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brunch.co.kr/@glitteryoung/1 에 이어서...
네덜란드에서는 Pararius와 Funda가 부동산 중개 플랫폼의 양대산맥이다. Pararius에는 월세로 나온 게 많고, Funda는 부동산 매매 목적에 부합한다. 검색과 사이트 이용의 용이성, 응답률을 따지면 개인적으로 전자가 더 좋았다. 매일 이 웹사이트를 붙잡고 무한 새로고침에 들어갔다. 새로고침 작업은 콘서트 피켓팅으로 이미 익숙해진지라 힘들지는 않았다. 여행 가기 전 호텔이나 에어비앤비 찾는 걸 워낙 좋아해서 이것도 나름 재밌었다.
Pararius에는 많은 에이전시들이 월세로 나온 매물을 올려놓는다. 1차적인 연락은 에이전시에게 하게 되는데, Pararius 웹사이트에는 편리하게 연락할 수 있는 메세지 기능이 있다. Holland2Stay와 달리 가입비는 없다. 경험상 게시된 지 좀 된 매물은 연락해봤자 소용없다. 새로고침하다가 새로 올라온 매물에 바로 메세지 보내는 게 가장 좋다.
마음에 드는 스튜디오나 아파트를 발견했다면 바로 메세지를 보내야 한다. 고민할 시간이 없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처음부터 나에 대한 모든 정보를 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일단 문의해보기, 관심 보이기로는 어림도 없다. 첫 메세지를 보내면서부터 알려주면 좋은 간단한 정보는 아래와 같다. 에이전시에 따라 별도의 웹사이트를 갖춘 경우도 있으니 자체 사이트의 메세지 기능을 이용해도 좋다. 나는 자체 사이트 연락을 통해서도 답을 받았다.
- 이름, 국적, 왜 네덜란드에서 집을 찾고 있는지
- 네덜란드에서 할 일, 직장 이름, 총 월 급여(gross salary)
- 집에 거주할 인원, 렌트 시작 희망 일자, 렌트할 총 기간
- 집을 깨끗이 쓸 거라는 생활습관 어필: (예) 담배 피우지 않음, 집을 항상 깨끗하게 청소함
- 집 보러 가고 싶으니 가능 여부 묻기
- 연락 가능한 이메일, 전화번호
그냥 집 구경 좀 해보겠다는 건데 이렇게까지 정보를 제공해야 하나 싶을 것이다. 하우징 시장에서 을의 입장이므로 어쩔 수 없다. 이 정도 정보를 제공하면 그나마 집 보러 오라는 연락은 메일로 받을 수 있다. 답변이 아예 안 오는 에이전시는 과감히 제외시켰다.
집 보는 건 '뷰잉(viewing)'이라고 얘기한다. 내가 갈 당시에는 아직 외국인들이 네덜란드에 대거 돌아오는 시기가 아니었는데도 별거 없는 집에 뷰잉 하러 온 인원이 한 타임에 최대 20명이나 됐다. 뷰잉을 하고 난 뒤에 고민하는 건 사치. 구경한 집이 100% 마음에 안 들었어도 괜찮다 싶으면 바로 렌트할 의사가 있다고 연락을 줘야 한다. 물론 선착순이 아니기 때문에 뷰잉 후 먼저 연락했다고 그 집의 세입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에이전시의 1차 오디션을 통과했다면, 이제 집주인의 오디션을 또 통과해야 할 차례.
내가 최종적으로 렌트하게 된 집을 보여준 에이전시는 뷰잉 하러 가기 전부터 기본 서류를 보내달라고 했다. 서류 검토를 통해 뷰잉의 기회를 줄지 미리 결정하는 것이다. '자격을 갖추지 않으면 애초에 집을 보여줄 수 없다' 뭐 이런 접근법이라고 볼 수 있다. 어차피 탈락시킬 사람이면 뷰잉 기회를 주지 않고 시간 낭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해당 에이전시에서 요구한 대로 기본 정보를 채운 양식, 여권사본(번호와 사진 마스킹, 워터마크 삽입), 고용계약서를 보냈다. 앞서 말했듯이 내가 저축을 이만큼 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보다 렌트를 계속 낼 수 있는 월급(금액도 중요)을 받는다는 것을 증빙하는 게 중요하다. 최근 3개월 급여명세서와 지난 1년 치 급여명세서도 혹시 몰라 준비해 두었다.
어느 곳에서나 가장 중요하지만 사람들이 생각보다 잘 지키지 않는 것, 바로 달라고 요구한 자료를 그대로 주는 것이다. 이러이러한 자료를 보내달라고 요청받았으면 꼼꼼히 정리해서 한 번에 보내주자.
나는 심지어 '집주인에게 보내는 편지(letter to the landlord)'까지 써서 첨부하여 보냈다. 에이전시에서 예시로 든 제출 문서이고, 현지인에게 추천받은 방법이기도 하다. 1페이지짜리 편지를 통해 집주인에게 어필하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겠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거주할 집을 하루빨리 찾을 수 있다. 나는 간절하게도 호텔, 에어비앤비, 서브렛을 전전하고 싶지 않았다. 편지의 내용은 위에 메세지로 보낸 정보를 나열한 것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좀 더 격식 있게 그 내용을 전달하는 게 포인트. 내 상황에서는 준비할 수 없었지만 가능하다면 제출할 추가 자료는 전에 살던 집 월세 지급을 밀리지 않았다는 전 집주인의 레퍼런스다.
소득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보증인을 구하면 된다. 현지인을 보증인으로 두면 좋지만 개인정보를 공유해야 한다는 점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부탁하기에 부담스럽다. 대부분 믿을만한 부모님을 보증인으로 둔다. 이 경우, 보증인의 신분증 사본과 최근 3개월 급여명세서를 첨부해서 보내야 한다. 참 복잡하다.
뷰잉 기회 획득, 실제 뷰잉, 집주인의 승인을 거쳐 나는 원하던 집 중 한 곳의 집주인에게 선택받았다. 뷰잉은 현지에 있는 사람이 대신 해주었다. 이 집은 뷰잉 기회 자체를 여러 후보에게 주지 않았고, 월세가 높은 편이라 네 명의 후보밖에 없었는데, 그중 내가 선택된 것이다. 이유는 묻지 않았지만 내가 서류를 잘 챙겨서 보냈고, 검증할 수 있는 직장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짐작한다. 다른 집은 연락조차 오지 않거나 뷰잉 이후 집을 원한다고 했지만 탈락했다.
"Pick me, pick me!"를 외치다가 선택되었다는 메일을 받은 순간 대학 합격 결과를 조회했을 때의 쾌감을 느꼈다.
네덜란드 라이프,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