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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이리 Apr 27. 2020

쉬멍 걸으멍, 올레꾼이 되었습니다

올레길 이야기 | #제주올레길걷기 #올레길1코스 #성산일출봉  


*) 쉬멍 걸으멍 : '쉬면서 걸으면서'의 제주 방언



육지에서 넘어와 한 달 동안의 보금자리에 짐을 풀고 바로 다음 날 아침부터 올레길 걷기를 시작할 예정이었으나, 예전 같지 않은 나의 체력은 넘치는 열정을 받쳐주기엔 한참 역부족이었다. 섬에 오던 날, 새벽 3시에 육지에서 출발해 제주 숙소에 도착한 저녁 6시까지 꽤 많은 시간과 체력을 들였고 딴에 이 것도 이사라고 한 달 생활을 위해 신경 쓴 것들도 많아서인지 극강의 피곤함이 밀려왔다. 우리는 여유와 휴식을 위해 제주에 온 것이니 너무 무리하지 말자 하며 본래의 계획을 하루 미룬 채 제주의 여유를 만끽하며 쉬는 것을 택했다.



설레는 제주올레 첫 스탬프, '올레꾼이 되었습니다' 도장 쾅쾅!



본격적으로 올레길에 오른 것은 제주에 온 지 3일 차가 되는 날이었다. 일교차가 심해 아침, 저녁으로는 아직 겨울의 찬 기운이 남아있었지만 오래 걷기에 불편함이 없도록 얇은 옷을 여러 개 겹쳐 입는 것을 택했다. 아침 9시, 올레길 1코스의 출발지인 시흥초등학교에 도착해 첫걸음을 떼자마자 추울까 걱정했던 것이 무색할 만큼 완연한 봄기운이 느껴졌다. 걷는 내내 따뜻한 햇볕에 땀방울이 맺히려 할 때쯤이면 거센 제주 바람이 한 번씩 나타나 온몸을 감싸며 식혀주기를 반복했다. 올레꾼으로서의 시작을 축하해주기라도 한 듯 제주의 날씨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고, 해와 바람의 티키타카는 우리처럼 찰떡궁합이었다.


올레길 걷기를 1코스부터 시작한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 '앞으로 네가 걸을 올레길 코스에서는 이런 것들을 볼 수 있을 거야'하고 올레길 미리보기를 하는 듯했다. 시흥리와 종달리의 고즈넉하고 제주스런 동네 풍경과 숨을 헉헉대며 올라섰을 때 선물 같은 풍광을 보여주는 제주 오름의 맛보기라 할 수 있는 말미오름과 알오름 그리고 종달리에서 성산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에 '그림이야?'를 외치게 하는 드넓은 광치기 해변까지. 올레길을 걸으며 마주하게 될 다양한 코스(동네, 오름, 해안도로, 해변)가 차례로 등장하며 가지각색의 풍광을 보여주기 때문에 걷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다.



계절에 따라 당근, 감자, 무 등의 작물이 재배된다는 시흥리
말미오름을 오르며, 감탄을 자아내는 제주의 풍광
올레길을 걷다 보면 동네 곳곳에서 드넓은 유채꽃 밭을 볼 수 있다.
종달리 바당길 입구 근처, 평온한 낮의 풍경
1코스 중간 스탬프가 있는 목화휴게소 앞, 줄지어 걸려있는 한치
성산으로 가는 길. 맑은 물, 미묘한 색에 끌려 한참을 머물렀던 해변
엄마가 무엇을 하던 내내 옆을 따라다니던 귀여운 아이
"우와...... 이 풍경이, 이 색의 조합이.. 이게 말이 된다고?"
걸으며 이따금씩 볼 수 있는 풍경, 이조차 몬딱 좋지예(모두 좋지요)!
오고 가며 보이는 것들이 마냥 신기하고 이뻐 보인다.
완주 스탬프가 있는 1코스의 마지막, 광치기 해변
드넓은 평야와 같은 암반지대의 모습이 광야같아 ‘광치기’라 한다.



이 코스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는 일출을 볼 수 있는 거대한 성과 같은 산이라는 뜻의 성산일출봉에 있다. 말미오름 정상, 성산으로 향하는 해안도로, 성산일출봉을 지나 마지막 지점인 광치기 해변에 이르는 15km 내내 옆을 지키며 나와 함께 걸어준다. 그야말로 성산일출봉은 제주올레 1코스의 올레길 메이트다. 아마도 제주를 여행했던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매표소 입구에서 올려다 본 모습이 전부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올레길을 걷기 전까진 그랬으니까. 내 이야기라고 생각된다면, 제주올레 1코스를 걸어보자. 성산일출봉에 대한 기억이 1코스를 걷기 전과 후로 명확히 나뉠 것이다.


말미오름의 정상에서 내려다본 조그마한 모습부터 걸음걸음마다 조금씩 다른 각도에서 다양한 모습의 성산일출봉을 볼 수 있다. 때로는 에메랄드 빛 고요한 바다의 저편에, 때로는 깊고 차가워 보이는 짙은 색의 바다 그리고 검은빛의 돌과 어우러져, 때로는 살랑이는 금빛의 풀들과 푸른 들판이 함께인 모습으로 눈 앞에 나타난다. 모두 같은 성산일출봉이지만, 매번 다른 매력과 뿜어져 나오는 거대한 아우라에 볼 때마다 감탄을 금치 못했다. 찍어놓았던 사진들을 꺼내어 그때의 기억을 하나씩 떠올려보는 지금, 괜스레 우리나라가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01 말미오름 정상에서 내려다 본 시흥리 들판과 성산일출봉
02 성산으로 가는 에메랄드 빛 해변과 그 그리고 성산일출봉
03 깊고 차가워 보이는 진한 바다와 검은빛의 돌 그리고 성산일출봉
04 살랑이는 금빛의 풀들과 푸른 들판 그리고 성산일출봉



만약, 올레길을 걷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 한 코스만 걸어야 한다면? 제주올레 1코스를 자신 있게 추천한다.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이자 세계 지질공원으로 지정하고 주변 1km 연안 해역까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될 만큼 아름다운 성산일출봉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는 덤이다. 이것만으로도 올레길 걷기를 해볼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걷는 재미에 보는 재미까지 쏠쏠한 1코스로 미리보기를 하고 나면 올레길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된다. 어느새 제주올레 코스 도장깨기를 하겠다며 올레꾼이 되어버린 자신을 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그렇다. 미리보기에 홀딱 넘어가 올레꾼이 되어버렸다.


제주올레 공식 홈페이지에서 안내하는 1코스 예상 소요시간은 4~5시간이지만,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고 생각해두는 것이 좋다. 아름답다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의 풍경들이 한 장소에서도 몇 번씩이나 내 발목을 잡아끌 것이 분명하고 카메라 셔터는 쉴틈이 없을 테니까.








말미오름 입구 갈림길에서 방향을 알려주는 나무 화살표.


◎ 제주올레 화살표

: 파란색과 주황색 화살표는 제주올레 길의 진행방향을 나타내는 안내표시. 올레길의 정방향(시작점▷종점)으로 걸을 때는 파란색 화살표를, 역방향(종점▷시작점)으로 걸을 때는 주황색 화살표를 따라가면 된다.



완주 스탬프로 가기 전, 광치기 해변에 설치되어있는 간세


◎ 간세

: 제주올레의 상징인 조랑말의 이름을 뜻하며, 제주올레 화살표와 같이 갈림길에서 길의 진행방향을 나타내는 안내표시. 올레길의 정방향으로 걸을 때는 간세의 머리가 향하는 쪽으로 따라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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