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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림공작소 Jan 01. 2019

소시민 히어로물

다섯 번째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고


이상하게도 천만 영화는 막 끌리지가 않는다. 청개구리 기질이 있는 것은 아닌데, 천만 영화 중에 극장에서 본 영화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보더라도 일찌감치 봤다거나). 이 영화도 그런 케이스라서, 개봉 전부터 재미있겠다고 생각을 했었지만 정작 극장에서는 놓쳤다. 그 후 잊고 지내다가 신혼여행의 길고 긴 비행기 안에서 발견하게 되어, 반가운 마음에 보게 됐다.


5.18 소재 영화들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영화 중에서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5.18 민주화운동, 기억해야 할 비극적인 사건이지만 영화의 소재로서 새롭지는 않다. 화려한 휴가, 26년, 박하사탕, 스카우트 등이 5.18을 소재로 했었고, 각각 접근하는 방식도 달리했다. 화려한 휴가가 정면으로 부딪히는 정공법이라면, 26년과 박하사탕은 5.18의 영향으로 인해 삶이 어떻게 무너졌는지 극적으로 보여준다. 반면, 스카우트는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초고교급 투수 선동렬을 스카우트하는 과정을 그리면서, 5.18을 자연스럽게 녹인다. 


여담이지만, 5.18을 다룬 영화 중에서는 스카우트를 가장 좋아한다. 모든 한국영화를 통틀어 저평가되어 참 안타까운 영화라고 생각한다. 직접적이지 않으면서도 하고 싶은 말을 다 전달한다. 김현석 감독의 특기인 건지, 최근 작품인 아이 캔 스피크에서도 예고편만 봐서는 짐작조차 못 했던 위안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민감한 소재를 무작정 신파로 다루지 않는다는 점에서 참 세련됐다.



여하튼, 택시 운전사는 광주에서의 현장을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 화려한 휴가와 닮았지만,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독일인 기자 피터 (토마스 크레취만)의 등장으로 다른 새로운 이야기가 되었다. 다른 영화들에 비해 좀 더 희망적이다. 다른 영화들이 5.18 민주화운동의 피해를 중심으로 다루었다면, 이 영화는 그 상황에서 어떻게 나아질 수 있었는지를 그렸다. 그래서 신파라는 평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결이 좀 다른 히어로물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초능력은 물론 변변한 능력도 권력도 없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런 일이 현실에 알려지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은 분명하니 말이다. 만약에, 이들이 없었다면, 이런 시도를 하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몇몇 좋은 장면과 그렇지 않은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공교롭게도 전부 후반부 장면인데, 검문소에서 중사 (엄태구)가 서울 번호판을 보고도 통과시켜주는 장면의 긴장감이 좋았다. 엔딩을 뻔히 알고 있는 상황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연출된 것은 순전히 엄태구의 눈빛과 목소리 때문이 아닐까 싶다. 밀정의 하시모토 이미지 때문에 눈만 봐도 무서운 배우가 됐다 :) 


반면, 많은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 장면인 택시 추격전은 너무 영화적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에서는 오버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이 장면은 너무 나갔다. 어차피 신파 노선을 택하지는 않은 영화인데, 굳이 왜 이런 장면을 넣었는지는 아이러니다.



장훈 감독은 흥행 성적에 비해 덜 알려진 편이다. 내놓는 영화마다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잡고 있는데, 왜 그런지 신기할 따름이다. 영화는 영화다, 의형제, 고지전, 택시운전사까지… 만드는 영화마다 모두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고지전 개봉 시기 전후로 김기덕 감독과의 불화로 배신자 낙인이 찍히면서 영화 활동이 좀 뜸한 편이다. 아직 차기작에 대한 소식이 들리지 않는데, 다음 영화에 대한 소식도 들렸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남북관계나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하지 않은, 영화는 영화다처럼 독특한 소재를 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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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는 여섯 번째 영화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 리뷰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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