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신입생 #학년과대 #자보재이
지독한 사춘기와 함께 나의 10대도 끝이 나고, 기다리고 기다렸던 20살 대학교 신입생이 되었다. 어렸을 때는 왜 그렇게도 20대가 되고 싶었던지. 부모님의 보호 아래, 선생님의 가르침 아래에 있었던 학창 시절이 가장 마음 편한 시기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더 이상 수능만을 바라보며 눈 뜰 때부터 감을 때까지 공부와 시험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마냥 기뻐하는 철없는 스무 살이었다. 운이 좋게도 수시합격을 하게 되어 정시를 보는 친구들보다 먼저 과 선배들을 만나는 기회가 생겼고 입학하기 전에 있었던 한 번의 정모는 나에게 생각지도 못한 명함을 만들어주었다.
문제의 그 정모에 대해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바야흐로 2008년, 당시 유행했던 학번 놀이에 제대로 저격당한 것이 바로 나였다. 학번 놀이란 그 해 학번 신입생들의 정모에 보다 높은 학번의 선배들이 신입생인 척 모임에 참석하여 함께 어울려 놀고 입학식 때 짜잔! '나 사실 선배야' 하고 밝히는, 신입생 환영 서프라이즈라고나 할까.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어색한 것을 싫어하는 수다쟁이인 나는 정모에서도 굉장한 친화력으로 처음 보는 친구들과 죽마고우인 마냥 신나게 놀았다. 그 당시 최고 유명했던 빵상 아줌마 흉내를 그렇게도 내면서 말이다. 술잔을 짠짠 부딪히고 노래도 실컷 부르며 신나게 놀다 헤어진 뒤 우리가 다시 만난 곳은 입학식이었다. 정모에서 내 오른쪽에 앉아 함께 술잔을 기울였던 친구가 알고 보니 한 해 높은 선배였고 왼쪽에서 함께 끼랑까랑(당시 유행했던 빵상 아줌마 유행어)을 외치던 친구가 알고 보니 두 해나 높은 선배였던 것이다. 하늘 같은 선배님들께 야, 너, 라는 단어를 써가며 세상 신나게 놀았던 나는 입학식에서 자기소개를 하기도 전에 이미 선배들에게 빵상으로 알려져 있었다. 선배들이 '빵상!'이라고 부를 때마다 100여 명의 같은 학번 친구들에게 얼마나 주목을 받았는지, 내가 얼마나 부끄러웠는지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 덕분에 선배들, 동기들과 친해지는 속도는 5G였고 그렇게 나는 학생회 학년 대표라는 명함이 생겼다.
1학년 학생회를 시작으로 2학년 학년 대표까지 연임하며 2년 동안 열심히 캠퍼스를 즐겼다. 대학생활의 꽃이나 다름없는 축제와 MT는 학생회의 일원이었기에 빠지는 일이 없었고 참석한 행사에서는 월급을 받고 일하는 것처럼 최선을 다했다. 학년 대표라는 책임감도 있었겠지만 친구들, 선배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이 너무 좋았던 열정 가득한 신입생이었다. 행사가 있을 때마다 목소리가 다 쉬어버릴 정도의 열정이었다. 물론 대학생 때만 할 수 있다는 캠퍼스 커플도 놓치지 않았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별다른 약속을 하지 않았음에도 동기들과 자연스럽게 술집으로 발걸음을 옮길 만큼 음주와 가무의 생활에도 충실했다. 그 와중에도 공부를 놓지는 않았다. 땡땡이는 나와 먼 이야기였고 장학금도 받았다. 놀 땐 놀고 공부할 땐 했다. 나의 새로운 능력도 발견했다. 글씨 쓰기. 요즘 대학교에서도 사용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대학교를 다니던 때에는 자보라고 하여 학과 공지들을 직접 매직으로 큰 종이에 적어 벽에 붙여 알리곤 했다. 그 담당이 나였다. 캘리그래피라는 것이 유행하기 전, 깔끔하게 필기하고 글씨 쓰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자보 재이(자보 쟁이 사투리)라고도 불렸다. 그 능력을 살려 예쁜 글씨 지도자 자격증을 획득하기도 했다. 그 누구보다 캠퍼스 생활을 즐겼던 2년이었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의 흑역사 중에 절반은 대학교 1, 2학년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의 그 시절을 후회하지 않는다. 친구들과 파릇파릇 신입생으로 돌아간다면 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했을 때, 그 당시에도 내일이 없는 것처럼 놀았지만 돌아간다면 그보다 더 열심히 놀 것이라고 이야기한 적도 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더 많은 흑역사를 만든다 할지라도 나는 캠퍼스 생활을 지난날보다 더 열심히 즐길 것이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고 그때에만 즐길 수 있는 것이 분명 있다. 그 당시의 나는 온전히 나의 순간에 최선을 다했다. 그것이 무엇이든 말이다. 지금의 내가 똑같은 상황에 놓여 같은 것들을 하게 된다고 할 지라도 20살, 21살의 내가 보고 느낀 것들과는 전혀 다를 것이다. 간혹 대학생들을 만나게 될 때면 놀 수 있을 만큼 최선을 다해 놀고 여행은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많이 다니고 학교 학생회나 동아리와 같은 캠퍼스 생활도 열심히 하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나중에 돈 벌어서 하면 된다라고 생각하지 말고 지금 하라고 말이다. 대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인으로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알 것이다. 하루, 한 달, 한 해가 더 지날수록 현실이라는 높고 단단한 벽에 둘러싸여 놀고 싶어도 체력이 안되고 여행을 가고 싶어도 직장에서 낼 수 있는 휴가 기간은 매우 짧으며 금전적인 걱정까지 떠안고 있어야 하는 일상이 반복된다는 것을. 대학교 때 상상했던 나의 미래와는 아주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