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내 일이 있는 워킹 맘인데.... 홈스쿨링을 하는 고딩이와 다른 팀원들을 챙기기 위해 열흘을 해외에서 보낸다는건!! 후덜덜덜덜....... 무척 무~~~~~~~척 힘든 결정이었다. 커리어 체인지를 할 때 이 녀석이 원하는대로 따라가기 위한 시간을 확보하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었다. 이번 해외 일정이 결정 되었을 때 내가 이른 퇴직을 한 이유는 이미 예정된 것이었을까라고도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내가 하는 청소년임파워먼트 사업과 연결고리를 만들수도 있겠다라는 막연한 희망도 품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생소한 일들이 있었고 그만큼 배움을 얻었다. 이번 연수는 창의력올림피아드를 치루기 위한 5일과 여행 및 이동했던 5일로 구분이 된다.
녀석과 눈을 마주할 시간이 드물었던 대회 기간. 든든하다, 짱아!
1. 거리를 두고 짱이를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멀티로 움직이고 있는 녀석을 보았다. 목표에서 한 순간도 눈을 떼지 않고, 마지막까지 팀웍으로 풀려는 녀석을 보았다. 굳이 저렇게까지... 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만, 자신이 받아야 하는 credit에는 그닥 마음을 쓰지 않는 녀석을 보았다. "네 걸 챙기지 못하는 리더는 다른 사람들의 공도 챙겨주지 못하는 사람이 될 수 있어"라고 말해 보았건만 녀석은 "난 괜찮아"였다. 탐탁치 않았다. 대회를 준비하면서 주도면밀하게 팀원들이 할 일과 일정을 챙기는 것을 보며, 마지막 순간까지 안간힘을 쓰는 녀석의 등을 보면서, 스포츠를 좋아해서 저런 근성이 생기는 것일까? 저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으니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여행길에서는 끝이 없이 펼쳐지는 초록 풍경에 행복해 했다. "이 광경이 그리웠어. 너무 보고 싶었어. 행복해"를 연발하며 창문밖을 뚫어지게 보고 연신 사진을 찍었다. 나이아가라 폭포에서는 폭포 사진만 찍으며 시간을 즐겼다. 하버드를 먼저 갔건만 상품 가게에서 시큰둥 했다. MIT대학을 방문하면 용돈을 모두 쓸거라며 별렀었다. 안타깝게도 MIT는 가장 상징적인 복도만 들어갔다가 "시간이 없어서" 대학가게는 패스했다. 녀석은 MIT 복도를 걸으며 감격해서 어쩔 줄을 몰라했고, 가게를 들리지 않는 것에 무척 실망해했다.
용돈을 기꺼이 쓰는 항목들이 무엇인지가 보였다. 뉴욕에서는 마블 티 셔츠를 고르며, 괴성을 지르며 뛰어 다녔다. 타임스퀘어에서 폭우를 뚫고 사온 쉑쉑버거!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였다. 녀석이 자립할 시기라는 신호탄이었다.
시상무대 위를 가득 채운 베트랑 심사위원들! 세계최고, 별들이 잔치였다.
2. 대회 자체가 나에게 큰 의미가 있었다.
최고였다. 융합이란 컨셉에 흠뻑 빠질 수 있는 환경이었다. 어린이 청소년들이 열정적으로 리드해 나가야지만 가능한 대회였다. 대회조직위는 40년 전통을 유감없이 발휘할 정도로 훌륭히 운영되었다. 지난 40년 동안 함께 키워온 어른들이 호호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셔서 모두 무대 위로 올라 왔다. 자원봉사자들도 규모가 어마 어마 했다. 미국 전역에서 지역대회를 거치고 온 팀들이라 이들을 환호하는 커뮤너티가 생생히 느껴졌다. 미국팀들은 부모가 코치로 온 경우들이 대부분이었다. 대회 일정 외에 마련되는 행사도 어린이청소년들이 모두 주인이었다. 어른들은 이들이 놀기 좋도록 장소를 설치할 뿐이었다. 대회 심사는 프로 심사 위원들만 했고, 복장은 반드시 특이해야 했다. 어린이 청소년들을 위한 배려라기 보다는 어른들 스스로가 이런 자신의 모습을 무척 즐기는 것 같았다. 부러웠다.
"말이 안 되는 문제"를 기어코 해결하기 위해 전세계에서 수만명의 어린이 청소년들이 1년 가까이 이 수수께끼 같은 문제에 대해 생각을 한다.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독창성이 담긴 장치를 기획안과 설계도에 담고, 이 설계도를 바탕으로 실제로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고, 이 기계가 해결할 상황을 상상하여 상황극을 만들고 이를 공연으로 펼치는 STEAM 융합 올림피아드! 짱이에겐 더 이상 흥미로울 수는 없었고, 이 녀석이 6개월간 이 놀이에만 꽂힐만 했다. 폐회식도 감동이었다. 어느 나라에서 온 어느 팀이 받았던지 상관없이 열광하는 어린이청소년팀들! 자신들도 저 상을 받고 싶은 마음이 클 것인데도 다른 팀의 승리를 자신들의 승리인냥 축하해 주었다. 같은 고민을 같은 시기 동안 하면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생긴 끈끈한 연대감인 듯 했다. 감동이었다.
