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세의 나이에 첫 개인전”이라는 문구는 이 작가의 스토리는 꼭 들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했다.
- 성곡미술관은 우리 가족이 짱이 놀이터로 자주 찾았던 곳이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아주 오래간만에 이 곳을 갈 기회였다.
- 경제학 전공으로 일본 유학을 가서 “그만” 그림의 세계에 빠져 버렸다는, 그것도 1940년대에!
- “수색역”이라는 작품을 얼핏 보았는데, 원작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 “탄생 100주년 기념전”이 성곡미술관에서 열릴 정도이면 어마 어마한 작품들이 흠뻑 전시될 것 같았다.
- 한국 가옥들의 지붕을 그린 작품들 시리즈가 나는 제일 마음에 들었다. 서양화를 독학으로 공부를 하시면서, 자신만의 빛깔을 찾아낸 예술혼이 느껴졌다.
- 꽃을 그린 작품들이 많았는데, 큐레이터 선생님은 “선생이 본격적으로 작품을 하기 시작했을 때 부인이 너무 기뻐하면서 매일 꽃을 사서 집을 꾸몄다”라고 설명해 주었다. 원계홍 선생은 작품을 많은 사람에게 보여 줄 수는 없었으나, 그 분의 주변에는 진심으로 아끼는 분들이 충분히 계셨음을 알 수 있었다.
- “그 너머-“라는 전시 제목이 “그 너머, 뭐?”라는 질문을 품게 했고, 답을 찾으러 전시장에 갔다.
<소장가 김태섭의 글에서>
“원계홍은 부친의 뜻에 반하여 화가의 길로 갔다.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명문 처가에 대한 부담감, 비타협적인 성격에 마지막까지도 부친이 남겨준 부천 과수원을 팔아서 살아야 했던 컨텍스트 속에서 그가 갈 곳은 오직 한 길 그림을 그리는 것뿐이었을 것이다.”
<소장가 윤영주의 글에서>
“어쩌면 진정한 예술가들이란 저 너머로 통하는 길을 내는 참으로 고된 노역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일지 모른다.”
“그것은 마치 수도승들이 굶거나 잠을 자지 않고 참선이나 명상을 통하여 한 발 한 발 나아가 어느 순간 활연대오하여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되듯, 오로지 자신만의 언어를 완성하는 혹독한 과정일 수 있다.”
<한국현대미술사학자 김현숙의 글에서>
“서울 도심의 ‘철거-개발-이주’ 정책에 의해 무허가 판자촌이 철거된 후 신축된 홍은동 유진상가, 양동, 북창동 빌딩의 뒷골목 풍경이다. 높이 솟은 빌딩의 수직성과 위압적 크기, 벽돌 건물의 강렬한 적색, 거칠고 날카롭게 건물과 대치하는 넓은 도로, 사람도 간판도 없는 뒷골목의 을씨년스러운 풍경에서는 1970년대 고도 성장기에 대한 암울한 비전이 표현되었다.”
<성곡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이수균의 글에서>
“순수하고 우직하게 창작에만 몰두했던 한국의 초기 서양화가들처럼 원계홍 역시 오직 예술을 위한 예술에만 매진했던 데서 오는 예술혼의 깊이 때문일 것이다. 한국 모더니즘 미술은 그 태동기에 새로운 문물인 서양화를 만나며 재료와 기법에 대한 엄청난 호기심과 관심을 보였지만, 놀랍게도 서구 모더니즘의 영향은 작가의 예술적 역량과 열정을 일깨우는 것으로 끝나고, 결국 어떤 사조에도 휩쓸리지 않은 채 자신들의 고유성을 창조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