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말라비틀어진 잡초만 무성한데 아무도 손질하지 않고 그냥 내팽겨져 있는 듯이 보이는 땅이 실상사로 걸어 들어가는 길 옆에 펼쳐져 있어요. 10월 초에 처음 이 길을 걸으면서 "그래, 뭐 원래 그렇지, 뭐."라는 고정관념의 상자 속에 저는 갇혀 있었어요. 가을이니까, 절이니까, 사람들이 자연을 가꾸는 일은 드무니까 등등등 제 맘대로 제가 알고 있던 것만큼만 생각해 버렸답니다.
지리산 산내라는 곳을 찾아서 전국에서 모여든 이주민들에게 이 자연을 그냥 자연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배워 가면서, 실상사라는 절이 갖고 있고, 실행하고 있는 가치가 "실상"은 어떤 것들인지를 점점 들으면서, 제가 방문한 시기가 추수를 한 후이고, 한 해를 성찰해 보는 가을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갇혀 있던 생각의 좁은 상자에서 벗어나는 경험 했습니다. 실상사에서 운영했던 "귀농학교"의 1기 수료생이고, 전국적으로 소문난 마을 공동체의 일원이며 환경활동가인 문화해설사 선생님은 "저렇게 말라비틀어져서 아무렇게나 버려진 땅 같은 곳이 사실은 연꽃밭이다"라고 알려 주었답니다.
"맙소사!"
이 넓은 땅이 "원래는 무엇이었는지" 물어보지도 않았으면서, "실제는 뭐였는지" 궁금해하지도 않고서 그냥 단정 짓고 말았던 몇 분 전 저의 모습이 선물로 여겨졌답니다. 지리산의 영험한 기운을 흠뻑 받고 있어서일까요? "그럴 수 있지. 이제 배웠잖아. 그럼 됐지"라는 여유로운 마음이 스르륵 제 맘에 생기면서 마음의 눈이 열렸답니다. 그리고, 그 눈으로 계절이 바뀌어 연꽃이 만발해서 연꽃밭이 되는 때가 마음속에 떠올랐어요.
실상사(實相寺)라는 이름에 있는 "실상"이 무슨 뜻인지를 아주 우연히 발견하고 혼자서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답니다.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기"를 할 수 있는 곳, 그곳이 실상사라고 생각되어서입니다. 이름대로 세상에 존재하는 곳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