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일곱 번째 영화, 너의 이름은을 보고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중에 믿고 보는 감독이 3명이 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호소다 마모루, 지브리 스튜디오의 상징 미야자키 하야오, 그리고 바로 신카이 마코토.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감독은 호소다 마모루이지만, 이야기가 아닌 분위기만 놓고 본다면 신카이 마코토를 가장 좋아한다. 초속 5cm 예고편은 정말 수백 번은 돌려봤다. 40초 분량에서 이런 감정 끌어내는 것은 거의 사기에 가까울 정도. 영상과 음악이 이렇게나 잘 어울릴 수가 없다.
지금은 빛의 연금술사로 유명하지만, 내가 처음 접했던 것은 약 15년 전이었다. 당시 별의 목소리라는 애니메이션으로 화제가 됐었는데, 다름 아니라 25분 분량의 애니메이션을 혼자서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봐도 상당한 퀄리티인데 말이다. (심지어 성우도 본인이 했다) 예나 지금이나 오랜 시간 동안 혼자서 뚝딱뚝딱 잘하는 사람에게 경외감을 갖기 때문에, 당시에 상당히 놀랐었던 기억이 난다.
그 장인이 자본을 만나, 좀 더 스케일 있는 작품들을 내놓기 시작했는데 공교롭게도 장편 영화들은 평이 영 좋지 않았다. 최고 수준의 작화에 매력적인 이야기는 욕심이었을까. 여전히 초속 5cm나 언어의 정원 같은 단편이나 옴니버스 작품에서는 빛을 발하였지만, 장편에서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니 아쉬움이 따랐다. 그러나 최근작인 '너의 이름은'은 달랐다.
남녀의 몸이 바뀌고, 서로의 장소가 다르고, 재난이 닥치는 등 익숙한 설정이 많이 섞여 있다. 나쁘게 말하면 클리셰고 좋게 말하면 보편성 혹은 대중성을 갖췄다. 개인적으로 이런 소재임에도 연출 덕분에 식상하다는 인상은 받지 않았다. 오히려 불친절하다는 평이 있을 정도로, 다소 복잡할 정도의 교차 편집으로 남녀가 바뀌는 설정을 뻔하지 않게 보여줬다. 성별이 바뀌어서 집이나 학교에서 코믹하거나 난처한 에피소드가 많이 나오는 것은 어디선가 자주 봤던 장면인데, 초반에 그런 장면을 과감히 스킵해버린 점이 좋았다.
또한, 영화 중반 중반에 OST가 치고 들어가는 장면 전개가 독특했다. 보통 은은하게 깔리거나 엔딩에만 쓰이기 마련인데, 이번 영화에서는 처음과 중간할 것 없이 OST가 과감하게 쓰였다. 영화 시작한 지 30분이 지났는데 갑자기 나와서 좀 당황하기도 했다. 흐름이 끊긴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서 호불호가 갈리는 연출일 것 같은데, OST가 좋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신선하다고 생각했다.
후반부에는 다소 오글거리는 부분이 있긴 하다. 최대한 스포를 자제하며 쓰고 있어서 자세한 이야기는 할 수 없지만, '너의 이름은?'만 수없이 외치는 장면이 바로 그 부분이다. 일본 영화에서 자주 보이던 특유의 감정 과잉을 애니메이션에서 만나다니. 일본 영화를 보면 감정이 관객하고 같이 올라가야 되는데, 혼자서 폭주하고 있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나는 아직 하나도 안 슬픈데 캐릭터들은 세상 슬프다. 애니메이션의 경우 그런 점을 잘 못 느껴서 일본 작품은 영화보다 애니메이션을 선호하는데, 이 애니메이션에서 그런 점을 느꼈다. 그런 부분을 못 견디는 사람만 아니라면, 상당히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일찌감치 완성형에 도달한 작화에 이어, 이제는 스토리도 훨씬 대중성을 갖춘 신카이 마코토. 다음 영화가 올해 개봉할 예정이라고 한다. 국내에서는 늦어도 내년 초에는 개봉할 것 같은데, 이번에도 또 좋은 작품으로 기대를 충족시켜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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