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내가 내 이마에서 땅바닥에 있던 모래를 터는 일이 발생할 줄은 꿈에서도 상상을 못 했던 일이다. 안경은 저만치 날아가 있었고, 왼쪽 발꿈치가 몹시 쓰라려 왔다. 전철역이 바로 저기 보이고 우리 동네에서 제일 큰 스타벅스 앞이었다. 가게 안에서 땅바닥에 나동그라지는 나의 모습을 보았을 수도 있겠다 싶은 큰 거리. 사람들이 보는 게 무슨 대수일까? 나는 나에게 집중하며, 마음과 브레인을 달래고 있는 나를 의식할 수 있었다. 거리에 빗물이 빠지도록 설치해 둔 쇠 덩어리 멘홀 옆 배수관 덮개 장치가 10센티가량 위로 튀어나와 있었다. 피가 흘렀다. 왼쪽 팔에서 흐르던 피는 가방과 바지로까지 튀었다. 앞에 구두수선 가게에서 사장님이 티슈를 들고 달려와 주셨다. 내 모습을 보시더니 눈 주변부터 확인하자며, 그리고 응급조치를 전철역 바로 앞에 있는 119에서 받자고 나를 위로해 주셨다. 왼쪽 눈두덩이에 가득 묻은 모래를 그제야 털면서 일어났다.
구두가게 사장님은 119로 같이 가시겠다고 하고, 나는 낯선 분에게 호의를 받는 것이 이미 너무 고맙고 이 분의 시간을 더 뺐는 것에 미안한 마음에 계속 괜찮다고 거절을 했다. 사장님은 이렇게 넘어지는 사람을 전에도 본 적이 있었다고, 시민들의 왕래가 많은 거리를 왜 저렇게 방치하는지 모르겠다면서 그간의 상황을 분석적으로 들려주셨다. 가게를 활짝 열어 두고 나를 도와주는 것에 마음이 쓰여서 또 "이만큼 도와주셨는데.."라고 말을 꺼내자, "그래도 남자가 한 명 옆에 서 있으면 대우가 달라요. 그냥 갑시다." 헐......... 이렇게 이 말을 듣는구나. 한부모가족들을 만날 예정이었던 나에게는 심히 충격적인 말이었다. 순순히 따라갔다.
119의 큰 철문을 내가 열고 들어가는 날이 있다니......
팔꿈치에서 피는 계속 났고, 걷는데 무릎이 몹시 쓰라렸다. 우리를 맞이한 소방대원은 소방차에 구비된 응급실로 안내를 했고, 팔꿈치와 양쪽 무릎, 이마 등에 응급치료를 받았다. 이 분들의 친절함 덕분이었을까? 감정지능 스킬들이 나의 일부가 되어 가고 있어서일까? 나는 이 위급한 상황에서 내 마음을 챙기고 있었고, 이 분들과 대화하면서 마스크 뒤로 계속 웃고 있었다. 소방대원은 응급실에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마에 난 상처로 볼 때 머리에 영향을 끼쳤을 수 있고,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점검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오 마이 갓!
"저 지금 인천에 워크숍 하러 가던 길이었어요. 가야 돼요. 워크숍 끝나고 병원 가도 될까요?"
"저희는 지금 상황을 설명드렸고 사정이 그러시다면, 이 서류에 서명을 해 주세요."
가족들에게 연락을 했다. 짱파는 토요일 축구동호회를 갔는데 아마 경기에 참여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대답이 없었다. 짱이에게 일단 사진들을 주르륵 보냈고 짧게 상황을 적어 보냈다. 짱이는 이 상황에 인천까지 전철로 이동하는 것은 머리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면서 병원에 가자고 줄줄이 사탕 같은 톡을 보내왔다. 일단 몸을 인천행 전철에 실었다. 머리가 심하게 흔들리는 걸 느끼고 메스꺼움이 올라왔다. 무리였다. 전철에서 내리고 한부모가족회로 내 상황을 알리고 프로그램을 취소할 수밖에 없다고 양해를 구했다. 결국 녀석의 손에 이끌려서 응급실로 갔다.
"보호자 분은? 여기 이름 쓰시고...."
