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길 이야기 | #제주걷기 #올레길20코스 #추억여행
제주에는 나에게 있어 특별한 몇몇의 장소가 있다. 섬으로의 여행을 계획할 때마다 마음속으로 '이번엔 다시 들러봐야지' 생각하면서 한 번도 실천하지 못했던. 마주하게 되면 멈춰 서서 '그땐 그랬지'라는 마음의 그윽한 눈빛으로 한참을 바라보고서야 자리를 뜰 수 있는 그런 곳들. 그와 함께 왔던 몇 번의 제주에서 다녀간 여행지도 있지만, 대부분이 8년 전에 혼자 뚜벅이 여행을 했던 장소들이다. 혼자 여행을 했던 곳들이라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내 마음을 위로하고 표현하는 글을 쓰고 싶게 만들었던 또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곳들이기에 더욱 애틋하고 특별하다. 글을 쓰는 내가 태어난 고향이라고 할까.
20코스를 걸어보자고 그와 의논하며 지도에 적힌 김녕리, 평대리, 세화라는 익숙한 이름을 봤을 때 반가워 발을 동동 굴렀지만, 그때까지도 알지 못했다. 천천히 나아가는 우리의 걸음이 쌓이고 쌓여 추억 속 깊은 곳에 간직하고 있던 그 장소들에 닿을 것이라고는. 평소와 다르게 시작된 하루는 나를 특별한 장소에 차례로 데려다주었고 그곳에서 나는, 8년 전의 나를 다시 만났다.
저녁을 먹는 자리의 주된 이야깃거리는 단연 올레길이다. 그 날 걸으며 있었던 일들과 지나며 보았던 풍경들에 대한 되새김은 물론, 앞으로 걷게 될 코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눈다. 다음날 걸을 코스가 최종적으로 결정되는 것도 늘 저녁 식사자리였다. 항상 그랬지만, 어제만큼은 조금 달랐다. 전날 예상치 못한 제주의 강한 돌풍을 맞닥뜨린 탓이다. 맑음이라는 일기예보가 무색하게, 놀라울 만큼 매섭고 강했던 바람. 모든 준비를 마치고 시작 스탬프도 찍었지만 열 발자국을 채 떼지 못하고 걷기를 포기해야 했다. 내일, 걸을 수 있을까? 맑은 하늘에서 내리꽂는 섬의 돌풍을 경험하고 나니, 일기예보만으로 쉽사리 날씨의 변화를 예측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어떠한 것도 정하지 못한 채 잠들어버렸고 아침에 일어나 문 밖의 화창한 날씨와 잔잔해진 바람을 몸소 확인하고서야 오늘의 올레길 코스를 확정할 수 있었다. 20코스로 결정하게 된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이미 많이 지체되어버린 시간 때문에 빠른 결정이 필요했기에, 해안을 따라 쭉 걸을 수 있는 비교적 평탄한 코스로 결정했을 뿐.
올레길 20코스는 김녕 서포구에서 시작하여 구좌읍의 6개 마을과 제주 북동부의 아름다운 바닷가를 번갈아가며 지난다. 많은 사람들에게 비교적 많이 알려져 있는 김녕리와 김녕 성세기 해변, 월정리와 월정 해수욕장, 세화리와 세화 해변은 물론이며 행원리와 한동리, 평대리가 포함되어있다. 제주올레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자동차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그냥 지나쳐 버리기 쉬운 구좌읍의 마을들을 찾아 이어 만들었다고 한다. 초록빛 밭을 둘러싼 밭담과 색색의 지붕이 덮인 아담한 집을 감싸는 울담 사잇길을 따라 호젓한 동네를 누비다가, 끝이 보이지 않는 쪽빛의 해변에 감탄하며 해안도로 걷기를 반복하도록 되어있다. 비슷한 듯 보이는 마을과 해변을 걸으면서도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이유다.
