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할 수 있어야 실현할 수 있다는 말은 참말이었다
학교에 아이를 맡긴 부모로서 우리는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이 적절할까를 곰곰히 생각한 어른은 우리 뿐만이 아닐 것이다. "믿고 맡긴다"말은 같지만, 의미하는 바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학교에 맡겼으면 그 곳은 아이들의 사회이니 관여를 하지 않는다"가 과연 어린이 청소년들을 위한 최선일까라는 생각도 자주 했었다. "학생들이 한 반에 얼마나 많은데 그걸 교사 한 명이 일일이 파악하고 맞추냐, 그건 현실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대학 진학처럼 중요한 문제를 담임이 집에서 알아서 하라고 하더라, 상위권 성적이 아니니 뭐라 할 수도 없는 형편이고," "다 아는 내용이라며 선생님은 진도를 쭉쭉 나가고, 얘들도 넌 학원에서 안 배웠냐고 그래, 나만 몰라, 학원 가야될까?" 등이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서 들리는 말들이다. 중학교 3년 동안 매월 3월에 있었던 학부모면담은 꼭 가야 하는 일로 여겼었다. 아이가 1년 동안 배우고 성장하는고 생활하는 학교에 가장 가까이에 있는 분이 담임 선생님이니, 부모로서 시간을 맞추어서 상견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한 번 더. 학년이 끝날 때 선생님에게 감사했다는 말을 직접 하기 위해 시간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선생님들은 늘 "꼭 오시지 않아도 됩니다, 잘 지내고 있습니다"는 메세지를 짱이 편에 보내셨었다. 그래도 우리가 둘이서 나란히 학교 상담실을 들어서면, "두 분이 같이 오시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로 학부모면담은 시작 되었고, "문제가 발생되지 않는 한 두 분께 연락을 드리는 일은 없으니, 안심하시고 학교에 안 오셔도 됩니다"란 말로 면담은 마무리 되었다. 다행히도 좋은 담임 선생님들을 만나서 짱이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었다. 우리 가족은 "관여를 하지는 않지만 관심은 계속 갖고 간다," "참여할 기회가 있으면 우선적으로 참여한다," "학교, 담임선생님과 소통한다" 등의 소신을 갖고 아이가 공교육에서 9년 동안 배우는 동안 학교와의 관계를 설정했었다.
미국 텍사스 오스틴 시간으로 금요일 오후 5시에 "Back To School 신학기 학부모총회"가 열리니 참석을 권한다는 이메일이 왔다. 참석해야지! 근데 세수를 해야 하나? 안해도 멀리서 보면 안 보이겠지?를 중얼거리면서 우리 시간으로 토요일 오전 7시에 우리는 노트북을 켜고 웨비나에 참석을 했다. 반팔 셔츠 (혹은 티셔츠)를 입은 교장 선생님은 40대 초반(혹은 30대 후반) 처럼 보였고, 학교 담당자들이 각자 맡고 있는 일과 연락처를 소개하면서 Back to School 미팅을 진행했다. 교과를 담당하고 있는 선생님들도 소개를 했다. 온라인고등학교라 학교를 직접 가본 적도 없고, 건물을 본 적도 없었던 터라 이렇게 얼굴과 이름들을 보고 나니, 비로소 연결선이 살며시 느껴졌다. 교장선생님이 활기차게 학사 일정을 설명하는 동안, 화면의 왼쪽 챗룸에는 부모님들이 하나 둘 입장을 했다. 이 지구 어디선가 시차에 따라 입장이 다른 듯 했다. 참여하는 부모의 숫자가 점점 커졌다. 교장 선생님은 이렇게 하는 브리핑은 30분 정도 걸리고, 그 이후 질의응답 시간이 따로 있을 것이지만, 의논하고 싶은 일은 언제든지 온라인 챗방에 올리라고 했다. 부모님들이 올리는 이 질문들이 퍽 흥미로웠다.
"기말고사를 전부 같이 봐야 하느냐? 우리 가족은 여행을 계획하고 있어서 11월 쯤에 빨리 보고 싶다," "고등학교에서 배울 과목을 다른 프로그램에서 이미 이수한 것들이 있다, 학교로 보내면 학점이 인정이 되느냐?" "지난 학기에 미처 다 못 마친 과목들이 있다, 어떻게 해야 마무리를 할 수 있느냐?" "기말고사를 보는 장소가 적절하지 않다, 시험 장소를 학교는 어떻게 구해 줄 것인가?"등. 우리 부부는 각자 노트북으로 참여하고 있다가, "헐? 이게 말이 되는 질문일까?"라는 눈빛으로 노트북 너머로 나눴다. 학교는 "전세계에 우리 학생들이 흩어져 있다. 각자에게 맞추어서 학교는 최대한 서포트를 한다," "시험 장소는 미국 국내의 경우 전국 커뮤너티 칼리지와 협력해서 시험을 볼 수 있도록 한다," "다른 교육기관에서 받은 성적표, 물론이다. 담당자에게 보내면 우리 학교에서 인정한다," "기말고사 때까지 모두가 기다릴 필요는 없다. 11월에도 코스를 다 마무리한다면 시험을 신청할 수 있다"라 힘차게 대답했다. 마치 무엇이든 "예스"로 대답하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부모님들이 올리는 질문들을 읽으면서, "설마?"라며 고개를 갸우뚱 했었는데, "이거이 흥미진진한데. 그래, Why Not!"으로 점점 이동이 되었다. 학생들이 공교육을 받고, 졸업을 할 수 있도록 커뮤너티 전체가 힘을 모으는 광경이었다. 휴.......
