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손 때 묻은 1학기 스케줄표가, 짱이에게는 성적표가 선물로.
Geometry 수학 97.22 / 100
Biology 과학 98 / 100
Physical Education 체육 100 / 100
Business Information Management 99.29 / 100
짱이는 "아함! 아함!"이라며 거실 책상을 탕 탕치며 기세 등등하다. 온라인고등학교다 보니 채점이 실시간으로 나온다. 이번 학기 7과목을 이수해야 하는데, 드디어 네 과목을 마쳤다. 시험을 보겠다고 신청하기 위해서는 과목별로 70% 이상을 이수해야 한다. 짱이가 네 번째 과목의 제출하고 하룻 저녁, 아니, 하루 새벽을 새우잠으로 자고 일어났더니 성적표가 와 있었다. 역시 온라인~~~ 스피드, 좋아! 녀석은 자기가 마음먹은 대로 되었다며 흡족해한다. 짱이가 지금까지 쏟은 노력에 응원을 보내기 위해 마미는 "모두 박수~~"라고 큰 목소리로 외치며 우리 셋은 스탠딩 박수에 환호까지 외쳤다. 하지만 엄마 마음은 어쩐지 짠하다. 지난하고 치열했던 전투를 치른 후에 다음 전투를 위해 맞는 짧은 새벽을 즐기는 듯한 감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를 바라보는 나는 왜 이리 안쓰러운지.... 학교 진도를 맞추어내느라 모든 것을 뒤로한 녀석의 모습은 '참을 인'자가 다섯 개는 되는 것 같다. 오죽했으면 닉네임이 "(베) 짱이"일까! 원래는 하루 3-4편은 족히 영화를 보는 녀석이 영화를 안 본 지도 수 십일, 정신줄 놓고 듣는 음악도 신기하리만큼 내려놓은지 몇 주, 음악 레슨들도 본인이 선생님들과 의논해서 일정을 비우고, 미식가인 녀석인데 동네 음식들의 메뉴만 넋두리처럼 늘어놓고 "그냥 집에서 밥 먹을래. 시험 다 보고 나서 실컷 먹자"라 하고, 짧은 헤어스타일이 좋다며 거의 군인 아저씨 정도로 머리를 깎던 아이가 집 밖을 안 나갔더니, 이젠 앞머리를 묶어야 될 정도로 눈을 가리게 되었다. 짱이는 야행성이라 오밤중에 공부에 효율이 오른다. 새벽에 깨서 이 아이를 보면 한 마리 동물을 연상케 한다.
시간 관리였고, 열정 관리였다.
처음 해 보는 미국 공교육 시스템에서 1학기에 적응하느라 원래 자기 닉네임에 걸맞은 '딴짓들'을 하느라, 10월은 콩 튀듯이 뛰어다녔다. 11월 말이 되어서야 목공 인턴십을 마무리하며 이 '딴짓들'은 종료를 했다. 그 후로는 밖을 나가지 않고 교과서만 팠다. 머리는 정리를 하지 않아서 고슴도치 혹은 늑대 스타일이 되어 버렸다. 심지어 머리를 감지 않고 이틀 씩 책을 읽어 내는 시간도 있었다. 컨디션 조절은? 우리 집 거실을 하념 없이 걷는다. 우리 집 마루는 크지 않다. 그래서 책상에서 싱크대까지 대략 70번쫌 왔다 갔다 왕복을 했나 보다. 음악을 너무 좋아하는 녀석이라, 헤드폰을 끼고 미소를 머금고 다시 왔다 갔다를 새벽에도 한다. 음악을 들으면...... 자신도 몇 시간이나 그러고 있었는지를 깜빡하는! 하여튼 짱이는 이렇게 쉬면서, 놀면서, 교과서를 읽어 냈다.
"네 인생이니, 네가 알아서 해"라고 말해 버릴까 봐 나는 내가 두려웠다.
"그래, 엄마가 걱정하는 대로 이러다가 나 진도 못 맞출 수도 있겠어. 그냥 말지, 뭐. 나 여기까지만 할래."라고 짱이가 번아웃이 될까 봐 걱정도 되었다. 걱정은 늘 우리와 함께 있었다. 학업 스케줄은 하루씩 이틀씩 일주일씩 뒤쳐지더니, 엎치락뒤치락 어긋나기가 일쑤였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초등 중등학교를 다닐 때 학년마다 딱 3번 학교를 찾아갔다. 3월 학부모회의, 1학기 말 reflection 미팅, 2학기 말 감사 인사. 짱이는 나를 학교에서 만나는걸 몹시 반가워하는 눈치였지만, 난 출장과 업무로 시간 내기가 어려웠다. 또 '학교는 짱이의 사회생활영역'으로 여겨져서 나는 멀리서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거리를 유지하는 한편으로는 우리가 시선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도 있었다. 짱이가 6학년 때 우리 가족은 우리들만의 교육관을 가질 수 있는 에피소드를 경험했다. 그때 짱이는 NorthWestern University의 온라인 영재 프로그램을 듣고 있었는데,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한다며 "믿고" 신경 쓰지 않았다. 의외로 성적이 낮게 나왔고, 짱이는 "난 다 했는데, 점수가 너무 낮아. 이상해"라며 알아봐 달라고 했다. 딸을 믿었다. 학교가 실수했을 것이라고 의심하지 않았다. 우아하게 학교 담당자에게 미팅을 요청했다. 낯이 화끈거렸다. "아이들은 아직 어립니다. 자신은 다 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숙제가 제출되지 않기도 하고, 퀴즈를 빠뜨리기도 해요. 부모님들이 더 관심을 가져줘야 해요. 이런 경우들이 아주 흔해요. 혼내지 말아 주세요"라는! 짱이를 혼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의심을 해서" 숙제를 확인하는 것도 바람직한 교육관이 아니다. 하지만 "믿기 때문에" 숙제를 확인도 안 해 주는 것도 부족함이 있는 교육관이었다. 이 에피소드 이후로 짱이 공부에 우리 집 스타일로 관심을 가졌다.
