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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이리 Feb 07. 2020

나는 얼마나 나쁜 사람인 걸까.

#여행작가 #매거진에디터 그리고 #소송

작년 한 해 동안 나의 삶, 나의 정신은 매우 불안정했다. '괜찮은 척'하는 것에 능숙해져 집을 벗어나 누군가를 만나서는 방긋방긋 잘 웃어 보이다 혼자 있으면 한 시간에 한 번 꼴로 눈물샘이 터지고 온갖 걱정과 불안으로 잠을 못 이루는 일의 연속이었다. 20대 후반, 30대 초반에 열심히 일했으나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 건으로 소송이라는 무시무시한 일을 2번이나 마주하게 되었다.


처음 겪은 소송은 20대의 마지막 해, 2년 간 준비한 팩의 저작권을 빼앗아 가려했던 이와 함께 집필한 우리의 싸움이었다. 법원에서 피의자에게 권리에 대한 보상을 해주라며 우리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아직 그 소송 결과에 대해 받아들이지 못한 것인지 상대에게서 아무런 연락이 없다.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는 싸움이다.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기만 하다. 두 번째 소송은 현재 진행 중이다. 2019년 첫날부터 6개월 동안 일했던 것에 대한 임금을 단 한 차례도 받지 못했다. 나의 잃어버린 월급을 되찾기 위한 소송이다. 2019년 내내 일을 했지만 한 해를 3개월 앞두고 나라에서 주는 실업급여를 받은 것이 그 해에 받은 첫 월급이었다.


나보다 더 어른인 이들의 잘못된 생각과 비겁하고 이기적인 행동으로 인해 치열한 사회에서 간신히 줄 하나 잡고 있는 청춘이었다. 아무리 그들을 탓하고 원망해도 바뀌는 것이 없었다. 그렇다고 용서가 되지도 않았다. 마음이 힘든 걸 넘어 생활이 힘들어지니 누군가를 탓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자꾸만 불쑥불쑥 올라왔다. 벼락 끝이 아닐까 싶은 지경까지 내몰리게 되었을 때부터는 다른 누구를 탓을 하기보다 나를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연달아 참담한 현실을 맞닥뜨리게 되니 '지난 나의 선택들이 잘못되어 이런 결과를 낳은 거겠지. 의심 없이 누군가를 믿고 무조건적으로 열심히 했던 내가 문제였다. 결국 나는 나로 인해 이러한 슬픔과 고통을 겪게 된 게 되는 건가. 나쁜 사람이 벌을 받는 거라면, 나는 대체 얼마나 나쁜 사람인 걸까.' 끊임없이 나를 자책했다.


아예 생각할 시간을 없애버리자 라는 마음으로 온갖 드라마를 찾아 하루 종일 보곤 했다. 바보상자의 위력은 대단했다.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드라마에 빠져 멍하게 보게 되더라. 그때, 넷플릭스가 추천해준 드라마 <청춘시대>를 보았다. 외모부터 성격, 전공, 남자 취향, 연애 스타일까지 모두 다른 5명의 매력적인 청춘들이 벨에포크라는 셰어하우스에 모여 살며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다룬다. 두 번째 시즌 종영된 지가 벌써 3년이 다 되어가니 꽤 오래된 드라마인 듯했다. <청춘시대>의 모든 시즌을 이끌어 온 캐릭터 중에 한승연 배우가 연기한 극 중의 정예은이라는 인물이 있다. 그녀는 시즌 1에 사귀었던 남자 친구에게 감금, 폭행을 당했고 시즌2에서는 가장 가까운 친구로부터 문자, 사진 등의 테러를 당하게 된다. 여러 가지 사건을 겪으며 심신이 지친 주인공은 자신은 나쁜 사람이라고.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힘들 수는 없는 거라고 말한다. 누구보다 자신감 있고 당당하던 그녀는 점점 자신을 숨기기 위해 어두운 계열의 옷으로 자신을 감추려 하고 움츠리며 주변의 눈치를 보는 내성적인 성격으로 바뀌어가는 모습을 보인다.


그 당시 나의 마음과 행동이 TV 속 그녀와 너무 닮아 보는 내내 끄억대며 눈물을 쏟았다. 나도 딱 그 마음이었다. 너무 힘들고 너무 지치니까 결국은 내 손에 들린 원망의 칼로 상대가 아닌, 나를 찌르게 되는 거다. '나는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길래 남들은 한 번도 겪지 않을 수 있는 이런 일을 연달아 이렇게 겪게 되는 걸까. 나는 얼마나 나쁜 사람인 걸까.' 하고 말이다. 드라마 속 주인공은 '니 잘못이 아니야'라고 끊임없이 말해주는 친구들과 연인의 진심 어린 마음과 행동에 위로를 받고 조금씩 예전의 자신의 모습을 찾아간다. 드라마를 보는 동안 나도 나에게 계속 말해주었다.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힘들어하고 숨어 지내는 모습은 두 번 너를 죽이는 일이라고. 당당하게 이겨내고 더 멋지게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복수를 하는 길이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누군가를 미워하고 특히 나를 미워하는 일이 계속될수록 자꾸만 더 깊은 우울함에 빠지게 되고, 나를 갉아먹는 것을 넘어 내 주변 사람들까지 힘들게 하고 있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에게도 나의 사람들에게도 참 못할 짓이라고 느끼면서부터 운동을 시작하고 다시 밝은 예전의 내 모습을 찾게 되었다.


살아가다 보면, 믿기지 않은 일들이 나에게 일어나고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생각을 가지고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맞닥뜨리게 되는 때도 있다. 더 이상의 나쁜 일은 없으리라 믿지만, 그럼에도 또 생기게 된다면? 이제는 그러려니. 그 사람도 사정이 있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무던해지고만 싶다. 행복하고 즐거운 것들을 누리기에도 부족한 삶에 미움이라는 감정 낭비는 이제 그만 하고 싶다는 마음이다. 누군가를 또 나를 미워하는 마음이 그 어떤 것보다 나를 힘들게 하는 일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살면서 가질 수 있는 미움이라는 감정은 몽땅 써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충분히 느껴보았기에 이젠 정말 미워하는 마음과는 영원히, 안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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