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학생 #계약직 근로자
대학교 졸업반을 앞두고 불안함과 막막함에 휴학을 결심하게 되었다. 중고등학교 때는 오로지 대학 입시만 보고 달려왔기에 대학생이 되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 같았다. 대학의 문턱을 넘어선 후에야 그곳이 그저 본 게임에 들어가기 전 아주 잠깐의 브레이크 타임이나 다름없음을 알게 되었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매일 같이 공부하고 시험 봤던 수학, 국어, 과학 등의 공부들이 나의 본 게임을 준비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허무하다는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배신감마저 들었다. 대학교에서 비싼 돈 들여가며 배워온 나의 전공분야를 살려 취업을 하는 것이 맞는 걸까. 하루에도 몇 번씩 의문이 들었다. 전공을 살린다면 어디에 취직을 해야 하며 내가 지원한다고 나를 받아줄까. 전공분야가 안 맞는다 하더라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다른 길이 도대체 무엇일까. 수만 가지 고민에 어느 하나 정확한 답을 내릴 수 없어 답답했다.
막막했던 나의 마음을 비유해보자면 이렇다.
셀 수 없이 많은 문이 있는 방에 누군가 나를 데리고 가서 두 눈을 수건으로 가려놓고는 대뜸 이 중에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문은 단 하나밖에 없으니 잘 찾아보라는 말만 남기고 나가버렸다. 방향도 방법도 알려주지 않고 말이다. 누군가 내 손을 끌고 출구로 데리고 가주거나 박수로 유도해준다면 좋을 텐데, 덩그러니 나 혼자 뿐이다. 내가 나갈 수 있는 수많은 문이 어딘가 있다는 것은 알지만 가려진 내 눈 앞의 세상은 온통 까맣다. 어떤 문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어느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지도 알 수 없다. 혹시 섣부르게 출구가 아닌 문으로 나갔다가 낭떠러지가 있으면 어떡하지? 무서운 벌레들이 가득하면? 온갖 걱정과 고민으로 단 한 발도 내딛지 못하고 처음 들어선 곳에 가만히 서있는 것 말곤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정말 딱 그 꼴이다.
휴학을 하기로 결정한 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헛으로 쓰고 싶지 않았다. 우선 전공을 살려 취업하는 것을 목표로 휴학 기간을 알차게 보내리라 결심했다. 그리고 복학하기 전, 언젠가 해보고 싶다고 꿈에만 그려왔던 배낭여행을 해보겠다고 다짐했다. 이 모든 결심을 이루어내기 위해 내가 내디딘 한 발은 전공분야의 관공서에서 단기 계약직으로 일을 해보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다른 친구들보다 조금 일찍 사회생활의 맛을 봤다. 내 이름이 적힌 출입증이 생겼고 식품의약품 안전청 모니터링 요원이라는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조금은 무거운 명함이 생겼다. 단순 알바가 아닌 계약직 근로자로서 일을 하는 것이기에 매달 나오는 월급도 꽤 쏠쏠했다. 일하는 동안의 월급은 한 푼도 사용하지 않고 통장에 모으면 어떻겠냐는 현명한 어머니의 제안 덕분에 이전 학기의 장학금을 제외한 다음 학기 등록금과 배낭여행을 위한 경비를 마련할 수 있었다. 계약직 근로자라는 신분으로 누릴 수 있는 우리나라의 제도 역시 놓치지 않고 활용했다. 그 덕에 다녀보고 싶었던 제과제빵학원을 다닐 수 있었고 퇴근 후와 주말 시간을 활용하여 자격증도 획득했다. 내가 하는 업무는 사무관님들의 업무 보조 정도이지만 함께 외근을 다니며 사무관님들의 업무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고 이런저런 업무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도 많았다. 이곳에 들어오려면 어떤 것들을 준비해야 하는지, 입사 후에는 어떤 업무를 하게 될지에 대해서 보다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계약이 만료될 즈음, 너무나 멋진 일이었지만 나에게는 이 문이 출구가 될 수 없음을 알았다. 우선 내가 넘기엔 너무나도 높은 벽이었고 그 벽을 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장비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 모든 것을 갖춰서 꼭 벽을 넘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생기지 않았다. 그저 내 길이 아니다는 마음이었다.
나는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방에서 출구로 나를 데리고 가줄 누군가가 오기를 무작정 기다리기보다 스스로 찾아보는 방법을 선택했다. 일단 내가 처음 들어온 방향으로 손을 쭉 뻗고 계속 걸었다. 문 하나는 잡히겠지 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용기 내어 문을 열어보지 않고는 그 문이 출구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잡은 첫 번째 문은 아쉽게도 출구가 아니었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있나. 다시 깜깜한 세상으로 나가 더듬더듬 출구 일지 모르는 새로운 문을 찾아 나서야 한다. 하지만 겁먹고 꼼짝 못 하던 처음과는 달랐다. 두 발에 용기라는 힘이 실렸다. 처음 열어본 문 안의 세상에서 또 다른 문을 찾을 수 있게 방향을 잡아주는 힌트들을 부지런히 찾아두었기 때문이다. 자, 다시 시작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