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도 어느 정도 몰라야 할 텐데 저는 불교를 포함해서 종교에 대해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았어요. 지난 10월에 우연히 실상사로 놀러 간 일이 계기가 되어서 이렇게 팩트를 모아는 정도까지 호기심이 커졌어요. 11월에는 1시간짜리 미팅을 주최하려고 실상사에서 2박 3일을 보내게 되었답니다. 경내에 들어 서면 아이디어가 팝콘처럼 튀어나오는 실상사여서 일보다도 "일 없는 시간이 넘쳐나는 일정"으로 자연스럽게 여유를 두었답니다. 마치 "이번에는 어떤 일이 생기는지 두고 보자"라는 개구쟁이 같은 마음으로 무계획을 계획했답니다. 시간이 널널 했더니, 신나는 일이 덩어리 채 쿵 날아왔답니다. 도착하기 직전 전주에서 있는 행사에 가고 싶은 마음이 있냐고 물어 왔습니다. 실상사가 위치한 산내 마을에서 주민 분들이 여러 명 참석할 거라서 절에서는 대형 버스가 준비되어 있다고 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무슨 일인지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가 행사 내용을 받고서는 놀라고 말았지요.
"전북의 종교계와 시민사회, 지역사회활동가, 학계와 정관계의 인사"가 모여서 "생명평화"를 주제로 다양한 형태로 대화를 시도하고자 발대식을 여는 행사였어요. 이렇게 큰 행운이 들어오려고 저는 아무런 계획이 없었나 봅니다. 저절로 "에헤라디야"가 나오고, "세런디퍼티"가 외쳐졌어요. 이런 멋진 행사는 놓치지 않기 위해서 일정을 미리 계획하고도 피치 못할 일이 생겨서 눈물을 머금고 불참을 하기 일쑤인데 행사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모두 볼 수 있다니 더 이상 행복할 수는 없었답니다.
전북생명평화포럼에서 깜짝 놀랐던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 참석자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스님들과 목사님들, 가톨릭 관계자들이 이 뜻깊은 행사의 주축이었습니다. "이럴 수가!"라는 감탄이 자꾸 나왔답니다. 주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몇 분이 짧은 연설을 했는데 종교적 차이를 넘어서, "생명평화를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하나로 모아서 더 큰 파장을 내고 있었답니다. 엄청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역사의 현장으로 훅 초대받았다고 느꼈답니다. 더 놀라운 점은 이러한 노력들을 수 십 년 동안, 즉 한평생 함께 해 오셨다는 사실이었답니다. 저는 거의 24시간 전에 행사 소식을 듣고, 합류하게 된 정말 새로운 얼굴이었답니다. 제가 받은 감동과 영감이 얼굴에 드러났던 걸까요? 혹은 "저 사람은 못 보던 사람인데, 누구지?" 하셨던 걸까요? 포럼을 마무리하면서 사회자는 "참석자들 중에서 몇 분에게만 오늘 어떠셨는지 소감을 물어보겠습니다. 사회자가 임의로 정하겠습니다"라고 하시면서 으앗.... 제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오셨어요.
사회자: 어디서 오신 누구신가요? 오늘 행사를 보니 어떠세요?
이렇게 감동스러운 순간이 있을 줄은 누가 상상했겠습니까? 또 "세런디퍼티"를 외치고, "불교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저는 실상사의 여러 분들에게서 포럼에 대해, 불교에 대해 이제 막 배우기 시작했습니다."라고 흥분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하고 싶었던 말을 아무 준비도 없이 길게 하고 말았답니다. 그만큼 행사가 좋았거든요. 행사가 막을 내리고, 모두가 함께 행사장을 정리할 때 한 분이 가까이 오셨어요. 인사말을 하셨던 목사님 중의 한 분이셨어요.
목사님: 잘 오셨어요. 실상사에서, 우리 전북에서 좋은 시간 보내세요. 잘 오셨어요.
목사님에게서 이 말을 들으면서, 전북에, 실상사에, 이 포럼에 저는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답니다. 한 명의 구성원으로 이미 받아들이셨다는 말을 의도적으로 건네셨다는 생각이 들자 저는 소속감 마저 느꼈답니다. 포럼 마무리에 공개적으로 한 마디를 하게 된 행운은 마을 주민들에게 저를 우연히 소개하게 된 듯했어요. 돌아오는 길에서 절 버스를 타고 산내 마을 주민들과 인사도 나누고,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저녁 식사까지 대접받았답니다. 실상사의 불자들만 탄 버스에 있는 제가 마음에 쓰이셨는지 한 분이 가만히 말씀해 주셨어요.
산내 주민: 우린 범종교를 지향해요.
자신을 종교인이라고 하면서
서로를 차별하고 멀리한다면,
진정 종교인이 맞나요?
자신의 믿음만큼 상대의 믿음도
존중할 때 진짜 크리스천이고, 불자이고,
가톨릭신자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탄탄도 마음 편하게 지냈으면 해요.
실상, 있는 그대로라는 의미를 사찰 이름에까지 새겨 넣은 실상사. 그곳에서는 이 질문을 대답해 볼 수 있다.
뭣이 중한디?
https://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420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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