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두 번째 영화, 럭키를 보고
요즘 내가 가장 아끼는 예능 프로그램은 골목식당과 방구석 1열이다. 내가 보지 않은 영화를 방구석 1열에서 다룰 때는, 킵해뒀다가 영화를 보고 나서 다시보기로 본다. 럭키도 그런 영화다. 역시나 내가 요즘 아끼는 플랫폼인 넷플릭스에 있길래 찜해뒀다가 계속 미루고만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보게 됐다.
유해진은 정말 모든 연기가 다 된다. 선하거나 악한 역할, 부유층과 빈곤층, 고위직과 서민 등 어떤 옷을 입혀도 잘 어울린다. 그래도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잘하는 것은 코미디가 아닐까. 타짜의 고광렬, 완벽한 타인의 태수, 해적의 철봉 등 코믹영화에서 존재감이 남다르다. 최근에 주원과 함께 나왔던 그놈이다를 봤었는데, 역시 유해진은 코믹일 때가 더 좋긴 하다.
럭키는 흔치 않은 유해진의 원톱 영화에 주특기인 코미디, 그리고 최근 2~3년간 극한직업 이전에 가장 대박 난 코미디 영화였으니 기대가 있었다.
이 영화는 "초반의 설정 + 유해진의 하드 캐리 - 부족한 개연성"으로 정리된다. 이 영화에는 익숙하지만 흥미로운 설정들이 많이 들어있다. 기억상실, 부자와 가난한 자의 바꿔 살기, 킬러 등. 덕분에 초반에는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궁금했고, 형욱 (유해진)의 집은 이상한 장치가 많이 숨어있어 더욱 궁금증을 자아냈다.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의 힘은 떨어졌고, 유해진의 하드 캐리로 끌고 갔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코미디 영화가 그렇지만, 개연성이 많이 떨어진다. 목욕탕 씬은 모든 이야기의 시작을 만들어내는 장면이니 작위적이어도 그다지 거슬리지는 않는다. 어차피 "목욕탕에서 극과 극의 환경에 놓인 사람의 인생이 바뀐다면?"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하는 영화이니까. 그러나 후반부는 그렇지 않다. 코미디 영화에는 이런 짜임새의 허술함이 용인되는 편이긴 하지만, 이 영화가 '킬러'라는 분야를 다루는 만큼, 적어도 그 부분에서는 좀 더 사실적이었으면 좋았을 법했다. 그동안 봐왔던 청부살인 현장과는 너무 달랐으니 말이다. 스포일러가 되어 자세히는 말할 수 없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특히 아쉬웠다.
유해진이 이끌어가는 영화였지만, 다른 부분을 메워주는 역할은 다른 주연들보다는 조연 캐릭터였다. 엑스트라 연기 중 주막에서 술 마시는 장면처럼 엑스트라 동기(?)인 일성 (조한철)과의 씬이 재밌었다. 일성이 국가부도의 날의 그 사람일 것이라고는 전혀 매치하지 못했다 :)
그리고 특별 출연치고는 존재감이 엄청 컸던 전혜빈과 이동휘도 재미있었다. 전혜빈과 이동휘는 원래 내가 좋아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다른 주연 배우들보다도 임팩트가 훨씬 컸다. 이준, 조윤희, 임지연 역할은 비현실적인 면이 많은 캐릭터들인데, 적어도 이 둘은 촬영 현장에서의 모습만 보이니 훨씬 자연스러웠다.
빵빵 터지진 않아도 킥킥 거리는 장면은 종종 있었다. 집에서 영화 보면서 빵빵 터지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니지 않나. 극한직업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코믹은 아니고, 중간에 교훈이나 감동을 주려는 장면이 있다. 그런 부분에 심하게 거부감만 없다면, 자신 있게 추천은 못 해도 가벼운 영화를 찾을 때는 한 번 권해 볼 영화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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