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방, 고맙네”, 장모님의 한마디가 내 삶을 바꿨다

가난했던 사위, 그리고 장모님의 깊은 사랑

by 글쌈


아내는 넉넉한 집안의 맏딸이었고, 나는 시골에서 어렵게 자란 막내 아들이었다. 대구에 올라와 열심히 일하며 지내고 있었지만, 결혼은 두 사람의 사랑만큼이나 양가의 관계도 중요하기에 가난으로 기울어진 내 집안이 늘 부담이었다. 이 어쩔 수 없는 환경을 처가 어르신들이 받아 주실까 하는 걱정이 커질 때마다, 나는 억지로라도 용기를 내야만 했다. 그런 나의 애쓰는 모습을 눈치채신 걸까, 아니면 나의 순수한 마음을 알아 주신걸까, 장모님과 장인어른은 한 번도 서운한 기색 없이 따뜻하게 맞이해 주셨다. 그 따스함이 정말 고맙고 감사했다. 그래서 나는 더욱 열심히 노력해서 행복하고 잘 사는 것으로 보답하고 싶었다.


결혼 후 처음 맞는 생일날, 장모님이 백화점 로고가 선명한 쇼핑백을 건네주셨다. 안에는 고급스런 와이셔츠와 함께 영수증이 들어 있었다. 나는 뻘쭘해하며 "감사합니다" 라며 얼른 받았지만, 사실 그 비싸 보이는 선물이 무겁게만 느껴졌다. 아내가 살며시 다가와, “11만 원짜리야.”라고 말했을 때, 몇만 원짜리 옷도 고민하던 내가 이 옷을 입어도 되는지 망설여졌다.


그 와이셔츠를 장농 안에 걸어 놓은 채로 며칠을 보냈다. 입으려고 할 때마다 가격이 떠올랐고, 나에게 너무 큰 옷처럼 느껴졌다. 그러다 결국, 장모님 몰래 백화점을 찾아가 환불을 했다. 그리고는 동네 저렴한 양복집에서 검정색 캐주얼 양복 한 벌을 샀다. 그 양복이 평소 내 생활에 더 맞을 것 같았다. 가격은 12만 원, 1만원을 더 주고 내 삶에 맞는 옷을 선택한 셈이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장모님에 대한 죄송함이 고개를 들었다. 혹여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꾸라며 말없이 영수증까지 챙겨 주신 세심한 배려가 자꾸 떠올라 마음이 무거웠다.


며칠 후, 아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엄마한테 말했어”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장모님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려야 할지, 변명을 해야할지 머리가 복잡했다. 그렇게 망설이던 다음날, 장모님이 찾아오셨다. 함께 저녁을 먹은 뒤 장모님이 차분히 말씀셨다. “김서방, 고맙네. 이제 내 딸 먹고 사는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 그 순간 나는 울컥했다. 사실, 서운한 마음을 드러낼까 긴장했는데, 장모님은 사위의 서툴고 못난 행동마저도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셨다. 어쩌면 겉모습보다는 알뜰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좋게 봐 주신 것이었다.


그 일이 있은 지도 어느덧 22년, 이제 나는 오십을 바라보고 있다. 여전히 절약하며 소박하게 살고 있고, 그 덕에 이제는 남부럽지 않게 생활하고 있다. 장모님이 선물해 주셨던 그 와이셔츠는 입지는 않았지만, 그 날 장모님이 보여주신 따뜻한 마음은 가슴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가끔, 안방 장롱 속에 걸린 브랜드 와이셔츠를 볼 때면 흐뭇하게 미소 짓곤 한다. "김서방 고맙네" 라는 장모님의 그 한 마디가 나와 우리 가족을 지켜준 힘이었다.

작가의 이전글봄을 품은 겨울 매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