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영화, 주먹왕 랄프를 보고
주먹왕 랄프 2가 개봉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내와 나는 보러 가자는 말만 하다가 어느덧 2주가 지나 버렸다. 그런데 속편을 보려니, 정작 1편의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아 다시 보기로 했다. 요즘은 속편과 본편의 간격이 긴 영화들이 많아서, 속편을 보기 전에 복습을 하는 일이 적지 않다 :) 다행히 넷플릭스에 1편이 있길래 이번 주말에 봤다.
토이스토리에서 봤던 그 신선함이, 다시 한번 보인다. 불을 끄고 방문을 닫으면 장난감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처럼, 오락실 문이 닫히면 게임 속 캐릭터도 그들만의 생활이 시작된다. 재미있는 것은 게임을 일종의 역할극으로 본 관점이다. 악역으로 설정된 랄프는 역할만 악역일 뿐, 속은 여리기 짝이 없다. 열심히 일을 하는데 아무도 자신을 칭찬해주지 않아 야속하기만 하다.
그런 악역들끼리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새롭고 웃기다. 영화나 미드를 보면 중독자들의 모임이나 암환자들의 모임 등에서 저런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런 악역들의 모임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다. 저런 장면들에서 반가운 캐릭터를 찾아내는 재미도 쏠쏠하다. 장기에프, 바이슨, 쿠파 등 어렸을 때 했던 게임 속 캐릭터를 이런 모습으로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작년에 개봉했던 스티븐 스필버그의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장면마다 튀어나오는 반가운 캐릭터들을 만날 때와 비슷한 감정이다.
엔딩이 마냥 해피해서는 기억에 잘 남지 않는다. 특히, 애니메이션은 모두가 행복한 엔딩이 많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래서 사람들이 최고의 엔딩에 대해 이야기할 때 토이스토리 3을 많이 거론하고, 토이스토리 4가 나온다고 하니 "그렇게 완벽하게 끝난 시리즈에 어떻게 또 후속작이 나오는지"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표하고 있다. 그러나 모두가 행복한데도 기억에 남는 엔딩도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인 몬스터 주식회사가 그렇다. 그리고 주먹왕 랄프도.
게임 속 캐릭터들의 행동을 역할극으로 정의한 것도 재미있지만, 게임 바깥세상의 설정도 기발하다. 전원 케이블을 타고 출퇴근을 하는 게임 속 캐릭터, 다른 게임과 연결될 수 있는 멀티탭, 다른 게임으로 넘어가면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지지만 결국은 한 오락실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게임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면 게임을 하고 있는 손님이 보이고, 화면 방향으로 물건을 던져서 '고장'이라 붙은 종이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일종의 액자식 구성으로 봐도 될 것 같은데, 그 점이 참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엔딩 장면은 이 설정을 너무나 잘 살려냈다.
"하루 중에 가장 즐거운 순간은 옥상에서 떨어질 때야.
주민들이 날 높게 들면 '슈가 러시'가 한눈에 보이거든"
게임 속 세상을 기발하게 표현해낸 이들이, 이번에는 인터넷 세상을 어떻게 표현할지 기대된다. 극장에서 내려가기 전에 볼 수 있으려나!
추신 1. 주인공 랄프가 나오는 게임은 실제로는 없는 것이라고 하지만, 펠릭스와 랄프는 왜 이렇게 낯익은지 모르겠다.
추신 2. 게임 팬이라면 엔딩 크레딧 화면도 눈을 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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