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제주댁 이야기 | #걷기여행 #올레길걷기 #개그듀오
올레길 한 코스를 시작하면 짧아도 3시간, 길게는 7시간가량을 함께 걷는다. 이 시간 동안에는 음악을 틀거나 게임을 한다거나 혼자만의 SNS에 빠지지 않으려 한다. 꼭 그러지 말자고 정한 건 아니지만 암묵적인 우리 둘의 룰이 되어버렸달까.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은 개인 시간을 보내기로 한 때, 간단한 일들은 한 사람이 업무적인 일로 통화를 하거나 화장실을 가게 되었을 때, 빠르게 해결한다. 걷는 도중 둘이 가장 많이 하는 일이라 하면 단연, 풍경과 마주하며 감탄하는 일이다. 그 외에는 틈틈이 우리가 걷는 길과 앞으로 가야 할 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거나 우리의 미래에 대해 의논하는 진지한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사실 대부분은 실없는 장난과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노래와 춤들의 퍼레이드를 이어가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올레길 한 편에 고즈넉한 제주의 집을 보며 저 집 너무 이쁘다. 우리 저 집으로 하자! 뜬금없이 던지는 실없는 말에 좋아! 25,000원 정도면 되겠지? 나 지금 500원밖에 없으니까, 자기가 좀 빌려줄래? 와 같은 식의 환상 속 뜬구름 티키타카는 이쁘다 생각되는 집이 보일 때마다 나오는 우리의 주요 레퍼토리다. 중간중간 아재 개그나 근본 없는 무반주의 막 노래, 막춤은 언급이 불필요할 만큼 기본 중에 기본. 우리의 이야기나 올레길과는 아무런 연관 없는 옛날 만화 주제가(이를테면 호호 아줌마)에 한번 빠지는 날은 큰일이다. 완주 스탬프를 찍고 집으로 갈 때까지 때로는 잠이 들기 전까지 그 노래만 수십 번을 합창하게 될 테니까. 참고로 오늘은, 꼬마자동차 붕붕과 지구용사 선가드가 메인 테마송 자리를 차지했다. 주로, 내가 좋아했던 만화 주제가들이 메인을 꿰차는 편이다. 이를 테면 위에 두 가지를 포함한 호호 아줌마, 카드 캡처 체리, 꾸러기 수비대와 같은 것들이 있다. 처음 내가 호호 아줌마 노래를 불렀을 때 신기하다는 듯 키득키득 웃으며 나를 쳐다본 그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충격이었다. 방글방글 아줌마 투덜투덜 아저씨 아줌마가 펼치는 꿈속 같은 이야기(호호 아줌마 주제가의 일부분)를 모르다니.
올레꾼이나 다른 사람들 곁을 스쳐 지나갈 때면, 서로에게만 들리게 떠들다가도 거의 귓속말 수준으로 소리를 낮추긴 하지만. 혹시나 우리가 우스개 부린 것을 듣거나 보셨다면 아마도 뭐하는 애들인가 하고 돌아보시거나, 이상한 애들이 있었다며 그 날의 식탁 위 화젯거리의 중심에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만큼 어이없는 농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도 텐션을 떨어뜨리는 법이 없고 도리어 2절, 3절을 이어가는 그와 나. B급 티키타카는 긴 시간, 많은 체력을 필요로 하는 올레길을 걸으면서도 언제나 신나고 재미있을 수 있는 우리만의 비결이다.
둘만의 B급의 티키타카가 계속되는 한, 우리의 걷기 여행도 계속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혼자서가 아닌 다른 누군가와 무슨 일을 하던 지 서로 간의 티키타카 즉, 코드가 잘 맞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나에게 그는 최고의 걷기 메이트이기에. 제주 올레길을 완주하고 나면 제주올레 자매의 길인 규슈올레와 몽골 올레를. 나아가 스페인 순례자의 길까지. 또 모르지. 누군가 이미 정해놓은 길을 걷는 것이 아닌, 우리가 걸으며 길을 만들어갈지도. 아무 의미 없고 실없는 말들이지만 그 어떤 재밌는 콩트보다 우리 둘에게 가장 큰 웃음을 주고 활력을 주는 것들. 나이고 너이기에 가능한 우리의 소소한 행복들이 지금처럼 끊이지 않는다면, 그곳이 어디든 얼마의 시간이 걸리든 지루함이 없이 두 발로 걷는 느림의 미학을 즐거움으로만 만끽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