김녕 서포구의 바다를 바라보며 시작 스탬프를 찍고 표식에 따라 김녕리 마을 안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게스트하우스 주인으로 추정되는 한 분께서 인사와 함께 종이 하나씩을 건네주셨다. '고장 난 길'이라는 이름이 적힌 안내서였다. 왜 하필 길 이름을 고장 난 길이라는 이름으로 지었을까. 의아했다. 손에 들린 종이를 자세히 살펴보니 모서리 한 편에 아주 작은 글씨가 적혀있었다. 제주어로 '고장'은 '꽃'을, '난'은 '피우다'라는 말을 뜻한다는 설명이었다. 금속 공예로 꽃 피우는 길이라. 그럼 그렇지. 숨은 뜻을 알게 되니 궁금증이 더해졌다. 단 네 글자에 홀린 듯 마을 안으로 들어가는 걸음을 재촉했다.
김녕리의 꽃 피우는 길은 국내에서 볼 수 없었던 금속 소재의 벽화 예술을 통해 김녕의 가치를 드러내고자 기획한 금속 벽화 프로젝트다. 아름다운 해변, 풍부한 바다자원에 역사적 존귀함을 가진 해녀마을까지. 김녕이 가진 풍부한 자원을 앞으로의 세대들에게 보존된 유산으로 남기고자 시작했다는 고장 난 길. 제주와 김녕리 그리고 해녀에 대한 이야기들이 여러 작가님들을 통해 예술작품으로 만들어져 이곳, 김녕리를 지붕 없는 미술관으로 만들어놓았다. 스쳐 지나가는 마을에서 꼭 가봐야 하는 마을로 만들겠다는 김녕리 사람들의 애정 어린 마음이 굽이굽이 이어지는 골목의 곳곳에서 반짝이며, 나아가려는 우리의 발걸음을 자꾸만 잡아끌었다. 육지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금속 벽화이기에 절로 시선이 끌리고 투박한 듯 섬세한 금속 공예가 고즈넉한 제주의 분위기와 찰떡같이 들어맞아 더 깊게 빠져들고야 만다.
벽화에 빠져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골목의 끝자락에 이르러 김녕리의 맑은 바다가 눈 앞에 펼쳐진다. 푸른빛 물결 위 조금씩 드러나있는 검은 돌 위에서 삼삼오오 모여 저마다 다른 자세로 낮잠을 청하는 여유로운 새들의 모습도 이따금 만날 수 있다. 물감을 칠해놓은 듯 아름다운 에메랄드 빛깔, 유독 투명한 바닷물과 조개류 껍데기로 이루어진 새하얀 모래가 드넓게 펼쳐져있는 곳. 평균 수심이 1~2m로 얕고 물결이 잔잔해 많은 여행자들이 사랑하는, 또 그와 내가 사랑하는 김녕 성세기 해변이다. 바다가 잘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잠시 걸음을 멈췄다. 여기 기억나? 한마디에, 해변을 바라보던 우리는 서로에게 손을 내어주었고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난해 그와 함께 제주를 여행하며 둘만의 첫 여행 스냅사진을 찍은 장소가 김녕이었다. 일 년 만에 다시 찾은 곳. 반가웠다. 우리를 찍어주셨던 작가님이 다른 커플과 촬영하고 있는 모습이. 여전히 인기가 많으시구나. 신기했다. 벌써 일 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것이. 시간이 참 빠르지? 작년에는 우리가 저기에 서서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에 맞서 촬영했었는데. 고마웠다. 짧은 듯 긴 시간 동안 변하지 않고 여전히 아름다운 채로 우리 앞에 있는 해변의 모습에. 해변이 너무 예뻐서 여기 한참을 머물다 갔었잖아.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인 요즘은 사람들이 많이 찾고 사랑하는 곳이라면 빠르게 상업적인 목적의 가게들이 들어서버리곤 하니까. 자연의 한적함이 좋아 찾았던 해변은 어느새 다닥다닥 붙어 지어진 건물들로 분주해지고, 빈틈없이 내 귀를 꽉 채워주던 시원한 파도소리는 쿵쾅대는 음악 소리와 빵빵대는 클락션 소리에 묻혀 쓸쓸함을 남긴 채 돌아서야 했던 곳들이 꽤나 있었기에. 행복했던 우리의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고요하게 아름다운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어 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마음이었다.
