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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이리 May 01. 2020

깜깜 밤중의 선물 같은 일들

미스 제주댁 이야기 | #제주의밤 #제주살이 #저녁이있는삶



우리가 불을 끄면 온 세상이 깜깜 밤중인 것만 같은 한적하고 작은 동네. 거리를 밝히는 등이 없어 육지보다 훨씬 이른 시각, 이 곳은 한밤중이 되어버린다. 한 달이라는 시간만이 허락된 우리에게 섬의 이른 저녁은 늘 아쉽고 서운한 마음이다. 왠지 우리의 시간을 앗아가는 것만 같달까. 슬슬 해가 퇴근하려는 듯 하늘이 어둑어둑해지는 저녁 6시가 되면 매일 같이 허공에 대고 그렇게 ‘가지 마!’를 외쳐댄다. 어느 하나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사실, 일찍 시작되는 저녁은 제주스럽다 여겨지는 것들 중 가장 대표적인 하나이며 위에서 언급한 작-은 아쉬움을 제외하면 좋은 점이 훨씬 많다.


육지에서 가질 수 없었던 저녁이 있는 삶이 있다. 대부분의 가게들이 일찍 영업을 끝내고 술과 함께 그윽한 흥취를 즐길 수 있는 곳들을 동네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든 덕분에 누릴 수 있는(어쩌면, 누릴 수밖에 없는) 제주의 특권이다. 우리가 섬에서 사는 것이 좋은 이유 중 하나로 꼽는 것이기도 하다. 밖에 있다가도 저녁 6시가 되기 전, 자연스럽게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한다. 오늘 저녁은 집에서 무얼 해 먹을까, 어떤 것을 하며 함께 저녁 시간을 보낼까에 대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하루의 루틴 중 내가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다.





내게 있어 가장 좋은 점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가장 골칫덩이였던 불면이 해소되었다는 것이다. 제주로 넘어오는 날까지 나의 불면은 최고치를 찍고 있었다. 모두의 걱정거리인 먹고사는 문제가 꽤나 오랜 기간 내 머리를 복잡하게 하고 있었고, 코로나가 기승임에도 시끌시끌한 대학가에 살고 있는 것도 한몫을 차지했다. 3일 동안의 수면시간을 모두 합쳐도 10시간이 채 되지 않았으니, 심각한 편이었다. 섬에 오면 좀 다를까 기대해봤지만 새벽에 일어나 뒤척뒤척한 것이 사흘째 계속되기에, 이번 생에 불면을 고치기는 글렀나 보다 하며 포기하려고도 했다. 신비의 섬의 신묘한 힘은 제주에 온 지 나흘이 되던 날부터 나에게 효력을 발휘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낮잠을 포함해 하루에 9시간 정도, 불면이 있었던 사람이 맞나 싶을 만큼 깊은 잠에 빠져든다. 심지어 저녁 11시-12시 사이에 잠들어 아침 7-8시면 일어나는 바람직한 생활 패턴이 자리 잡았다. 신기할 따름이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수 있지만, 제주를 사랑하는 나는 굳게 믿고 있다. 다른 이유는 없다고. 평온한 섬의 고요한 밤이, 내 머리와 마음까지 평온하게 만든 것이라고.





제주의 밤이기에 누릴 수 있는 또 하나의 특권은 머리맡에 놓아둔 마지막 불씨까지 꺼버렸을 때 비로소 나타난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 눈 앞에서 반짝이는 별이 그것이다. 다이아몬드를 가져와도 이보다 반짝이고 아름다울까. (TMI : 아직 다이아몬드를 실제로 본 적 없음) 커튼 사이로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별들이 하나도 둘도 아닌, 수십수백 개가 펼쳐진 모습이 장관이다. 더 좋은 카메라와 사진 촬영 실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나 자신을 탓하게 되고, 더 오래 보고 싶은데 자꾸만 무거워지는 내 눈꺼풀을 원망하게 된다. 굳이 별을 보기 위한 특별한 장소를 찾지 않아도 된다. 제주에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내가 있는 곳이 명당이 될 테니.  


이 선물 같은 일들은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고요하고,

사람이 살고는 있을까 궁금해질 만큼 깜깜-한 제주의 밤이기에 가능하다.



오늘은 제주에 온 이후 처음으로 비가 쏟아지고 있다. 비 소식이면 자동으로 미간에 내 천(川) 자가 생겨나던 나였는데, 오늘은 왜인지 비 내리는 것이 싫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듯 설레 하는 내 모습에 괜히 쑥스러워, 비 오는 풍경을 바라보며 마음의 말을 툭 꺼내 놓았다.


비가 내리는 제주의 밤은 운치가 가득하겠지.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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