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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도 행복하지 않은 날은 없었습니다."

조직을 떠난 지 그럭 저럭 8개월이 되었구나. 여전히 그 때가 감사하다.

미국외교정책을 공부하는 대학생들에게 "미국문화외교정책과 공공외교"에 대해 특강을 해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난 학생들과 소통할 수 있는 특강 초대는 "무조건 예스라고 대답하자"는 나름의 원칙을 갖고 있다. 내가 부족하지 않을까, 나보다 더 잘하는 분들이 있는데, 좀 더 성숙한 후에, 공부가 얕다 등등의 이유로 내면의 갈등을 하고 주저했던 날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라도 나누어 주어야지," "충분하지 않으면 충분하지 않은대로 의미가,"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1인이라도 청중에 있다면 "저 정도 사람도 하는데 그럼 나도 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부터"라는 태도로 바꾸었다. 현재의 내 모습 그대로 나는 공유하고 것까지가 내 몫이고, 내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일까는 청중의 몫이다.


미국이란 나라에 대한 학문적 관심은 중고등학교 때 부터 시작되어서, 석사로 이어졌고, 결국엔 박사까지 가게 하는 모티브가 되었다.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내가 공부한 것을 적용해 볼 수 있었고, 또 다른 호기심을 품었고, 충분히 연구할 수 있었고, 더구나 현장에서 마음껏 펼쳐 보았던 미국문화외교, 미국공공외교정책 ...... 이 주제에 대한 내 사랑은 여전히 내 가슴 속에서 살아 있었다. 발표 자료를 준비하며 무슨 메세지를 어떻게 전달하고 싶은지를 고민하면서, 내 가슴은 펄떡 펄떡 쿵쿵쿵 뛰었다.


청중은 정치외교학 2-3학년들이라고 하니, 학번이 17이나, 18쯤 되겠지? 지난 20년이란 시간 동안 연사인 나는 커리어를 쌓았고, 청중인 그 학생들은 세상에 태어나고, 학교를 다니고, 이제 내가 즐겼던 분야와 비슷한 트랙을 걷고자 하는 꿈을 품고 있겠구나. 만나면 흥미롭겠는걸. 소중한 후배님들이다. 내가 이 학생들의 학년일 때에 나는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 나는 내가 꿈꾸던 길을 어떻게 걷게 되었던거지? 지금은 그 길을 떠나온 선배로 후배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나는 들려 주고 싶을까? "Cultural Diplomacy"라는 단어만큼 나를 흥분시킨 컨셉은 없었다. "Public Diplomacy"라는 단어만큼 나를 몰입시킨 단어는 아직 못 만났다. 내가 내 메세지를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방식은 어떤 것일까? 교수님은 어떤 바램으로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이 중요한 시기에 나를 초대하신걸까? 내가 외교학, 국제정치학의 이론이나, 정부 자료 등을 충분히 활용하길 바라실 수도 있는데..... 어쩌지..... 그게 내가 원하는걸까? 내가 잘 하는 방식일까? 학생들의 시간만 축내면..... 나다운 방식으로 전달하는 것이 진정성이 있다. 발표 준비를 하면서 출장 때 찍은 사진들, 프로그램 현장 사진, 동료들과 찍은 사진 등을 오랜 만에 들추어 보았다. 흐흐흐...... 스믈 스믈 추억들이 아지랭이처럼 올라왔다. 내 마음을 가만히 응시했다.


발표 자료를 만드는 시간은 내 작품을 빚는 시간이다. 연사 소개 파트에 내가 맡았던 포트폴리오를 넣고 미국외교 프로그램 현장 사진, 즉 자신의 Dream Job을 하면서 행복해 하던 내 모습으로 슬라이드를 구성했다. 미국의 문화외교, 대민외교를 설명하는 부분은 한 때 워킹맘으로 시간을 쪼개어 박사 공부를 하던 사람으로서 갖고 있던 시각을 슬라이드에 담았다. 60분 동안 후배님들과 시간에 쫓기지 않으면서 공감을 형성하기 위해서 나는 선택과 집중을 했다. 학생들은 미국의 수퍼 파워, 국제정치에서의 개입, 한미관계 등등을 공부했을 것이다. Cultural Diplomay, Public Diplomacy는 어떻게 연관성을 가질 것인지 내 관점을 소개하고 싶었다.


드디어 만났다. 후배님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10분이란 시간을 할애해서 어떤 계기로 정치외교학을 선택했는지, 미국외교정책 강의에서는 무엇을 느꼈는지, 학창시절에는 어떤 경험을 계획하는지, 졸업 후에는 어떤 커리어를 꿈꾸는지를 짧게 들었다. 우리는 공감대를 확인했다. 현재의 국제 정치, 앞으로 펼쳐질 미래 사회를 만날 후배들이 나의 과거에서 무엇을 챙겨 가도록 추천하고 싶은지. 직관 Intuition, 현장 Explore 이란 단어를 의도적으로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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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나섰을 때 두리번거렸다. 이 길에 대해 묻고 싶었다. 내 차례다. 나는 길동무가 되겠다고 먼저 손을 건네 주어야지.
외교가에서 일하면 일 가정을
양립하기가 어렵다고 들었어요.
선배님은 발표 중에 딸의 사진도 보여 주셨는데,
혹 엄마가 일을 하고 있어서,
가정에 소홀하신 적은 없으세요?