대회 뿐만 아니라, 교류장으로 만들어진 핀 트레이딩도 청소년들이 자연스럽게 또래와 어울리고 자신의 모습을 살필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핀을 트레이딩하면서 "거절 당하고, 거절할 수 있는 방법"을 순식간에 익히는 시간이었다. 자신의 값어치를 어떻게 하면 더 높일 수 있을지를 누구든지 분석하고 자신만의 전략을 터득하게 하는 놀이이자 배움이었다.
이 녀석 덕분에 나도 이 놀이에 빠졌고, 내년에는 우리 어린이 청소년들이 한 팀이라도 더 이 놀이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꿈을 품게 되었다.
매일 나오는 한식 & 미국 도착 후 이동하는 버스의 통로에 저렇게 짐을 싣겠다고 무리를 하는 대표부, 불편했다.
3. 문화라는 이름으로 묵인되던 일들이 매우 불편하게 느껴졌고, 결국 갈등으로 터지고 말았다.
식사가 나오고 나는 아이들 부터 먼저 챙겨 주고 있었다. 이런 내 모습을 어떤 분이 지적했다. "어른이 먼저 먹어야지, 아이가 먼저 먹으면 되겠니, 애들아! 너희들 어른을 공경해야 하는거 알지? 집에서도 부모님이 먼저 식사를 하는 법이야"라고..... 그냥 참을까라고 주저하다가 "선생님, 저는 생각이 달라요. 아이들이 어른보다 약자니, 아이들 부터 먹어도 그렇게 큰 일은 아닌 것 같아요"라고.... 그 분과 난 웃으며 대화를 나누었지만, 의견이 반대라는 점은 분명히 느끼며 불편한 대화를 이어갔다.
여행했던 5일간은 무척 불편한 시간들이었다. 그 중 하나가 점심과 저녁으로 한식이 무척 자주 나온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미국 왔는데, 미국 음식을 왜 안줘요? 한국음식은 한국에서도 실컷 먹어요. 어떻게 한 끼도 미국식이 아니예요?"라고 불평이 나왔고 이 지적에는 나도 공감했다. 해외여행은 새로운 것을 접하고 시야를 넓힐 수 있는 교육인데, 어떻게 익숙한 것만을 고집하지? 설렁탕 비빔밥 된장찌개 김치찌개라는 메뉴가 반복되었다. 결국 터졌다. 식욕을 떨어지게 하는 된장찌개로 모든 테이블이 셋팅이 된 보스턴의 어느 한식당에서 아이들은 우리 돈을 추가로 쓰더라도 다른 것을 먹겠다고 했고 난 동행했다.
STEAM 공연을 마친 후 BMS팀은 심사 위원들에게 사진을 찍자고 했다. 멋진 코스튬을 갖추어 입은 Judge들
4. 사교육, 공교육, 협회활동, 해외프로그램, 부모, 교사, 어른의 역할은?
창의력을 키우는 최적의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이번 올림피아드에는 사교육으로 하드 트레이닝을 수 개월 동안 받은 어린이팀들도 여럿 있었다. 반면에 학교에서 팀이 만들어지고 교사가 코치가 되어 온 경우도 있었고, 교사가 직접 어린이들로 팀을 짜서 적극적 코칭을 하고 데려온 경우도 있었다. 이미 업무가 넘치는 교사, 경제력이 있는 경우에만 받을 수 있는 사교육, 과학적 지식이 없거나 부족하지만 자녀를 위해 헌신적인 부모,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는 것은 알겠는데 부모인 나도 내 일이 너무 재미 있어 시간을 내지 못한다는 워킹패밀리들.......
예년처럼 이번 대회도 중국팀들이 상을 휩쓸어 갔다. 폴란드, 싱가포르, 홍콩, 미국 등에서도 수많은 팀들이 상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두 팀이!!! 상을 받았다. 그 중 한 팀은 고3들이 주축이고 지도 교사 없이 자신들만의 힘으로 이루어낸 결과라서 우리 모두 행복해 했다.
우리도 그들처럼 될 수 있을까? 우리 어린이 청소년들이 이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창의력을 발굴하고 발휘하고 대회에서 즐기고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창의적인 생각을 모두가 환호하는 이 무대에서 소개할 수 있는 그 날이 올 수 있을까?
짱이는 이번 올림피아드를 계기로 무엇이든 손으로 만들어낸다.
5. 청소년들에게 다른 세상을 보여 주는 해외연수프로그램, 내 일이 될 수 있을까?
지난 몇 년간 우리 가족은 청소년 해외연수 프로그램 자체적으로 개발, 운영해왔다. 우리가 자족할 만한 퀄러티는 유지했지만, 다른 프로그램과 비교분석해 볼 수 있는 기회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우리 프로그램이 다른 프로그램과 너무 달라서 혹 우리 경험치의 부족으로 우리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퀄러티가 떨어지는 프로그램을 제공하면 어쩌지라는 우려가 있었는데 이번에 확신을 갖게 되었다.
녀석을 따라나선 연수에서 나는 녀석과 우리가 동반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다. 앞으로 1년 동안 우리와 함께할 OM패밀리들을 "후회가 남지 않을 정도로" 찾아 보리라. 우리가 느꼈던 그 감동을 함께 느낄 커뮤너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