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고 #또다시 #취업준비생
감기를 빨리 털어내 버리겠다며 대수롭지 않게 병원을 찾았다. 처방해주시는 약을 먹고 얼른 나아버리자는 마음에서 들렀던 병원에서 담당 선생님은 초음파 검사를 제안했다. 꼭 무언가 문제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예방차원에서 해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검사를 하게 되었을 경우, 앞으로의 과정은 이러했다. 아무런 이상 징후가 보이지 않았을 경우는 다행인 것이고 문제는 불청객이 발견되었을 때인데. 단순 용종일 수도 있지만 혹시 모르는 경우를 대비해 조직검사를 맡겨 결과를 보아야 한다고 했다. 불청객의 크기가 작을 경우는 시술로, 크기가 제법 되는 경우에는 수술로 떼어내야 하는데 이때 들어가는 비용이 보험처리가 안된다면 보험처리가 되었을 때 비용의 2배 정도를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선생님과 마주 앉아 일련의 과정에 대해 듣는 내내 눈물이 나오려는 걸 꾹꾹 참아내느라 혼이 났다.
내 건강에 문제가 있을까 봐, 혹시 불청객이 있으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이 되어서가 아니었다. 지금의 나의 형편에 저 검사들을 모두 할 수가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지난 6개월 간의 월급을 하나도 못 받고 있는 상황이었고 실업급여도 받기 전이었기에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돈 밖에 없었다. 그런데 저 모든 검사를 무슨 돈으로 할 수 있단 말인가. 부모님께 말씀드리면 당장 검사를 하라며 돈을 보내주시겠지만, 나쁜 소식만 줄줄이 소시지처럼 이어지는 이 시점에 몸이 안 좋을 수도 있다는 걱정까지 안겨드리고 싶지 않았다. 나의 건강에 대해 말씀해주시는 선생님께 제일 처음 꺼낸 말은 '비용은 어느 정도가 될까요?'였고, 모든 설명을 듣고 난 뒤 다음으로 꺼낸 말은 '오늘 당장 하지 않으면 큰일 나는 건가요? 제가 지금은 검사를 할 수 없어서요'라는 말이었다. 당장에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빨리 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듣고는 마지막으로 '그럼 다음에 하겠습니다'며 꾸벅 인사를 드리고 검사실을 나와버렸다.
내 몸이 안 좋을 수도 있다는데. 비용만 물어보고는 서둘러 병원을 나오면서 왜 그렇게 서러운지. 눈물이 나오려는 걸 참느라 코가 빨개지고 입술이 떨렸다. 몸 상태가 걱정되니 진료 끝나면 연락해달라는 남자 친구에게 톡을 남기고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나의 문자에 바로 전화를 해온 남자 친구의 목소리가 휴대폰 저 편에서 들려오는 데 잘 참아왔던 눈물이 결국 왈칵 쏟아져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사람 많은 점심시간 강남 교보타워 사거리에서. 그 큰 거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며 부끄러운 줄 모르고 펑펑 울어댔다. 아픈 몸이 먼저여야 하는 이 순간에도 돈부터 걱정하고 앉아있는 내 꼴이 너무 한심하고 어이없었다. 돈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 상황에 화가 나고 짜증이 났다. 모든 감정이 눈물로 쏟아져 나왔다.
생활고라는 것이 나를 무너져 내리게 했다. 돈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몸소 겪었던 그 기간 동안 이런 일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나고 눈물이 마를 새가 없었다. 돈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말하며 꿈을 좇는 삶을 살아왔지만, 돈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세상에 내가 살고 있는 건 부정할 수가 없었다.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싶지만 밥을 먹어야 하고 관리비를 내야 하고 병원을 다녀야 한다. 돈을 벌어야만 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취업을 해야만 한다. 꿈에 대한 나의 고집만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감, 자존감 모두가 한꺼번 와르르 무너져버리는 상황은 도저히 감당해낼 수가 없었다.
또다시, 취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돈을 벌기 위해 내가 하고자 하는 것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다시 9 to 6, 4대 보험, 주 5일 근무, 월급이 따박따박 통장에 꽂히는 직장을 다니기 위해 매일 같이 자소서를 고쳐 쓴다. 취업 포털 사이트를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보며 나는 어디에 들어갈 수 있을까를 뒤적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이제까지 나는 고집을 부려왔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삶, 내가 일하고 싶은 방식대로 일을 하며 살겠다는 마음 하나로 말이다.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기를 간절히 바라던 부모님의 바람을 모른척했다. 내가 가는 길을 고집하다 보면 안정적이진 않더라도 행복하게 살 수는 있으리라 생각했다. 생활하는데 지장이 없을 만큼의 수입을 벌 수 있는 직장을 구하는 건 어떻냐는 걱정스러운 친구의 조언에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준비한 책이 출간되기를 기다리는 프리랜서 작가이지만 수입이 없어 불안해하는 나를 철없이 보는 옛 연인의 눈빛과 말투에 상처를 받기도 했다. 글을 쓰는 삶을 살고 싶었다. 글이 좋았다. 나는 글에 재주가 없다고 움츠러 있으면서도 생각이 많고 걱정이 많은 나의 머릿속을 글로 풀어내고 글에게 위로받는 것이 좋았다. 내 글에 공감을 하고 위로를 받는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행복했다. 그래서 상처를 받고 걱정을 하면서도 놓아지지가 않았다. 그리도 단단했던 나의 고집인데, 그깟 생활고를 이기지 못했다.
돈을 벌기 위한 취업 준비를 하고부터 주변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근황을 이야기하는 것이 싫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의 말에 '취업 준비하고 있어'라는 말이 왜 이렇게 목에서 따갑게 느껴지는지. 나의 근황에 잘 생각했다 하며 여러 방향으로 폭넓게 생각해보라는 따뜻한 조언도 나에게는 따갑고 아프기만 했다. 어떨 때는 이유 없이 화가 나기도 했다. 나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닌, 해야만 하는 일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어느 누구도 이제는 나의 글을 궁금해하지 않고 반기지 않는다는 생각에, 나만큼은 글을 쓰는 사람으로만 살고자 하는 꿈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철없는 마음이었다. 내가 취업에 온전히 빠져버리면 나는 이제 정말 글을 쓰는 일은 하지 못할 것만 같아서. 혹시나 아직 희망이라는 것이 있지 않을까라는 마음을 남겨두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