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과 연구실 #평점4.5 #장학금
대학교 2학년 때까지 학생회를 하며 캠퍼스의 재미를 제대로 만끽했다. 물론 이 전 글에서도 말했듯이 공부를 놓지는 않았다. 나의 전공은 식품가공학이었다. 좋아했던 전공과목은 미생물학, 위생학, 저장학 등이었다. 여느 날들과 같은 평범한 날, 내가 좋아하는 과목의 실험 실습을 위해 연구실에 앉아있었다. 가만히 연구실을 둘러보다 문득, 이 학교를 다니기 위해 지불하는 대학교 등록금이 얼마였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아주 뜬금없는 고민이었다. 나는 과연, 등록금만큼의 무언가를 얻어가고 있는 걸까. 아니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연구실 안의 수많은 시약과 시료들만 보아도, 이 중에서 내가 사용해 본 것은 아주 극히 일부였다. 내가 직접 배워본 실험도 수많은 실험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대학을 다니고 있기에 캠퍼스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생각하면 할수록 등록금이 아까웠다. 한두 푼이 아닌데 말이다.
내가 졸업을 하게 되는 날, 4년 치 등록금이 아깝다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뽑아먹어야겠어!
목표가 생겼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지금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연구실의 수많은 시약과 시료들 그리고 연구를 위한 실험 도구들을 많이 사용해볼 것. 다음으로는 학과 학생으로서 등록금을 벌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인 장학금을 받아볼 것. 이 두 가지였다. 2년 동안 학생회 학과 대표를 맡아 활동하며 선배 동기 후배들과 캠퍼스의 낭만을 누리는 것 역시 대학생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연구실에서 전공 관련 실험을 배우며 학과 장학생이 되어보는 일 또한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성적에 맞춰 선택한 전공이지만 어찌 되었건 4년 동안 배워갈 전공 분야이고 재미를 느끼는 부분도 있었다. 훗날 전공을 살려 취업을 하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열심히 공부하여 자격증, 장학금을 획득하는 것은 혹시 모를 미래를 위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기도 했다. 일석이조라고 생각했다. 연구실 소속 학생이자 학과 장학생이라는 명함은 등록금을 내는 만큼 뽑아먹겠다는 나의 목표 달성은 물론이거니와 나의 미래를 위한 아주 매력적인 커리어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못 먹어도 고!라는 말은 이럴 때 하는 거지. 일단 부딪혀 보는 거다.
그 길로 학과 교수님 연구실을 찾아갔다. 교수님과 선배님들 밑에서 실험을 배우고 싶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장학금을 받고 싶으니 도와달라고 말했다. 연구실 소속 선배님과의 상담에 이어 학과 교수님과의 짧은 면담까지 거친 결과, 학과 대표였던 내가 한순간에 연구실 학생이 되었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며 중간 이상의 등수를 했던 기억이 없다. 나는 공부에 재능이 없는 아이라고 확신해왔다. 그런 내가 장학금을 받을 수 있을까? 나 조차도 자신이 없었다. 공부 머리를 타고나지 않았으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성실하게 노력하는 것뿐이었다. 수업 때는 교수님 앞자리에 앉아 열심히 수업 듣고 필기했다. 필요한 과목이라면 4학년 선배들밖에 없는 과목이라도 앞자리에 앉아 들었다. 수업이 아닌 때는 연구실에서 공부하던지 실험을 진행했다. 시험 기간이 되면 하루, 이틀 밤을 새우며 공부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은 공부를 잘하는 친구, 선배들에게 다시 물어보고 알아야만 했고 필기 노트가 너덜너덜해지고 연습장을 몇 개나 갈아치울 만큼 열심히 적으며 암기하고 또 했다. 시약과 시료도 많이 사용해보고 이제까지는 해보지 않았던 실험을 많이 배웠다. 연구실 생활이 아니었다면 보지도 못했을 신기한 실험 기구들도 직접 사용해봤다.
완벽함을 추구하지만 현실은 실수투성이인지라, 석박사 선배님들의 다된 연구가 나로 인해 늦어지기도 하고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나 스스로에게 화가 나 눈물도 많이 흘렸다. 그 과정에서 처음 목표했던 대로 연구실 내의 비싼 시료와 시약도 많이 쓰게 되었다. 실수로 인한 목표 달성이었기에 눈치가 많이 보이긴 했지만 말이다. 학과 성적은 빠르지는 않지만 천천히, 노력하는 만큼 앞으로 나아갔다. 3학년 1학기부터 성적이 오르면서 성적 장학금, 학과 특성화 장학금, 영어 향상 장학금 등 학교에서 운영하는 장학제도를 톡톡히 누렸다. 전공자로서 획득할 수 있는 자격증 공부도 틈틈이 하여 위생사, 식품산업기사, 식품기사까지 손에 쥐었다. 그리고 마침내, 4학년 1학기에 평점 4.5점 만점에 4.5점을 받으며 꿈에 그리던 학과 학년 1등을 하게 되었다.
우리 집에서 나는 공부에 소질도 관심도 없는 말썽꾸러기 막내였다. 공부 잘하는 언니가 마냥 신기하고 멋지다고 생각했다. 우리 언니는 학창 시절 상위권 성적을 받아와 부모님을 기쁘게 하는 착한 딸이었고 서울권 대학에 법학과 학생이 되었다. 공부머리는 언니에게 다 갔다고 생각했다.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만 부모님도 아마 그렇게 생각하셨을 것이다. 나에게 공부 쪽으로는 크게 기대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고3 수험생 때, 나는 공부에 소질이 없다고 공부하기 싫다고 울고 불며 늦은 사춘기의 예민함과 우울함을 한껏 표출했던 나였으니까. 그런 내가 자격증 시험을 봤다 하면 합격 소식을 가져왔고 장학금을 받아오고 평점 만점이라는 진기한 기록을 세웠다. '학과 장학생'이라는 명함은 말썽꾸러기 막내가 처음으로 부모님께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었고 자랑스러운 딸이 되어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장학금을 내는 만큼 뽑아먹겠다는 나의 포부는 초과 달성한 셈이었다.
이제까지의 명함들이 우연한 기회에 갖게 된 명함이었다면 이번엔 내가 목표로 했던 일이었고 나의 의지와 노력으로 어렵게 이루어 낸 결과물이었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나는 지금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고 심지어 나 자신도 확신이 없었던 일이라 할지라도 꾸준히 노력하면 이루어 낼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학과 성적, 장학금, 자격증 그리고 무엇보다 오랫동안 우리 아빠의 휴대폰에 저장되어있던 나의 이름 '장학생 나윤'. 그것이 증명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