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놀이에 빠지면 지칠 줄 모르더니... 이젠 공부에...
말이 되냐고...... 그냥 그 자리에서 계속 그리고 그렸다.
그리기를 좋아하는 아이가 아니다. 중학교 미술 시간에 선생님의 지적도 많이 받았다. 일단 하면 본인이 만족할 때까지 최선을 다해야 하는 성품을 가진 아이다. 같은 자리에 앉아서 기지개 한번 펼 시간 없이 계속 그리고, 또 그리고, 업로드하고, 다시 교과서를 읽고를 무한 반복하고 있었다. 밤이 깊었고, 내가 학생은 아니니 내 일정을 지키기 위해 마미는 잤다.
새벽이 되어서 나와 보면, 짱이는 그 자세 그대로 그리고 있었다. 21일 2시 59분까지 마감이었기에 20~21일이 되는 새벽에도 멈춤이 없었다. 끝까지 그렸다. 드디어 21일 오후 2시 59분이 되었다. 나는 외부에 미팅이 있어서 거의 4시가 되어서야 전화를 해 보았다. Art를 본인이 원하는 만큼 못 마치고 상심해 있을 짱이의 목소리를 예상했었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다시 걸어 보았고, 연결이 되었다. 휴....
짱: 엄마, 나 바빠. 아직 숙제가 업로드가 되고 있어. 계속해서 올릴 거야.
마미: 엉? 그래? 그래, 그래, 끊어.
마감이 지났지만 학교는 윈도우를 열어 두고 학생들이 업로드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짱이는 계속 그리고, 올리고, 그리고, 올리고.....
짱: 이렇게 한 장이라도 더 올릴 수 있으니까 좋기는 한데....
마미:....... (네 체력은 어떻게 하니?)
짱: 시험공부를 할 시간이 점점 줄어들어. 헛헛헛
마미: 대강 하자. 우리 그냥 그리는 거에 초점 맞추고 대강 그리자.
짱: 그래도 할 수 있는 만큼은 해야지.
마미: 한 장이라도 더 올리는 게 낫지 않을까? 조금 미완성이더라도.
짱: 엄마, 나 그림 잘 못 그려. 그래도 일단 하는 데까지는 해야지.
12시간을 꼬박 그림을 그렸다. 21일 저녁에도 나는 미팅이 있어서 상황을 전화로만 들을 수 있었다. 짱파와 통화로 이 상황에 대해 의논했다.
짱파: 뭐? 아직 그린다고? 마감 시간 지났잖아. 마감시간 이후로 채점이 안 되면 어떡하려고?
마미: 스스로가 더 잘 알아. 난 그렇게 막다른 상황에서 짱이가 열린 틈으로 계속 돌진하고 있는 게 대단하다고 생각해.
짱파: 그래도 채점이 안 되면, 시험 준비하는데 영향이 클 텐데.
마미: 그 생각은 아마 본인이 가장 많이 했을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밀고 나가는 저 태도가 나는 정말 대단한 것 같아. 짱이는 "일단 내가 숙제를 해서 올리면, 공은 학교에 가 있는 거야. 점수를 주든, 안 주든. 나는 일단 할 거야."라고 하더라. 어차피 마감 시간 넘기고도 계속 그리고 있는데, 지금 점수가 나올까 안 나올까 이야기해 본들 우리 선에서는 어차피 모르는 거야. 사실 점수가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잖아. 태도야. 저렇게 해 보는 것도 실험이니까, 기운 꺾는 말은 하지 말자. 짱이 선택대로 우리는 밀어주는 거야. 알았지?
짱파와 다짐을 하고 귀가를 했고, 짱이는 여전히 그리고 있었다. 계속 ~~ 그리고, 또 그리고. 21일을 넘기고 22일이 되는 밤에도 짱이는 "아직 윈도우가 열려 있어"라며 "닫힐 때까지 올릴 거야"였다. 미안하지만, 마미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없었기에 다시 자러 들어갔고, 아이는 계속 그렸다. 22일 새벽이 되었다. 설마 설마.... 짱이는 여전히 같은 위치에서 그리고 있었다. 오 마이 갓!
마미: 맙소사...... 너...... 이틀 밤을 꼬박 새우면서 그리는 거야.
짱이: 아직 윈도우가 열려 있어. 완전 신기해.
마미: 대단하데이, 진짜 너 짱이다. 몇 장 그렸니?
