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번째 영화, 오션스 8을 보고
이제는 특별하지 않게 됐지만, 주연 배우급으로 포스터가 가득 차는 멀티 캐스팅의 시초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오션스 시리즈. 오션스 8은 오션스 시리즈의 스핀 오프 작품으로, "케이퍼 무비 + 멀티 캐스팅"이라는 공식은 유지하면서 주연 배우를 모두 여성으로 캐스팅한 영화다. 예전에 오션스 일레븐은 재미있게 봤지만, 오션스 트웰브를 지루하게 봐서 이 시리즈에는 흥미가 떨어진 상태였지만, 선공개된 포스터 한 장에 의외로 마음이 동했다.
포스터는 정말 강렬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인 앤 해서웨이를 포함하여, 산드라 블록과 케이트 블란쳇까지 원투쓰리 펀치로 등장. 오션스 시리즈에 대해 안 좋은 기억이 있을지라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오션스 시리즈의 장점과 단점을 그대로 빼다 박았다. 장점은 역시 뭐니 뭐니 해도 출연진이다. 특히 앤 해서웨이는 제대로 화려하게 나와주기 때문에 팬으로서 보는 즐거움도 만만치 않다. 어디서든 예쁘지만, '원데이'나 '악마나 프라다를 입는다'처럼 패션쇼 하듯 화려하게 나와 영상미를 더해준다 :)
그리고 케이트 블란쳇과 산드라 블록은 50이 넘은 나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매력적이다. 케이트 블란쳇이 나온다고 하면 '그 영화 괜찮겠다'는 신뢰감은 주지만, 정작 본 영화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꼭 카리스마를 분출하는 배역만 맡은 것도 아닌데, '토르 : 라그나로크' 때문인지 유독 강한 인상을 주고 그것이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다. 영화에서도 내내 멋졌지만, 아래 장면에서는 특히 더 멋짐이란 것이 폭발했다.
산드라 블록은 여자판 매튜 맥커너히 같은 느낌이다. 커리어 초반에는 코믹하거나 외모를 활용한 가벼운 로맨스물이 많았던 것 같은데, 어느샌가 대체 불가 주연급으로 나오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래비티' 이후 인상이 확 바뀌었는데,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긴 '블라인드 사이드'부터 봐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얼마 전에 넷플릭스에서 대박을 친 '버드 박스'도.
앞서 언급한 대로 오션스 시리즈의 단점은 너무나 평탄하다는 것이다. 수천억 가치의 도난이 이렇게 쉬울 수가 없고, 범죄자들이 성인군자도 아닌데 1/N에 잡음 하나 없다. 하다못해 치킨집 동업을 해도 1/N에는 잡음이 생기기 마련인데. 배우들의 성별이 바뀌어 보는 재미는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그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오션스 13 이후 11년 만이니, 범행에 쓰이는 도구나 방식이 좀 더 현대적이 된 것을 제외하면 큰 차이가 없다. 어차피 남자든 여자든 범행 목적이 돈이나 보석, 금괴인 것은 똑같으니.
오션스 시리즈가 케이퍼 무비의 대표 격이긴 하지만, 가장 뛰어난 작품은 아니다. 출연진들은 이보다 훨씬 약하지만,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 같은 영화가 훨씬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시나리오가 기막히게 탄탄한데, 단순히 배우들을 많이 출연시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다들 나와야 하는 이유가 있었던 점에서 다르다. 이처럼 시나리오가 탄탄할 수 없었다면, '이탈리안 잡' 같이 좀 더 꼬아 놓을 필요는 있지 않았을까. 오션스 시리즈는 너무 일사천리라는 점이 항상 아쉽다. 배우들을 좋아한다면, 좀 가벼운 영화를 찾고 있다면 보기 좋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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