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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이리 May 08. 2020

환하게 웃으며 맞이하는 아침이라니

미스 제주댁 이야기 | #제주의아침 #이너피스 #제주살이



아침 6-7시면 자연스레 눈이 떠진다. 아이폰에서 들려오는 반복 알람도, 옆 집에서 들려오는 공사 소리도, 채소와 계란을 팔고 있다는 트럭 아저씨의 스피커 소리 때문도 아니다. 우거진 숲 속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청명하게 들리는 새들의 울음소리에 잠에서 깬다. 창으로 고개를 돌리자, 방금 전 나를 깨워준 작은 새가 창문 넘어 테라스 난간에서 나와 눈을 마주 보고 앉아있다. 작고 작은 몸짓에서 어쩜 이리도 선명하고 맑은 소리가 나는 건지. 매일 들어도 신기할 따름이다.


꽤 성능이 좋은 자연의 알람 소리에 뒤척임도 없이 개운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요즘. 일어나 제일 먼저, 제주에서만 판매한다는 다슬기 맛의 오묘한(맛있는) 녹차를 따뜻하게 우려내거나 육지에서 가져온 커피머신으로 향긋한 커피 한 잔을 진하게 내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컵을 두 손으로 감싸 안고 짧게는 이십 분, 길게는 한 시간 가까이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창가를 가만히 바라보는 것. 매일 아침, 의식처럼 행하는 나만의 이너 피스 시간이다.





테라스에서 지저귀는 새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인 채 멍하니 시간을 보낸다. 충분한 귀호강이 되었다 싶을 만큼 오래도록. 테라스에서 동네로 시선을 뻗어본다. 동네를 둘러싸고 있는 초록의 창창한 나무들과 낮은 돌담 안, 곧 자라날 온갖 채소들의 씨를 품고 있는 갈색의 흙 그리고 바깥세상의 차가운 기운을 온몸으로 막아내고 있는 곳곳의 하얀 비닐하우스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고즈넉한 풍경이 눈 앞에 펼쳐져 있다. 고개를 들어 조금 더 멀리까지 바라본다. 높게 뻗어있는 건물이 없어 저 멀리의 오름도 파란 하늘 아래, 나름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눈 앞의 조그마한 새부터 시선의 끝에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오름까지. 이 모든 것을 한눈에 담아내는 타이밍이 오면 휴우- 큰 숨을 한 번 내 쉴 차례다. 온몸 안의 여기저기 숨어있던 나쁜 기운들이 전부 빠지는 것만 같은 개운함과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함, 상쾌함이 느껴져 나도 모르는 새,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다.





환하게 웃으며 맞이하는 아침이라니. 육지에선 상상도 못 한 일이다. 서울 집에서는 창문의 커튼을 열어두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꽤 많은 붙박이 서랍 중에 옷을 걸어둘 만큼의 넉넉한 공간이 없어 테라스 한 편에 행거를 설치한 탓이다. 창문 앞 공간을 옷장으로 쓰다 보니, 강한 볕에 옷이 상할 것 같아 창의 일부를 암막커튼으로 가려두었다. 나머지 창도 자유롭게 열어둘 수 없는 건 매한가지다. 서울 중심의 대학가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작은 부지에 길고 높은 오피스텔이 다닥다닥 붙어 지어져 있고 우리 집도 그중 하나다. 그렇다 보니, 창을 마주하고 있는 앞 집과 서로서로 인사를 나누어도 될 만큼 잘 보이는 것이 여간 골칫거리가 아니다. 내가 잘 보이는 만큼 우리 집도 잘 보이겠지? 뚫어져라 계속 이쪽을 쳐다보고 있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집 안에서 생활하며 계속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맘 편히 생활하려면 남은 문들도 어느 정도 커튼으로 가려둘 수밖에.


이런저런 이유들로, 어둠이 집안을 야금야금 집어삼켜버렸고 아침에 내리쬐는 햇볕 따위는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더욱이 번잡한 대학가에 살고 있어 밖으로 펼쳐지는 고즈넉한 풍경을 보지 못하고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것은 언제부턴가 내겐 당연한 일이었다. 이렇듯 삭막한 나의 도시 생활에 제주의 아침 풍경이 한 달 동안 주어졌으니. 매일같이 웃음이 나오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걸 지도.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 표현해도 모자람이 없다.


마냥 좋다 하며 평온한 아침을 만끽하다가도 번뜩! 육지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칠 때가 있다. 아찔하다. 제주의 아침이 들려주는 까랑까랑한 새들의 울음소리, 고즈넉한 동네 풍경, 향긋한 풀내음이 없는 아침을 보내야 하는 그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는 것이. 금세 얼굴이 어두워지고 땅이 꺼질 듯 한숨이 쉬어진다. 아직 섬에 있었던 시간보다 앞으로 보낼 시간이 더 많지만. 그럼에도. 벌써부터 두렵기만 하다. 칠흑 같은 어둠과 함께 시작할 육지에서의 아침이. 벌써부터 그리운 마음이다. 제주의 아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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