짱이: 한 30장쯤 그린 것 같아, 하하하하! 이제 3장만 더 그리면 완전히 다 그리는 거야. 근데 이 3개가 아주 어려워. 철사로 조형물을 만들어야 되고, 작품들을 비교 분석해서 글을 쓰고, 또 뭐였더라......
마미: 미술 전공도 아니고...... 네가 지금까지 9년 동안 학교 다니면서 그린 그림과 만들기 숙제보다 이번 이틀 동안에 했는 게 더 많겠다.
짱이: 그래, 맞는 말이야. 근데, 나 좀 잘 그렸지 않니?
마미: 잘 그렸다 마다. 넌 미술도 잘하네. 못 하는 게 뭐니? 천재인가 봐.
이틀 동안 요지부동으로 그리고 있는 녀석에게 무슨 말을 못 해줄까. 정말 무시 무시한 저력이 이렇게 극한 상황에서 뿜어져 나왔다. 오전 10시가 되었다. 드디어 지친다면서 잠깐만 자겠다고 한다. 낮 12시 30분이 되었다. 깨워야 할까, 그대로 자게 해야 할까? 자기 인생이고, 일어나는 것쯤은 스스로 챙기도록 그냥 두어야 할까? 3개만 더하면 된다고 했는데, 아쉬움을 남기는 게 더 큰 공부일까? 그나저나 이틀 동안 꼬박 새웠는데 그냥 자게 두면 안 될까? 엄마로서의 나와 홈스쿨을 같이 하는 동료 Companion으로서의 나 사이에서 갈등을 했다. 짱이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 봤다. 이렇게까지 버텼는데 자고 일어나서 "윈도우가 닫혀 버렸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다면 속상할 것 같았다. 깨웠다. 마음이 살짝살짝 아파왔지만, 짱이가 정신을 차리도록 도왔다.
마미: 3개 더 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니?
짱이:....... (졸음을 억지로 참고 있다)
마미: 잘 생각해 봐. 3개 더 하는 시간과 그 결과로 얻게 될 점수.... 잘 비교해봐. 그럴만한 가치가 있니?
짱이:..... 진짜 몸이 아프다.....
마미: 그래, 너 시험도 쳐야 하는데...... 3개 더 하는 게 큰 의미가 있을까? 그럼, 체력적으로도 딸리고 시험 준비하는 시간도 그만큼 줄어들어. 전략적으로 생각해봐.
짱이: 3개 더 하는데 6시간쯤 걸릴 것 같아. 3개만 못 했으니까 펑크는 안 날 것 같아.
마미: 펑크 안 나면 훌륭한 거야. 아트에서 우리가 최고 점수받으려고 하는 건 아니잖아.
짱이: 그럴까? 나 사실 지금 좀 쉬고, 시험공부하는 게 더 나은 카드인 것 같아.
마미: 아주 좋아. 아주 논리적이야. 그럼, 네 손으로 시스템 닫자. 이 정도 한 것도 너니까 가능했어. 대단하다, 우리 딸. 네가 직접 마무리하는 게 좋아. 괜히 자고 일어나서 시스템이 닫혀서 네가 어쩔 수 없이 마무리되는 것보다 말이야.
짱이: (드디어..... 드디어...... 시스템을 나왔다.) 엄마, 내가 마무리 짓도록 도와줘서 고마워. 나 최선을 다했어. 이제 좀 잘래.
1월 23일 새벽: 다시 시험 치러 나가는 길
아.... 시험지가 아직 열리지 않았다..... 새벽 4시 30분, 학교로 전화를 해 보았다. 시험 발송 담당자가 자리에 없다며 내일 보내 주겠다고 한다. 내일이면 완전 마감날이고, 3과목을 치러낼 시간도 체력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하루를 그대로 보내어야 한다. 다시 전화할 테니, 담당자에게 꼭 연락해봐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리고, 둘은 30분만 눈을 더 붙이자며 누웠다.............. 7시 30분이었다. 새벽 5시 30분에 미국 텍사스는 퇴근시간이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메일을 확인하고 전화를 해 보았지만, 퇴근 후였고, 메일은 없었다.
마미: 어떻게 할까?
짱이: 일단 가자. 미국 텍사스 시간으로 23일 5시는 한국 시간으로는 24일 오후야. 일단 가서 공부하고 있다가 학교가 9시에 문을 열 때가 한국에서는 밤 12시야. 그때쯤 다시 연락하고 시험지 열어 달라고 하고 시험 보자.
