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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림공작소 Jul 09. 2020

원작과 별개로 놓고 봅시다

백 여덟 번째 영화, 토탈 리콜을 보고


리메이크작의 숙명일 수도 있는데, 평이 좀 야박하다. 그나마 우리나라 평점은 좋은 편이지만, 외국에서는 처참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물론, 원작에 대한 향수와 기대감이 깔린 상황에서 그 모든 것들을 뛰어넘기란 쉽지 않겠지만, 원작을 보지 못한 나로서는 이런 편견 없이 볼 수 있었다. 영화 전개가 다소 억지스럽다는 생각도 하긴 했지만, 영화 설정상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현실의 직장인과 다름없는 고민을 하는 더그 (콜린 파렐). 지구 반대편까지 오가는 긴 출퇴근을 하며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루하루가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 현실에 순응하지 않고 좀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그는,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꾸는 것이 마음에 걸려 기억을 심어주는 업체 '리콜'을 찾는다. 꿈속에서의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자세히는 몰라도, 뭔가 특별할 것 같다고 짐작하는 그는 '비밀 요원'으로서의 기억을 의뢰한다. 하지만, 기억 주입을 시작하기도 전에 밀려드는 경찰들과 좁혀드는 포위망.


이제부터 영화가 끝날 때까지 드는 생각은 하나다. 진짜일까 가짜일까. 기억 주입을 시작하지도 못 한 게 맞을까. 아니면 이것도 주입된 기억일까. 이때부터 영화 중반부까지는 쉼 없이 몰아치고, SF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장면들도 많이 볼 수 있다. (이런 것들이 원작에도 있는 설정인지는 모르겠으나 30년 전에 이런 상상은 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 경찰이 들이닥쳐 밀폐된 공간 안으로 수십 개의 카메라를 쏘아 올려 내부 공간의 3D 영상을 만들어내는 것, 전화기가 손바닥에 삽입되어 손을 유리에만 갖다 대면 디스플레이로 활용할 수 있는 것, 신분 위조용으로 가짜 얼굴 영상을 만들어내는 장치, 마지막으로 호버 자동차는 식상하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자유낙하 하는 연출은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언더월드를 괜히 찍은 게 아니구나 싶을 정도로 날아다니는 로리(케이트 베킨세일)와의 추격전까지. 긴박한 상황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런데 이 점이 다소 걸렸다. 트랜스포머의 그 눈 돌아가는 변신과 액션도 2시간 내내 이어지면 지루한 법이다. 이 영화가 그렇다. 더그와 여자친구 멜리나 (제시카 비엘)는 거의 군대라고 해도 될 정도로 많은 적에게 둘러싸이지만, 그 많은 위기를 어렵지 않게 빠져나간다. 로리는 터미네이터 2의 T-1000과도 같은 집요함으로 끝까지 쫓지만, 그 둘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모든 것이 주입된 기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충분히 말이 되니까.


'주인공은 죽기는커녕 다치지도 않는다'는 점이 유난히 드러나는 영화인 것만 제외하면 충분히 재미있게 봤다. 보다 보면 떠오르는 영화 속 배경이나 설정이 많아서, 그런 점을 생각하며 보는 재미도 있다. 잃어버린 기억과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헤매는 설정은 본 아이덴티티를,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나뉜 미래의 모습은 레디 플레이어 원을, 여기가 어느 나라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문화가 섞인 배경은 애니메이션 빅 히어로 6가 연상된다. 그리고 어디까지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없는 설정은 블랙 미러 시즌 3의 베타테스트 에피소드와 닮았다.


마지막으로 정말 닮은 영화는 콜린 파렐의 또 다른 대표작이자 마찬가지로 필립 K.딕의 원작을 영화로 만든 마이너리티 레포트. 끝도 없이 올라간 눈높이 때문에 2002년 당시의 신선함까지는 없지만, 그래도 앞서 언급한 여러 설정과 장면들은 SF 영화 특유의 독특한 시도가 마음껏 드러난 장면들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냥 쓱 지나가기엔 아쉬운 영화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극장판보다 약 12분 정도 긴 감독판이 있다고 한다. 나는 넷플릭스로 봤는데, 러닝타임을 보니 극장판 같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감독판의 평이 더 좋다. 둘 다 볼 수 있는 환경이라면 감독판을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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