순간이 있다. 사실 내가 알고 있던 것은 너무나도 적었고, 우물 안에서 허우적대던 개구리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말이다. 그 순간의 충격은 때로는 지적 쾌감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대개는 꽤나 불편하고 자괴감을 일으키곤 한다. 나에게 그 순간을 선사한 것은 다름 아닌 '부동산'이었다.
나는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었다. 대한민국에서 '공부를 잘한다.'라는 것은 곧 '성적이 좋다'는 의미이다. 중위권으로 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맘 잡고' 공부를 시작한 지 몇 달만에 전교 상위권에서 놀 수 있었고, 수능에선 대부분의 과목에서 1등급을 받았다. 이후 사범계열에선 꽤 알아준다는 대학교에 진학했고, 재수를 하긴 했지만 3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임용고시에 수석 합격했으니 이 정도면 전통적인 의미에서 '공부를 잘한다.'라고 하기엔 부족함이 없지 않나 생각한다.
임용고시에 합격하고 초임 발령을 받은 그해, 교제하던 여자 친구와 결혼하게 됐다. 현 와이프이자 전 여자 친구 역시 나보다 1년 먼저 임용에 합격한 교사였다. 사회생활 0년 차와 1년 차가 돈을 모으면 얼마나 모았겠나. 모아놓은 돈이라곤 여자 친구가 모은 2000만 원이 전부였고, 양가 부모님의 경제사정도 넉넉지 못해 총 1000만 원 정도의 지원을 받은 것이 다였다. 심지어 초임 발령지가 멀어 캐피털을 끼고 할부로 차를 구입해 빚도 1000만 원이 넘게 있었다.
가용자금 3000만 원만으로 결혼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사회초년생들에게 필요한 경제 지식을 알려준다는 책을 읽으며 버팀목 전세자금이라는 제도를 알게 되었다. 전세가의 70%까지 대출이 가능해 고작 3000만 원만 가지고도 1억짜리 전셋집을 구할 수 있었다. 그렇게 행복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엘리베이터도 없고 20년도 넘은 5층짜리 구축 아파트였지만, 교통 편리하고 주변 상권이 잘 발달한 곳에 위치한 21평 방 3개 아파트 공간은 신혼부부가 안락한 삶을 누리기엔 충분한 공간이었다.
부동산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조금 전 신혼집에 대한 설명을 읽으며 '잠깐만, 장난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을지 모르겠다. 20년도 넘은 5층짜리 입지 좋은 아파트. 이는 부동산 투자자들의 구미를 당길 수밖에 없는 내용이다. 고도제한이 있던 시기에 지어진 5층짜리 아파트 단지는 재건축이 된다면 세대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어 수익률이 굉장히 높은 투자대상이다. 그렇지만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내디딘 꼬마 직장인들에게는 보일 리가 없는 것들이었다.
신혼 생활을 시작한 후 전셋집을 알아보느라 설치했던 부동산 애플리케이션들을 간간이 열어보게 되었다. 그런데, 전세를 알아보던 때만 해도 전세가와 큰 차이가 없던 매매가가 단 두세 달 만에 몇 천만 원이 올라가는 게 아닌가? 급기야 입주 후 6개월이 지난 후에는 1억이 올랐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는 더 올라갔다.
'도대체 왜 가격이 올라가는 거지?' 하는 마음에 처음으로 부동산 서적을 구입했다. 지금은 '월급쟁이 부자들'이라는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계신 너바나 님의 '나는 부동산과 맞벌이한다'와 '너나위'님의 '월급쟁이 부자로 은퇴하라'를 읽고서야 왜 이 집은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었고, 내가 얼마나 좋은 투자기회를 놓친 것인지 알게 되었다. 당시는 부동산 대출 규제 같은 것도 전혀 없었고, 교직원공제회에서 제공하는 복지 대출을 활용하면 큰 무리 없이 집을 구입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부동산 관련 지식이 전혀 없었고 고작 책 한 권 읽었을 뿐인 나에겐 '매매'는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부동산 투자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글은 아니니 부동산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이 과정을 통해 나에게 일어난 변화들에 대해 주목해보자. 눈 앞에서 큰돈을 벌 기회를 놓친 나는 그때부터 부동산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관련 서적을 읽고 유튜브를 보기 시작했고, 지역에서 좋다고 소문난 아파트들을 찾아다니며 '왜 이 아파트는 비쌀까?'를 고민하며 임장을 하기도 했다. 수업 준비와 업무에 바빠 책을 읽을 시간이 부족하니 평소보다 1시간씩 일찍 일어나 책을 읽기도 했다. 이러한 변화 자체도 놀랍지만 더 놀랐던 점은 이 모든 공부의 과정이 즐거웠다는 점이었다.
종교인이신 부모님 밑에서 자라며 금융, 재테크에 관한 교육이라곤 '아껴라', '저축해라' 밖에 없던 나에게 진정한 재테크와 투자 세계에 관한 지식은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다. 부동산을 넘어 재테크 전반에 대한 공부와 소소한 투자를 진행하며 그때그때 필요한 것들을 공부해가는 과정은 난생처음으로 배우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를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제야 나는 지금껏 내가 해왔고, 잘한다고 믿었던 공부는 반쪽짜리 가짜 공부임을 깨달았다. 수업을 듣고 교과서와 전공 서적에 있는 내용을 이해하고, 그에 기초해 답이 정해진 문제를 푸는 공부. 이런 공부로 배운 것들은 사회에서 쓸모가 없었다. 물론 그런 학습의 과정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었겠지만, 세상에는 그런 학습으로 해결할 수 없는 '진짜' 문제들이 너무나도 많았고,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이야말로 진정한 학습의 과정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지나 봐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했던가. '진짜 공부'를 경험하고 나니 세상을, 학습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었다. 작금의 시대를 우리는 평생학습의 시대라고 부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면 지긋지긋한 공부를 안 해도 될 줄 알았던 이전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참으로 무서운 시대이다. 평생 그 지긋지긋한 공부를 해야 한다니! 그러나 '진짜 공부'를 경험하고 나면 평생학습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진다. 성장해가는 즐거움을 느끼고,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어 변화하고 성장해나가는 즐거움으로 가득 찬 삶이 바로 평생학습의 삶이다.
내가 느낀 '진짜 공부'의 즐거움을 다른 사람들과도 나누기 위해 브런치 북을 쓰기로 했다. 부동산뿐만 아니라 내게 '진짜 공부'에 대해 깨닫게 해 준 경험과 지식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진짜 공부'를 하기 위한 방법론과 환경을 조성하는 방법들에 대해 이야기 할 것이다. 세상은 넓고, 공부할 것은 너무나도 많다.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만한 놀라운 지식들도 너무나도 많다. 이 모든 것들은 기존의 학습 매커니즘에 따라 암기하는 방식으로는 학습할 수 없다.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투하는 '진짜 공부'를 통해서만 학습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그래야만 이 모든 학습의 과정을 즐길 수 있다. 이어질 나의 글들이 여러분을 '진짜 공부'의 즐거움으로 초대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