교장선생님은 온라인 시스템을 하나 하나 설명하면서 학부모들이 어떻게 자녀들이 학업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지를 설명하고, 설득했다. 학생들에게 보내는 학사일정과 관련한 이메일은 부모님들에게도 개별적으로 모두 메일이 나간다. 학업에 대해서는 매주 치는 퀴즈 및 시험 점수는 실시간으로 업데이트가 되고, 부모들이 관심을 갖고 도와 주기 바란다고 한다. 부모님들이 올리는 개별적인 상황에 대해 일일이 학교 관계자들은 대답을 했고, 이 웨비나 상에서 충분히 정보를 제공하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되는 경우에는 교장 선생님은 자신을 비롯하여 교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거나, 심지어 "시간 약속을 하고 전화로 의논하자"는 말까지 했다. 아, 부모님들의 이름을 Mr., Ms 등으로 일일이 호명하고 대답을 했다.
기말고사가 가장 길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통적인 학교에서 하는 것처럼 일과를 계획하라고 당부했다. 한 과목만 치는 경우에도 몇 시간이 걸리고 시험 준비도 만만치 않은데 여러 과목을 한꺼번에 몰아서 치는 것이 얼마나 힘들겠느냐며, 기말 고사 일정도 개별적으로 정하는 것이니 충분히 여유 있게 학생들이 최상의 컨디션으로 치를 수 있게 부모들이 참여하라고 설명했다. 그렇긴 하지... 기말에 얼마나 부담이 클까..... 시험 점수를 높게 받는 것과 그 과목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 받는 것은 별개다. 학교에 개설된 과목 중에 학부모들이 찾는 것들이 없다면서, 학업성취도가 높은 아이는 높은 아이대로, 낮은 아이는 낮은 아이대로 배울 수 있도록 다양한 코스가 있는지를 학교에 질문을 했다. 과목을 요구하고, 더구나 수준이 다른 과목을 요구한다? 헐! 또한, 온라인고등학교인데, 교과목 중에 Art, 체육 수업이 있어서 궁금했었다. 이 궁금증을 풀어줄 실마리가 설명되었다. 체육 수업을 교외 스포츠 기관에서 받을 경우에는 미리 해당되는 서류를 제출한다면 학점이 인정이 된다고 했다. 이 모든 대화(?), 대화였다. 교장 선생님과 교직원들은 일방적으로 설명하기 보다는 앞에 우리가 앉아 있는 것 처럼 대화식으로 설명했다.
점수를 매기는 것도 "학생들 마다 자신의 길을 가면 된다. 자기가 어디쯤 가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하고, 제출 마감이 있어서 그걸 지키지 않으면 큰일이 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어느 정도 가야 하는지를 파악하면 된다, 패밀리 내에서도 학생들이 어디쯤에 있는지를 늘 파악하고 관심을 갖고 지원해 주길 바란다"는 말도 심히 놀라웠다. 일방적인 설명이 아니었다. 온라인이라 거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던 나에게는 적지 않은 문화적 충격이었다.
Personal Graduation Plan 개인별 졸업계획서. 일명 PGP는 가장 자주 쓰이는 단어이다. 짱이가 학교 오리엔테이션을 할 때도 첫 질문이 "만나서 반가워, 너는 어느 대학에서 어떤 공부를 하고 싶어? 우리 PGP를 디자인하자"였다. 학부모총회에서도 졸업이 가까워지면서 인턴십, 다른 트레이닝, 단기 취업, 차후 학업 계획, 가족의 상황 등 다양한 변수에 따라 이 계획서가 달라질 수 있다면서 부모들이 이 계획서가 익숙할 수 있도록 설명을 했다.
온라인고등학교 학부모총회는 청소년들이 자신의 속도로, 자신들이 가고 싶은 방향으로 가면서 고등학교를 마칠 수 있도록 가장 가까이에 있는 패밀리들이 어떻게 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대화들을 예로 들어서 교육하면서 마무리를 했다.
보폭: 과제물들을 제출하도록 학사 일정표를 계획하도록 자녀들을 도와 주세요.
체크인: 네가 세운 일정표가 괜찮은 것 같아? 진도가 어디까지 나갔는지, 점수는 어떤지 자녀와 매주 미팅을 계획하세요.
질문하기: "국어/문학 수업에서는 어떤 작품을 읽고 있니?" "역사 수업에서 네게 흥미로운 사실을 있니?" "공부할 때 어려움은 어떤게 있어? 선생님한테 연락해 봤니?"
작지만 관심을 끌었던 단어는 Family Access라고 부르지 Parents Access라고 안 부르는 것이었다. 가족의 범위가 우리 사회 보다 훨씬 다양한 서구 사회다 보니, 특정인 한 명 혹은 두 명으로 제한하여 부르기 보다는 광의의 의미로 패밀리란 단어를 선택했다고 짐작되었다. "온라인학교," "전세계에 흩어져 사는 우리 학생들," "청소년들이 공부를 마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함께," "언제든 연락하자," "각자의 속도로, 자신만의 방향으로," "졸업에 필요한 일을 하는건 우리들의 Job." 이 단어들이 토요일 아침 우리들이 갖고 있던 문화적 선입견을 깨고, 문화적 갭을 채워 주었다.
그래, 결국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야. 그것도 사회적 약자인 청소년들 이야기. 학교안이든, 학교밖이든,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어린이 한 명이 성인 한 명으로 성장하는데는 공교육 10년이 걸리는 그랜드 프로젝트이다. 어디서든지 배울 수 있도록 도와 주는건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참여해야 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야.
온라인고등학교다 보니 스쿨네트워크가 비로소 가깝게 느껴졌다. 학교밖청소년 짱이에게 학교가 다가 왔다. 온라인고등학교인 여기는 안과 밖의 구분이 없다. 배우기 위해 멈춰선 그 자리가 학교다.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