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사춘기 #성당 #주일학교교사
대부분 사람들이 그러하듯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차례로 거쳤다. 그리고 공부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무엇을 위해서 해야 하는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저 남들이 다 했고 입학을 하였기 때문에 왜 해야 하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선생님과 부모님은 이따금씩 나에게 물어왔다. '넌 무얼 하고 싶니?' '커서 무엇이 되고 싶니?' 그 질문에 무엇이라 대답을 했을 것이다. 어린 시절 나의 대답이 지금 떠오르지 않는 것을 보면, 아마도 정말 무엇인가가 되고 싶다기보다 물어보니까 굳이 하나를 대답했던 것 같다. 어린 시절의 나는 미래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 찾지 못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뭘 잘하는지 몰랐고 무엇이 될지 알 수 없었다. 다들 꿈을 찾아보라고 하지만 방법을 몰랐다. 학창 시절의 나는 꿈이 있는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어떤 직업을 갖고 싶다고 명확하게 말하고 그 직업을 갖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이루어가는 친구들이 신기했다.
그렇게 나는 장래희망이 불분명한 고등학생이 되었다. 안타깝게도 공부에도 흥미가 없었다. 잘하는 편도 아니었다. 하고 싶은 직업도 가고 싶은 대학도 없었다. 대학입시라는 단어가 서서히 내 목을 조르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회피하기만 했던 '장래희망 찾기'가 다시 눈 앞에 들이닥쳤다. 더 이상 '패스!'라고 외치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어린이에서 청소년이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이 문제를 풀 방법을 알지 못했다. 장래희망은 어떻게 찾아야 하는 것이며 나는 무엇을 잘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지. 그 난제를 풀지 못해 생긴 답답한 마음은 결국 사춘기라는 것을 낳고야 말았고 부모님과 이야기하며 세상이 끝난 것처럼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다.
답답하고 불안한 마음의 내가 찾은 곳은 다름 아닌 성당이었다. 엄마 손을 잡기 위해 손을 머리 끝까지 올려야 했던 아주 어린 시절부터 성당을 다녔다. 신앙이 깊고 깨달음이 있어서 기도를 열심히 했다기보다 평일에 학교를 다니는 것처럼 주일엔 성당으로 가는 것은 당연한 패턴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무엇 때문인지 알 수는 없지만 성당에 가면 마음이 편안했다. 시험도, 경쟁도, 입시도 없이 조용히 눈을 감고 있을 수 있는 곳이었다. 그 시절 나에게 있어 성당은 마음의 안식처였다.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이었던 나는 학교보다 성당을 더 좋아했고 친구들과 함께 주일을 그렇게도 착실히 지켰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대학교를 입학하기도 전에 나는 그곳에서 성인으로서의 첫 번째 명함을 갖게 되었다.
주일학교 선생님.
약 1년 정도의 기간이었던 것 같다. 그 짧은 기간 동안 초등학교 2학년, 중학교 1학년 교리반 그리고 성가대를 담당하여 이끌었다. 내가 참으로 좋아했던 공간에 더 머물고 싶고 도움이 되고 싶어서 시작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막상 내가 선생님이 되고 보니, 천주교 교리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고 누군가에게 무엇을 가르치기에 나는 너무나도 서툴렀다. 준비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과분한 칭호를 듣기에 내가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내가 가장 좋아했던 주일이 오는 것이 두려웠다. 제일 편안했던 공간이 낯설어지기 시작했다.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할 무렵, 우리 집은 이사를 하게 되었고 나의 첫 번째 명함은 그렇게 사라졌다.
누군가에게 어떠한 것을 가르치는 일은 그것에 있어 전문성이 필요하고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며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상대의 눈높이에 맞게 알려주어야 한다. 전문성은 나의 노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아는 것을 상대에 따라 쉽게 풀어 설명하는 것에 아주 취약했다. 짧은 기간의 일이었고 급여를 받고 일하는 직업이 아닌 종교단체에서의 봉사였지만 주일학교 교사라는 경험은 나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도 나를 괴롭힌 문제, 내가 무엇을 잘할 수 있고 무얼 하고 싶은 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어떤 일이든 해보면 되는 것이다. 직접 부딪혀보니, 알 수 있었다. 드디어 회피하며 비워두기만 했던 문제를 풀기 위해 연필을 집어 들고 문제에 줄을 긋는 단계까지 나아가게 된 것이다.
정답을 찾는 풀이 방법은 누가 그 문제를 푸는지에 따라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누군가는 운이 좋게 문제를 읽자마자 답을 적을 수도, 잠깐의 고민으로 생각해낼 수도 있지만 다른 누군가는 여러 번의 과정을 통해 답에 도달할 수도 있는 일이다. 과정이 다르고 시간이 느리다고 오답은 아니지 않은가. 나는 하나씩 천천히, 내 방식으로 풀면 되는 것이다.
이때부터였다. 내가 명함 콜렉터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