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제주댁 이야기 | #섬메이트 #연인 #여행
오늘은 우리,
나와 나의 섬 메이트인 그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안녕하세요'라는 말을 시작으로 통성명을 주고받은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년수로 4년 차에 접어든 연인이 되었다. 20대의 끝자락에서 만나, 뜻깊게도 푸릇한 20대의 마지막과 농익은 30대의 시작을 함께 맞이하기도 했다. 차례로 삼십 줄에 들어서면서 왜인지 모를 허무함을 느낄 때나 이따금씩 훅 파고드는 쓸쓸함에 괜스레 울적해질 때면, 따뜻한 포옹으로 때로는 짓궂은 놀림으로 위로를 건네기도 하면서 말이다. 누구라도 그러하듯, 각자의 삶을 따로 또 같이 치열하게 살아왔다. (토닥토닥)
아홉수와 삼재의 무서움이 실제로 있다고 확신하게 될 만큼 실패와 좌절의 끊임없는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여전히 헤어 나오지 못한 것 같기도) 그와 만나 아무 생각 없이 웃고 먹고 여행할 때면 한없이 즐겁고 편안함을 느끼지만 다시 혼자의 시간을 보낼 때면 대부분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이곤 했다. 그때의 나는, 허리케인을 만나 육지를 잡아먹을 것만 같이 넘실대는 파도와 같았다고나 할까. 서른이 되기 전에 맞닥뜨린 저작권 소송과 서른이 되고 연이은 임금체불로 인한 소송이 만들어낸 불투명한 미래 그리고 그로 인해 외줄 타기처럼 늘 아슬아슬한 통장 잔고가 그 이유였다. 나의 롤러코스터 같은 감정 기복에 대해 안정적이고 희망찬 서른 살의 삶을 맞이 하기 위한 과정이 꽤나 다사다난했던 것 때문이라 말해왔지만, 어쩌면 그건 그저 핑곗거리에 불과한 걸 지도. 요즘 들어 철이 들려고 하는 건지. 누군가에 의해서도, 무엇 때문에도 아닌 그저 나인 것을. 감정 기복이 심한 편일 뿐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큰 요동 없는 잔잔한 강물이자 뿌리가 단단하고 우직한 나무를 떠올리게 한다. 사소한 것들로 하루에도 몇 번씩 널뛰기를 해대는 내 감정에도 한결같은 모습으로 있어주는 신기하고도 고마운 사람. 내가 그를 서벤츠라고 칭하게 된 수많은 모습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면모이기도 하다. 언젠가 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의 우상 효리언니가 출연한 적이 있다. 결정적으로 결혼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감정 기복이 없이 한결같은 사람이라 내 감정이 내려갔다 올라오면 만나고, 올라갔다 내려와도 만난다. 이 사람은 항상 여기에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이 생겼다'라고 말해 그를 떠올리며 크게 공감했다.
물론 그도 충분한 휴식 없이 업무가 이어지는 등의 스트레스를 받거나 누군가의 예의 없는 말과 행동을 마주할 때면 내게는 낯선 감정 변화를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허리케인을 만나 육지를 잡아먹을 것만 같이 넘실대는 파도와 같은) 나에 비하자면, 어린아이가 던지는 둥글고 얄팍한 돌에 의해 잠깐 퐁퐁 튀겼다가 금세 사라지고 마는 물수제비 정도랄까. 사실 표현을 크게 하지 않고 힘들거나 버거워도 스스로 해내려는 성격이라 드러나지 않을 뿐. 그도 그간 쉴 틈 없이 바쁜 일정 속에서 참 많이도 속을 끓였을 테지. 내가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속앓이도 꽤나 많았을 것이다.
이 글을 적고 있는 찰나, 옆에서 깊은 보조개를 보이며 날 향해 웃고 있는 그. 토닥토닥 그의 등을 쓸어주었다. 갑작스러운 나의 행동에 그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본다. 고생했고 수고했어. 고맙고 미안해. 괜스레 짠한 마음이었다. 섬 살이를 하는 동안에는 옆에서 부단히 애써줄 참이다. 이제까지 그가 내게 해주었듯이. 이번만큼은 그보다 내가 더. 육지에서의 속 시끄러웠던 모든 것들을 내려두고 편안히 쉴 수 있도록. 나와 함께하는 섬에서의 시간 동안 온전히, 행복만 할 수 있도록.
무엇보다 우리가 함께 여행하는 삶을 통해,
여행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