짱이가 내 보호자라니. 녀석은 공손하게 적극적으로 응급실 간호사들과 소통을 하면서 나를 리드했다. 한 명이 옆에 있다는 것이 이렇게 마음을 평화롭게 하다니. 코로나로 응급실 출입이 보호자 1명으로 제한된 상황에서 짱파는 응급실 앞에서 줄구장창 기다릴 수밖에 없었고, 우리 가족은 짱이에게 많은 책임을 맡기고 있었다. 짱이는 내가 걱정할 수 있는 일들을 자기 입장에서 이해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 귀에 속삭여 주었고, 내가 좋아하는 명상 음악을 귀에 꽂아 주면서 응급실 한가운데 앉아 있는 나에게 평화로 연결해 주었다. 다 컸다고 생각했지만, 특별히 확인할 일은 없었는데, 녀석이 옆에 있는 게 너무 든든했다. CT촬영과 X-ray 검사를 하러 가는 길에서 눈물이 하념 없이 흘렀다. "보호자 분은 이제 나가시고"라는 말과 짱이는 입구 문 너머에서 "엄마, 파이팅! 난 여기 있을게!"라며 서있고, 문은 닫혔다. 먼 미래의 어느 날을 보는 듯한 느낌.
모든 일과 사람은 이유가 있어서 찾아온다. 지금 나에게 온 이 상황은 어떤 의미일까?
내가 진행하고, 내가 받고 있는 여러 트레이닝에서 지금 이 순간들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다음 주에는 피크로 수많은 기회들이 계획되어 있었고, 나는 어떤 선택들이 최고일까를 판단하는 데에 토요일 오전 시간을 보냈었다. "시간이 없는데 이렇게 아플 수는 없는데......"라고 생각하던 나에게 "잠시 정지 버튼"이 켜진 것이다. "뭣이 중한디?" 내가 바쁜 이유가 무엇인지? 응급실로까지 나를 초대해서 들려주려 한 메시지는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데는 그리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꿰매면 치료는 아프지만 회복은 빠르고, %$#를 붙이면 아물지는 모르지만 아프지는 않아요. 선택하세요."
응급실에서 명상으로 기운을 찾은 나는 인천으로 이동하는 전철에서 하려고 했던 일들을 꺼내 들 수 있었다. 영상 자료들을 천천히 들으면서 다시 제자리로 마음을 움직이고 있었다. 짱이는 나를 대신해서 한부모가족회와 워크숍을 하게 되어 있었던 분들에게 카톡으로 상황을 알리겠다고 했다. 이 또한 놀라운 일이었다. 낯가림이 무척 심한 고딩이가 "보호자의 역할"을 이렇게까지 챙기다니. 자신이 쓴 글에 혹 부족함은 없는지 나에게 읽어 주겠다고 했지만, 난 들을 수 있는 기운이 없었고, 그냥 보내자고 했다. 녀석의 새로운 모습이었다.
그렇구나, 난 다른 일에 마음을 쓸 시간이 없구나. 난 Legacy Project를 하는데에 모든 시간을 쓰고 싶어해.
팔꿈치에 난 상처를 꿰매어 달라고 말했다. 온 정신을 차리고 이런 상황을 맞이해 본 것은 처음이다. 요오도가 이렇게 아픈지도 몰랐다. 짱이가 어렸을 때 한 두어 번 이 약을 사용한 적이 있었고, 아프다고 우는 걸 보면서 그냥 두려움으로 우는 거라고 짐작했었다. 진짜 아픈지는 우리 동네 119 구급차에서 느끼게 되었다. 응급실에서 보낸 여러 시간 동안 팔에 부분 마취를 하고 꿰매는 동안 나는 보물 같은 시간을 받았음을 알게 되었다. 아주 짧은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게 되면서 아주 긴 시간을 발견하게 되었다. 응급상황의 연속인 우리 삶을 보내는 데는 어떤 툴들이 필요한지, 내가 이 세상에 왜 왔는지, 내가 이 세상에 남기고 싶어 하는 일에 나의 모든 것을 쓸 때라는 것 등. 메시지를 온몸과 마음으로 들을 수 있었다.
"Synchronicity 동시성"과 "용기 Courage"라는 두 단어를 꼬박꼬박 생각하며 생일 주간을 보냈다.
내가 받는 트레이닝에서 하고 있는 "Conscious Leadership"으로 이 두 단어를 reflection 되돌아보면서 10일을 보냈고, 오늘이 마무리하는 날이다. Synchronicity를 시작한 날부터 매일 밤 악몽을 꿨다. 꿈을 잘 꾸지 않는 나로서는 이러한 일이 살짝 당황스러웠다. Synchronicity는 나에게는 시기상조일 것이라고 짐작하게 되었었다. 어제의 일을 겪고 난 오늘.... Synchronicity를 이해하게 되었다. Courage 용기의 의미도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응급실로의 초대는 내 생일 선물을 주기 위함이었다. 서프라이즈 생일 파티는 늘 감동이다. Legacy On.
#Top picture - Jason Leung on Unsplash
#EQ부모역할습득하기 #EQ에듀케이터과정 #정서지능 #감정지능 #청소년행복 #나는나답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