이번 1학기에 배워야 하는 전 과목의 커리큘럼과 스케줄을 뽑아 달라고 마미는 선포했다. 그리고, 매주 '스케줄 미팅'으로 가족회의를 하자고 제안을 했다. 짱이는 난색을 표했다. 나도 불편했고, 짱파도 한숨을 쉬었다. "못해낼 거라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학교에서 정한 스케줄에 따르면 이미 모든 과목이 뒤쳐져 있었다.
학교 진도는 놓쳤지만 우리 집 진도는 끝까지 가본다.
12월 15일에 진도는 마무리하게 되어 있었다. 우린 12월 25일까지 마무리하자며 계획을 세웠다. 짱이는 전략 과목으로 네 과목의 스케줄을 집어 들었다. 저글링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하루 공부 시간을 세 가지 과목을 2, 2, 3시간으로 나누어서 각 과목별로 돌아가면서 조금씩 진도를 빼자고 했다. 처음에는 이 방법을 다소 거부하는 듯한 표정을 보였다. 안다, 짱이는 한 가지를 통째로 몇일씩 집중해서 하는 것을 더 선호하고, 생산성도 높다. 하지만, 한 과목을 긴 호흡으로 공부해 보기에는 일정이 촉박했다. 민첩하게 움직여야 했다. 2, 2, 3 작전을 며칠 실험해 보더니, 자기 스타일로 다듬어서 활용하기 시작했다. 매주 계획했던 것을 수정하고, 다시 설정하고, 달성한 것은 지우기를 반복했다. 짱이는 스케줄 표에 내가 이렇게 날짜를 구체적으로 적는 것에 대해 심히 불편해했다. 나도 숨이 턱턱 막혔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볼수록 녀석이 과연 버틸 수 있을까란 생각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구체적으로 연필로 써넣어야 했다. 짱이는 진도를 추월해 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스트레스를 주는 스케줄표에 자신의 성공을 기록하지는 않았다. 왜인지는 시간이 없어서 못 물어보았다.
하루하루가 저글링이었다.
과학 Biology에서 2문제가 틀리는 바람에 전체 GPA가 내려갔다면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자기 자신을 비난했다. 시간이 없는데.... 점수 보다도 일단 마치는 것이 중요한데.... 자기 자신을 책망하고, 에너지를 감정적인 일로 소진해서 무슨 도움이 될까? 너무 진지하게 그러니 막무가내로 멈추게 할 수도 없었다. 휴..... 'Self-Compassion 자기 자신을 돌보는 마음'이 너무너무 중요하다면서 바로 옆에서 위로와 조언을 했다. 도대체 왜 저러는 걸까? 엄마로서 살짝 걱정이 되었다. “과정을 충실히 하기 위한 마음인지, 점수를 많이 받고 싶은 마음인지를 점검해 보라”라고 원칙론적인 이야기를 했다. 더 이상 할 수 없을 정도로 최선을 다 하고 과정에 마음을 오롯이 쏟고 있는 너 자신을 생각해서 평가에는 너그러워지자고 했지만.... 짱이는 속수무책이었다. 퀴즈 답안을 3번 이상씩 점검하고 또 점검하고 잠을 자고 맑은 머리로 다시 보고 제출하는 특이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가 하면, 그냥 숙제일 뿐인데 처음에는 "이런 걸 왜 숙제로 내는 거야?"라며 툴툴거리다가, 이내 재미를 발견하고는 "어? 나 이런 거 좋아하나 봐. 은근히 재밌어"라며 숙제하는 재미(?)에 빠져 들었다. 엉뚱했다. 짱~스러웠다. 숙제를 숙제로 그치지 않고, '어쩌다 보니' 새로운 스킬을 익히는 배움의 시간이 되어 있었다.
핸드폰을 그다지 많이 쓰는 아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유튜브와 SNS로 영상은 어마 어마하게 즐겨 보는 아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SNS를 쓰는 시간을 줄여야 되겠다며 "SNS 사용시간을 관리하는 앱"을 설치하고 자기 자신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그냥 혼자 하도록 두었어도 네 과목이나 마무리를 할 수 있었을까?