마미: 그러자.
짱이는 우리 가족은 멘탈이 상당히 특이하다며,
이런 상황에서 당황하지도 않고,
어떻게 해결할까를 이야기한다면서 껄껄 웃는다.
다행이다.
짱이가 회복탄력성 Flexibility와
그릿 Grit을 생활에서 실험할 수 있어서.
시험장으로 구해 놓은 센터 원장님들에게는 양해를 구하고, 우린 센터에서 새우잠을 자기로 했다. 드디어 자정을 넘겼고 학교로 전화를 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학교에서 메일이 왔다. "art는 paper-based exam"이라는! 즉 종이로 된 시험지라는 말이고, 해외항공우편으로 배달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되는 것인가? 1학기 종료 시간까지 이제는 진짜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는데....... 긴급 가족회의를 전화로 하고, 셋의 생각이 동일하고, 유일한 방법이자, 지금으로서는 가장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단 메일로 문의했다. 우린 Art, English, World History가 모두 온라인 시험이라는 것을 몇 주 전에 전화로 확인을 했다. 어제 통화할 때도 paper라는 말은 없었다. 마감이 직전인데, 지금 시험지가 배달되면 마감은 어떻게 되고, 점수는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 등등.... 좌절감이 스믈 스믈 올라왔다. 학교는 특송으로 보내 줄 테니, 시험 감독의 사인을 받은 종이를 또 보내라고 했다. 이 서류도 벌써 몇 번째 보냈건만..... 짱이가 해외에서 공부를 하게 되면 몇 년 내에 이 모든 과정을 혼자서 해야 하기에 공부하는 셈 치고 하나하나 이 녀석이 리드하면서 진행했다.
짱이는 또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가족의 resilience 회복 탄력성은 정말 최고라며. 아무도 화내지 않고, 그냥 하나씩 해결 방법만 찾는다면서........ 시험지는 오지 않았다. 밤 1시가 넘고, 2시가 넘었고, 우린 센터에 그냥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마미: 이제 뭐하지?
짱이: 지금 할 수 있는 건 없어. 엄마는 좀 자.
마미: 그치? 나 자도 되겠지? 그럼, 넌?
짱이: 난 일단 오늘은 놀래. 은근 기분 좋아.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어. 시험지도 없고, 흐흐흐...
1월 23일 낮
23일 오전이 되자 학교에서 메일이 왔다. 사과 메일이었다. 혼선이 있어서 미안하다면서 세 과목이 모두 열렸고, 페이퍼 시험지는 발송이 되었다고 한다. 2월 13일까지 마무리하면 된다고 했다. 휴....... 짱이는 더 공부하고 준비할 수 있어서 잘 되었다 했다.
"첫 학기잖아.
우리가 처음인데
이 정도 하면 잘하는 거야.
그치? 엄마?"
(누가 엄마인지.....)
1월 24 ~ 25일: 동면
놀고 싶고 쉬고 싶다면서 소설을 실컷 읽겠다고 한다. 갑자기 마법천자문도 다시 읽고 싶다나....... 못 말리겠다. 음악을 실컷 들으면서 스스로에게 보상을 해 주었다.
1월 25일: 2학기 개강
"이젠 다시는 안 할 거야, 그렇게. 너무너무 싫었어. 내가 하기 싫은데도 꾹 참고 계속 뭔가를 해야 하는 상황이 정말 힘들었어."
2학기에도 7과목이다. 커리큘럼을 하나씩 파악하고, 달력을 보고, 스스로 일정을 대략적으로 그려 보는 짱이. 수업에서 요구하는 책을 킨들, 중고 등으로 일사천리로 구입한다. 시험 날짜도 확인하면서 벌써 5월 이후의 여름 방학을 그려 본다. 1학기에 고생 고생하면서 익힌 노하우를 2학기에는 제대로 활용하려나 보다. 휴....
기말고사가 아직 3과목이 남았지만, 2학기를 시작하는 것은 무리가 없나 보다. 짱이는 신기해한다. 시간이 부족해서 1시간은 쓰면서 풀고 싶은 문제들을 단 15분 만에 제출해 냈지만, 점수들은 만족스럽다고 한다. BIM에서 전체 평균과 최고 점수가 나왔는데, 신기하게도 최고 점수가 자기 점수와 같다며.....
짱이: 엄마, 나 좀 하나 봐. 나쁘지 않은가 봐.........
마미: 으이그....... 짱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