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다섯 번째 영화 아닌 드라마, 코코를 보고
최고의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PIXAR. 정말 많은 작품들을 좋아하지만, 이 중에서도 가장 애정이 많은 작품은 몬스터 주식회사다. 기발한 상상력과 재미있는 캐릭터, 그리고 훈훈한 결말까지. 그 긴 여운에 한참을 빠져있었다. 그리고 '나의 최애 픽사 작품은 몬스터 주식회사지'라는 생각이 작품에 대한 애정을 키워만 갔다.
그런 나에게 최고 작품을 위협하는 픽사 작품이 생겼는데, 바로 코코다. 재미도 있고 음악도 좋고 따뜻하고 감동적이다. 정말 교과서적인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아닐지. 게다가 내가 약한 코드를 건드렸다. 아니, 직접적으로 파고들었다.
코코는 아무도 가본 적이 없는 사후세계를 그렸는데, 공교롭게도 신과 함께 열풍이 휩쓸고 간 얼마 뒤에 개봉했다. 웹툰 신과 함께를 봤을 때의 그 신선한 충격이 영화에 온전히 담긴 느낌은 안 들었지만, 공통점은 있었다.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반면, 코코의 사후세계는 파티다. 한쪽에서는 벌벌 떨면서 재판을 받고 불구덩이에 빠지고 모든 관문을 통과하는 아주 극소수만이 누리는 호사가 (고작) 환생인데, 여기서는 반짝반짝 빛나는 곳에서 신나게 노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신나는 저승을 그리고 있는데도, 극장에서 눈물이 핑 돌았던 기억이 난다. 나의 약한 코드, 할머니와의 이야기를 그렸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9년 전에 돌아가셨다. 손주 중에서 막내였던 나는 유일하게 반말을 하고, 할매라고 부르며 무척이나 따랐다. 20년 가까이 밤 9시는 할머니와 통화하는 시간이었다. 의무감에 한 게 아니라, 그냥 재미있어서 했다. 오늘 뭐 먹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했었다. 수험생 때를 제외하면 거의 매일 같이 전화를 드렸고, 대학생 때 3주 동안 혼자 유럽여행을 다닐 때조차 매일 전화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유난스러웠던 것 같은데, 그때는 공중전화를 보면 반사적으로 갔었다 :)
애니메이션 속에서 사람은 이승에서 잊히지 않으면 저승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아직도 매일 쓰는 비밀번호 중 하나가 할머니의 생신이다. 그러면 별로 의식을 안 해도 그 날이 되면, '아 오늘이 생신이구나' 하고 한 번쯤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잊히지 않으면 저쪽에서도 잘 지내시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에 코코 할머니가 아버지와 재회하는 장면이 나온다. 난 그 장면이 참 위안이 됐다. 할머니가 예뻐했던 막내아들이 이른 나이에 돌아가셨는데, 거기서 만나서 그간의 이야기를 했을 것만 같다. 생각지 못 하게 일찍 와서 좀 놀라셨겠지만.
사후세계가 진짜 있긴 한지, 어떻게 생겼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이왕이면 코코 같았으면 좋겠다. 두 분도 아프지 않은 곳에서 신나게 놀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적어도 수십 년 동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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