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겪은 학생을 맞이하는 학교의 반응, 놀라웠다.

미국 고등학생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에서 정규 수업으로 배운 스페인어를,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시작하려 했던 것은 역시 무리였다. 작년 이 맘 때 즈음 10학년에서 스페인어를 시작해서 졸업할 때까지 3년을 배우면 자신이 원하는 만큼은 스페인어, 즉 제3 언어를 구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마음으로 외국어 과목을 신청했다. 10학년 1학기 때도 마지막 관문인 기말고사에서 실패. 2학기에는 다른 과목들을 따라가기도 힘들어서 다시 실패. 다른 또래들이 몇 년씩 해 오던 것과 발걸음을 맞추어 가는 것은 처음부터 어려움이 예측되었던 것이다. 짱이는 10학년을 마무리하면서 스페인어는 학기 중에는 도저히 무리이고, 방학 때 보충해서 1년 과정을 완수하겠다고 선택했다. 네 생각이 그렇다면, 우리도 그런 거지.


"스페인어도 영어처럼 되는지, 실험해 보자"

딴짓하는 것을 워낙 좋아하는 모녀이다 보니, 초등 5학년 때 스페인어로 된 영상들을 짱이는 보기 시작했었다. 스페인어 특유의 "알~~~ㅎ" 발음이 되는 것을 신기해하면서 영화를 보고 또 봤었다. 얼마쯤 보았는지는 짱이만 어슴프레 기억하고 있다. 중학생이 되고, 우리 식구들은 "듀얼링고" 바람이 불었다. 짱이는 스페인어를, 짱파는 영어, 마미는 일어를 신청해서 매일 시합을 즐기듯이 했었다. 듀얼링고에서는 매일 전 세계에서 가장 빨리, 가장 많이 진도를 나가는 랭킹을 메겼었고, 짱이는 이 경쟁을 무척 즐겼었다. 우린 이해하기 어려웠었다. 왜 그렇게까지? 그냥 즐겨. 응, 이게 내가 즐기는 방식이야. 난 달라. 독특하네.


방학이지만 방학이 아닌 짱이.

1년 동안 배울 스페인어 수업을 2주 남짓만에 마무리를 해야지만 성적 처리가 된다고 한다. 부지런히 스페인어를 배워 가고 있지만, 중간중간에 있는 과제들이 짱이의 발목을 잡는다. 수업 및 테스트가 스피킹, 롸이팅, 퀴즈 등등이 골고루 있고, 앞 과에서 채점이 되어야지만, 그 다음 과의 진도를 나갈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한다. 채점은 자동으로 되는 경우도 있지만, 지구 어디엔가 있을 선생님들이 직접 해 주어야 하는 경우도 많다.

les-anderson-U6cFrZEgX5k-unsplash.jpg 사진: Les Anderson on Unsplash

"채점을 빨리 해 달라고 편지를 써야겠어."

"응? 누구한테?"

"선생님들한테."

"........ 그렇게 요구해도 돼?"

"일단 해 보는 거지, 뭐. 채점이 빨리 되어야 내가 마감 시간 내에 무사히 다 마칠 수 있어."

"그렇긴 하지만....."

"그래, 나도 알아. 내가잘못했었는거 맞아. 내가 더 빨리 했었어야 해. 하지만 나도 내 나름 최선을 다했어."

"넌 충분히 열심히 하고 있어."

"이젠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밖에 있는 일이야."


잠시 주저했지만 짱이는 "학교도 학생들이 공부를 마치도록 도와주고 싶어 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 원칙에 공감한다면, 제시간에 마치지 못한 점도 지적할 수 있겠지만, 공부를 해 내도록 도와줄 수도 있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네 생각이 그렇다면, 그런거지.


"대박! 선생님들에게서 답장이 벌써 왔어."

"헐! 진짜?"

"심지어 고맙대. 내가 스페인어를 끝까지 해 내려고 해서 고맙다는데! 이럴 줄 알았어."

"....... 감동이다....."

"선생님들 마다 답장 내용이 달라. 재밌는데. 이 분은 채점은 조교들이 한다면서 조교선생님들을 cc 해 넣었어. 또 한 분은 자기 전화번호를 보냈네. 진짜 대단한다. 쫌 감동인데."


maria-thalassinou-61fy_dlPtF4-unsplash.jpg 사진 - Maria Thalassinou on Unsplash

짱이가 다니는 학교는 온라인 학교이고, 우린 모든 커뮤니케이션을 이메일과 학교 홈페이지로 한다. 온라인이면 소통에 답답함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어느 때 보다 소통은 활발하다. 학사 일정에 대한 시시콜콜한 것까지도, 학교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즉 교감 선생님과도 이 메일로 짱이는 소통을 편하게 한다. 사립학교가 아니라, 공립학교인데도 개인별 케어를 받는데에 불편을 아직까지는 느끼지 않았다. 미국 공립학교이고 자국민이 아니라, 우리는 어디 사는지도 모를 세계 시민인데도 차별을 느낀 적이 없었다. 우린 정말 이 학교를 다니는 수많은 학생들 중 지구 어느 곳엔가 있는 한 명일 뿐인데도 학교는 바로바로 도움을 준다. "부디 공부만 하면 모든 도움을 주겠다"는 지지를 느끼기에 충분한 일화들이다.


"도저히 안 되겠다. 마감을 넘기겠다. 편지 써야겠다."

"또?"

"응. 일단 의논해 봐야지. 엄마도 봤잖아. 나 열심히 하고 있어. 근데 시간이 부족해. 안 된다면, 안 되는거겠지만, 한 번 물어는 볼래."


텍사스 시간을 계산을 하면서 출근 시간을 맞추어서 상황을 설명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답장이 어떻게 오는가는 자신이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영역이라면서 계속 진도를 나갔다. 그리고 답장은 왔다.


"이 분도 이렇게 의논해줘서 고맙다네. 그리고, 진도를 마무리하게 되면 BYU에서 바로 UT로 성적표를 발송하도록 요청해 달라고 하네."

"맞다, 너 스페인어는 다른 학교에서 듣고 있지?"

"응. 답장을 뭐라고 할까? 고맙다고만 하면 되겠지?"


학교는 학생들이 공부를 끝까지 마무리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정해둔 룰에 맞추지 못할 때, 학생 한 명이 학교라는 거대한 시스템에 도움을 청할 때, 마음에는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고, 주저함이 있었을 것이다.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지만, 흔히 있는 현실을 우리는 지금 경험하고 있다. 학교에 연락을 했을 때 "벌점"을 운운하거나, "다른 학생들과의 공평성을 위해서 너만 따로 그렇게 해 줄 수는 없다"라고 했더라면 우린 이렇게 공부를 이어갈 힘을 잃었을 수도 있었다.


메일을 보낼 정도의 용기는 항상 격려하고 지지해준 학교가 키워 주었다.

도와달라고 요청했을 때,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규칙을 지키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격려를 받고, 지지를 받았을 때의 느낌. 그 마음이 십대 청소년들이 공부를 놓지 않고 이어가게 한다.


dave-lowe-vI9wPJ8L5MA-unsplash.jpg 사진 - Dave Lowe on Unsplash

* Top Photo - Marcelo Cidrack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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