"난 아직 어려. 그렇기 때문에 엄마 아빠는 나를 도와줘야 해." 짱이는 분명히 자기 의사를 밝혔고, 부모로서의 우리 역할을 우리가 기억하도록 했다. 어떻게 도와줄 것이냐..... 짱이 인생이지 내 인생이 아니다. 이 홈스쿨링의 시간이 짱이가 짱이스러워지는 시간이 되어야지 "홈스쿨, 우물 안 개구리"로만 그쳐서는 안 된다. 짱이가 홈스쿨링에서 이룬 자신의 성공에 대해 주인의식 ownership을 가지고, 당당하게 '졸업'하길 홈스쿨 교장 선생님인 우리 부부는 바란다.
학교는 “어쨌든 최종 마무리”를 1월 10일로 정해져 있었다. 우린 1월 6일 밤 전략 과목 네 개는 마무리했다. 9일과 11일에는 이 과목들의 시험을 치르게 된다. 나머지 3과목을 23일까지 마무리를 해야 한다. 원래 1주일 동안에 차근차근해야 할 공부를 거의 하루 만에 해 내는 도전을 하고 있다.
보드 게임판에서 배운 라이프 스킬 Life Skills이 효력을 발휘하다.
판을 읽고, 전략을 세우고, 승리하는 말을 고르고, 지는 판을 버리고, 감정을 조절하는 연습을!
학교에서 계획한 일정표대로 그냥 한 주 한 주 묵묵히 하지 않았다. 본인에게 있는 재능이 무엇인지, 없는 게 뭔지, 어떻게 이길 것인지를 계속 분석하고 자기가 이길 판을 짜 나갔다. 주 초에 세웠던 계획이 순조롭게 계획대로 되지 않을 경우에는 다시 전략을 짰다. 이때 계획을 세울 때도 한 주 내에 있을 수 있는 예정된 변수들을 다 꺼내어 펼쳐 두고, 계획에 반영했다. 예상과는 다르게 생긴 변수들로 원래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는 다음 계획에서는 이걸 기억하고 계획을 세웠다.
옵션 B를 선택할 줄 알았다. 7과목을 정해진 시간 내에 다 마무리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있는 것 같다는 판단이 들자, 어느 과목을 먼저 시험을 볼 것인지를 분석했다. 어느 과목이 어째서 유리한지, 불리한지, 시간은 어느 정도 걸릴 것 같은지, 자기 자신의 성향을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다 보니 이 과정이 자연스러웠다. 초등학교 때 마미의 퇴근 시간을 기다리며, "보드게임 딱 1판만 하자"며 피곤에 지친 나를 괴롭히던(?) 녀석이 겹쳐서 보였다. 그리고 "한 번만 물려주라. 나는 너보다 못하니까 네가 접어줘야지!"라며 아무리 내가 꼬셔도 막무가내로 "승리는 나의 것"이라며 보드게임을 진지하게 하던 꼬마 짱이가 기억이 났다. 이게 뭐라고.... 보드 게임인데.... 가족끼리 재미있자고 하는 건데..... 짱이에게는 아니었다. "이상해. 정말 특이해. 왜 이렇게 완승을 좋아하지?"라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그러다가 나와는 다른 성향, 그냥 그녀만의 특이성으로 받아들였다.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점점 커져간다.
짱이는 자기 자신이 설정해 둔 목표, 만점에서 한 순간도 눈을 떼지 않았다. 시간에 쫓겨도, 할 일이 넘쳐도, 퀴즈를 다 풀고 다시 점검하고, 노래 듣고 머리 식히고 또 들여다 보고, 다시 점검하고. 이 과정을 3-4번을 하고서야 비로소 제출 버튼을 눌렀다. 객관식인 경우, 바로 채점 결과가 떴다. 그럼, "예슷!"라며 주먹을 쥔다.
홈스쿨링은 우리 가족이 Vulnerability 취약성의 바다로 첨벙 뛰어든 상황이다. 여기가 어딘지 한참 헤맸다. 물이 꽤 깊은 곳인 것 같다. 어디로 방향을 잡아야 할지도 여전히 탐색 중이다. 아마 이 방향을 잡는 데에 홈스쿨링 고딩 시간이 온전히 다 들어갈 것 같다. 방향이 잡힐 때쯤 온라인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될 것 같다. 이 바다를 어떻게 헤엄칠 것인가?
Self-Compassion 자기 자신을 챙기는 마음을 계속 시험에 들게 하는 지름길이 홈스쿨링인 것 같다. 이번 주 네 과목을 치른 후, 남은 세 과목을 어떻게 잘 마무리할지! 짱아! 계속 가즈아~~
https://www.youtube.com/watch?v=BnC6IABJXOI
#미국온라인고등학교 #영어 #고등홈스쿨링 #보드게임 #교육
* Top Photo: skeeze from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