반가운 질문이었다.


"눈치 보느라 휴가를 못 받았던 적도 많았어요. 제가 다녔던 미국대사관은 휴가를 아주 권장하는데도 불구하고 저 스스로가 선택을 못 했었어요. 그러다가 딸과 여름 방학을 보내기 위해 일주일 휴가 받고, 두 주를 휴가 내고, 한 달 동안 휴가 신청하고, 급기야 작년에는 두 달 동안 휴가를 신청해서 동료들이 제가 변한 것에 놀라워 했었어요. 외국 기관은 워라밸을 중요시합니다. 제가 맡았던 포트폴리오에 워라밸도 포함되어 있어서 저는 제 개인적 휴가도 컨택들에게 숨기지 않았어요. 한국 외교가에서는 여전히 퇴근이 힘들 정도로 워킹 아워가 길다는 이야기를 저도 들었는데, 직접 들은 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한국 외교가에 합류하게 된다면 변화를 시작하셔요."


"소감을 말해도 될까요?"라는 후배님도 있었다. 그녀의 말을 듣는 동안 코와 눈이 흔들리고 뜨거워지는걸 느꼈다.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구나.... 교수님께서도 당신의 소감을 나누어 주셨다.


"하루도 행복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는
여러분들 선배의 말이 저에게 울림이 되었어요.
우리 중 누구인들 저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저 분의 열정이
20년 동안 미국 스페셜리스트로
신뢰를 받을 수 있었다고 저는 생각해요.
미국문화외교정책, 미국대민외교정책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미국적 가치를 프로그램화 했던 선배님은
오늘 우리들에게 큰 과제를 남겨 주었어요.
선배님은 한국외교 분야에서 일을 하고 싶어하는 우리는
과연 어떤 한국의 가치를 세계인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지
여러분들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우리 다 같이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학생들과의 시간이 계획보다 길어져서 초조한 마음으로 서울역을 향해 달렸다. 대전 출장이 있었다. 새로운 길로 나는 날아갈 듯이 뛰고 있었다. 어떤 기회가 기다리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나는 나의 직관을 믿는다. 이 길에 울퉁불퉁함이 있을 것이고, 나는 걸려서 버둥거리고 넘어질 것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지. 좀 아프겠지만, 일어나자. 그 길에서 어제처럼 마음이 통하는 길동무들을 만나면 그 순간을 또 즐기자.


대전 출장은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의미가 있었다. 서울로 오는 기차에서 뜻밖의 귀인을 만났다. 처음 만나고 내 이름도 모르는 분이었지만 선뜻 티타임을 제안했다. "제 일일 뿐입니다. 그렇게 감사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라고 말하는 그 분의 모습에 감동을 감추고 싶지 않았다. 처음 보는, 이름도 모르는 우리를 위해 한 시간동안 알토란 같은 정보를 나누어 주신 분과의 미팅을 뒤로 하고 다시 달렸다. 이번엔 강남역.

i_f61Ud018svciio6rimu3fkp_qxpzzy.jpg 한 달 계획에서 우선 순위를 차지하는 배움의 시간! KJ 땡큐!

여성스타트업들이 매달 만나서 자신들이 걷고 있는 사업여정을 나누는 네트워크 모임에 갔다. 가끔 눈 인사를 나누던 모 신문사 기자님이 말을 건네셨다. "여기 나온지 얼마나 되었어요? 어때요, 이 모임? 처음에 어떻게 오게 되었어요?" 기자님은 기자 수첩에 내 대답을 빠른 속도로 노트 테이킹하셨다. "한 4-5년 되었나 봐요. 저는 이 모임에 꼭 참석하려고 해요. 여기만 오면 가슴이 뛰어요. 오죽 쿵쾅거렸으면 퇴직까지 했을까! ㅋㅋㅋ 우린 우리 마음에서 나오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해요. 마음대로 할 수 있어야 해요. 전 이 네트워크 덕분에 퇴사라는 선택까지 할 수 있었어요. 아무 것도 보장된 것은 없었지만, 때가 되면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요. 이 네트워크 덕분이예요. 적극 권장합니다"라고 거침없이 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나를 만났다. 모임을 뒤로 하고 밤길을 오랫만에 걸었다.


옛날 동료들이 무척 보고 싶었다.

하지만 혼자인 것이 외롭지는 않았다. 그랬네...


"교수님, 후배님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진심으로"란 단어가 내 입에서 나오는 순간 난 내 감정을 추스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마음 속으로... ) 감사합니다"란 말을 한다. 월요일 새벽 3시 부터 움직이기 시작해서, 특강하고, 대전 찍고, 강남가서 공부하고, 강북으로 퇴근. 밤 11시 40분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 왔다. 피곤하지 않았고 기운이 충만되어 있었다. 짱이를 만나서 특강이야기, 대전 출장 & 귀인 만난 것, 여성경영인모임 등을 들려 주었다.


"엄마, 뭐야. 오늘은 10분도 쉬는 시간이 없었네. 힘들었겠다"

짱이는 "내가 원하던게 바로 이런거야"를 외치며 자신이 보낸 하루 일과를 들려 주었다.

"그래, 그렇게 쭉 살렴, 짱아. 네가 행복하게."


#이직 #창업 #코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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