13.5km 지점에 있는 계룡동 마을회관을 지나 다섯 번째 마을, 평대리로 들어섰다. 여기 카레집이 있대. 혹시 여기 아니야? 그의 시선을 좇아가 보니 노란 돌에 낯익은 알록달록한 글씨, 톰톰 카레였다. 워낙 따뜻하게 남아있는 기억이라 몇 차례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걸 기억하고 있던 그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내게 물어온 것이다. 그가 말하지 않았다면, 앞만 보고 가던 나는 아마 이번에도 추억으로 남겨둔 채 그리워하고만 있었을 테지.
8년 전 11월, 쌀쌀했던 초겨울의 이야기다. 당시 톰톰 카레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다녀온 사람들은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울 만큼 맛집이었다. 현지인 맛집이랄까. (지금은 효리 언니의 단골집으로 알려져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는 기쁜 소식) 나 역시도 머물렀던 숙소 사장님의 추천으로 알게 된 곳이다. 특별히 아는 정보가 없어 사장님께 들은 것만으로 찾아갔더니 아무도 없고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하루에 두 번, 정해진 시간에만 문을 열어두었는데, 때를 잘못 맞춘 탓이다. 뚜벅이 여행자에게는 시간이 금인지라, 다시 오기 힘들 것이라는 판단으로 근처 구경하면서 기다리겠다는 말을 전하고는 동네 산책을 시작했다. 볼일이 있었음에도 내가 기다리고 있다는 말에 서둘러 와 준 주인 언니. 주문한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밖에서 기다리느라 차가워진 몸을 녹이라며 따뜻한 차를 내어주었고 처음 맛보는 콩 카레에 경의로움을 표하며 마시듯 먹어치우는 사이, 해는 점점 기울고 있었다. 식사가 끝나고도 그곳에 한참을 머물렀다. 맞은편 집에 살고 계신다는 부농 아저씨(주인 언니가 부농 아저씨라고 불렀던 기억이 있다)께서 가게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고 놀러 오신 덕분에, 셋이 앉아 귤을 나눠 먹으며 꽤 오랜 시간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순간의 인연은 식당을 벗어나서도 이어졌다. 내가 뚜벅이라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택시를 타고 가야 한다는 말을 들은 주인 언니가 저녁이라 혼자 가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식당에서 함께 나와 자동차로 성산에 있는 게스트하우스 문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우리네 따뜻한 정이란 이런 것일까 하며 그날의 감동을 일기로 적기도 했다. 부농 아저씨의 감사한 제안도 있었다. 다음 날 성산에서 버스를 타고 제주공항으로 이동해야 하는 내게 마침 공항에 지인들을 데리러 가기로 했다며 괜찮으면 공항까지 태워다 주겠다는 것. 뚜벅이 여행자였던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해안도로 드라이브를 하며 편하게 공항까지 가다니. 행운이었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이야기를 나누다 깜짝 놀랄만한 사실도 알게 되었다. 알고 보니, 부농 아저씨라 부르던 그분은 전 직장 사장님과 친분이 두터운 식품 업체의 대표님이었던 것. (당시, 전 직장 퇴사 후 떠난 제주여행) 세상이 정말 좁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는 직접적인 친분이 아님에도 서로를 무척이나 반가워했고, 동시에 나는 행여나 실수한 것은 없을까 싶어 어찌나 빠르게 머리를 굴렸는지 모른다.
