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번째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보고
요즘은 그런 편견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애니메이션은 아이들을 위한 장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애니메이션과 만화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참 억울한 편견인데, 이런 작품은 참 반갑다. 그런 말은 어디까지나 편견이라고 말해주는 작품이니까. 실제로 500만 명 가까운 관객을 불러들였으니,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나뿐만이 아닌가 보다.
한동안 임팩트가 없었던 픽사가 화려하게 돌아왔다. 그 전작인 '몬스터 대학교'는 전작을 너무나 좋아하기 때문에 평타 이상으로 기억하지만, 전작의 후광을 제외하고 보면 훌륭한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 전의 작품들도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다. 픽사답지 않았다.
이번엔 스케일이 확 줄었다. 따지고 보면 이 이야기는 11세 소녀가 가출할뻔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누군가 크게 다치지도 죽지도 않는다. 누구나 겪을 만한 그저 그런 일상에 그칠 이야기를 정말 멋지게 그려냈다. 인간의 기억과 심리를 탁월하게 디자인한 ‘인사이드’ 세상을 통해서 말이다.
이 애니메이션은 다섯 가지 감정이 살고 있는, 소녀의 머릿속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약 10여 분간 ‘기쁨’의 설명이 이어지는데, 여기서부터 이 영화에 압도될 수밖에 없다. 뇌, 기억에 대한 이야기는 굉장히 복잡해서, 메커니즘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은 의외로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어려운 설정을 정말 직관적이고 간단하게 디자인했다. 핵심 기억장치, 장기 기억장치, 꿈, 섬, 오래된 기억이 조금씩 소멸되어가는 과정 등을 기가 막히게 그려냈다.
이런 탁월한 설정뿐만 아니라, 슬픔에 대한 시선도 인상적이다. 처음에는 ‘슬픔’을 마치 암세포처럼 취급했다. 닿기만 하면 퍼지는, 그리고 다시 되돌릴 수도 없는 그런 감정으로. 그래서 선을 긋고 밖으로 나오지도 말라고 했지만, 뒷부분에서 슬픔에 대한 인식이 변한다. 슬픈 감정은 슬퍼해야 이겨낼 수 있는, 울고 싶을 때는 마음껏 울어야 시원해지는 그런 감정을 정말 멋지게 표현해냈다.
그 외에 영화 속 표현 방법 중 2가지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우리가 보기에 아이는 혼자서 노래 부르고 혼자서 뛰어다니는 것 같지만, 아이는 상상 속 캐릭터 봉봉과 항상 함께 했다. 수십, 수백 번 봤던 일상을 저렇게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발상의 전환이 무엇인지 가르쳐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감정 컨트롤 센터 화면을 보여준 것도 재미있었다. 특히, 아이의 다섯 가지 감정 중 리더 격은 ‘기쁨’이지만, 엄마의 머릿속에는 ‘슬픔’이 가운데에 앉아있고, 아빠의 머릿속에는 ‘분노’가 중앙에 있다. 나이를 먹으며 기쁨보다는 슬픔, 분노가 앞서나 보다. 내 마음속에서는 ‘기쁨’이 영화 속에서처럼 고생하지 않도록, 그러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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