즐거웠고 행복했던 기억. 그들에게는 그 날의 일들이 짙게 남아있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그랬듯 모든 손님들에게 따뜻하게 대해주실 테니.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잊을 수 없는 마음들이다. 혼자 여행하며 불빛 하나 없는 섬의 저녁이 때로는 무섭고 이따금 외롭기도 했던 그때의 나에게는.
몇 차례의 추억 여행을 하며 저마다 다른 분위기의 구좌읍 마을과 투명하게 빛나는 푸른 바다에 빠져 걷다 보니 어느새, 완주 스탬프 코 앞이다. 올레길 20코스의 끝자락에 있는 세화 해수욕장. 많은 사람들이 돌담 앞에 모여있고 그중 몇몇은 돌담 위에 올라서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저기 유명한 곳인가 봐. 한 걸음씩 다가가다 보니, 이곳 역시 낯이 익다. 나의 첫 저서인 독립출판물 안에 포함된 사진들 중 가장 인기 있는 사진, 카페 공작소 앞 세화 해변 돌담길이었다. 공작소는 당시에 머물고 있던 게스트하우스 주인아저씨께서 추천해주신 전복 전문 식당을 찾다가 길을 잃어 우연히 들어서게 된 카페였다. 실내에서 한쪽 벽면에 있는 큰 창문을 바라보면 밖의 낮은 돌담과 잔잔한 세화 해변이 한 폭의 그림처럼 담겨있는 멋진 곳이다. 갈 곳을 잃은 발길에 의해 생각지도 못한 아름다운 장소를 발견한 그 날의 운명 같은 우연이 반가워, 카메라가 방전되도록 셔터를 눌러댔던 그날. 자동차 없이 걷는 여행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된 장소이기도 했다.
여행의 참 매력. 생각지도 못한 우연한 순간, 발길에 의해 또 다른 아름다운 명소를 발견하는 것. 길을 찾지 못해 헤매다 우l들어서게 된 곳에서 그토록 찾던 제주의 아름다움을 보았던 것처럼 _ 이나윤 여행 산문집, <오늘은,> 99p
8년이 지나 올레길 20코스의 한 부분이 된 그곳을 오늘, 그와 함께 걸었다. 혼자 해변의 돌담을 바라보며 한참의 시간을 보내던 그때의 내가 있던 곳, 바라봤던 모습들을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가리켜 그에게 설명해주었다. 길을 잘 못 찾아서 걷다가 여기까지 온 거 있지. 내가 앉았던 자리가 저기야. 그 자리에 앉으니까 세화 해변이 액자 속 그림처럼 보여서 얼마나 사진을 찍었는지 몰라.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남아있는 그때의 기억을 그에게 알려주는 것이 마냥 즐거웠다. 오늘 20코스 안 걸었으면 어쩔 뻔했냐며 웃음 짓는 그. 그러게 말이야. 오늘 걷길 참 잘했어. 돌담을 따라 그대로 지나쳐 완주 지점으로 가려다 잠깐! 하고 걸음을 멈추고서 그에게 사진을 찍어달라며 돌담길 위에 폴짝 올라앉았다. 오늘의 기억을 더욱 뚜렷하게 남겨두고 싶은 마음이었다.
8년 전과 다름없는 세화 해변과 돌담길에 여덟 살 더 먹은 내가 함께 있는 사진. 괜스레 코 끝이 찡하고 뭉클해져 왔다. 오늘 찍은 사진 속 세화 해변을 보며 지난날 그리고 오늘의 김녕 해변, 톰톰 카레, 월정 해변을 떠올리겠지. 돌담 위에 오롯이 혼자 있는 나를 볼 때면 혼자 여행하고 사진 찍고 글을 쓰던 꿈 많은 스물네 살의 나, 8년이라는 세월이 지나 제주에 머물며 올레길을 걷고 있는 지금의 나와 이 여정을 함께 해주는 그를 떠올릴 테고.
사진에는 하나의 장소, 한 명의 사람뿐이지만 사실, 그보다 많은 사람과 더 많은 시간들이 함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