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국제교류 TAN TAN RoDee Dec 07. 2019

미국온라인고등학교 기말고사를 준비하며

홈스쿨러~ 코피 날 정도로 공부를 하고, 시간관리를 연습하는 첫 학기! 

"저리 가, 시험 보고 있잖아." 

단잠을 자고 있는 짱이에게 이불을 덮어 주려고 다가가자 인기척을 느꼈는지 녀석이 나에게 던진 잠꼬대다. 아뿔싸.... 자면서까지.... 시험이 걱정 되었나 보다. 마음을 편하게 해 주고 싶었다. 

"그랬어? 미안해." 

"엄마는 배신자야. 우리 비밀을 다 폭로했어." 

엉? 이건 또 무슨 말인지..... 잠꼬대구나. 악몽을 꾸나 본대 하필이면 마미가 악역인가 보다. 내가 어제 저녁에 뭘 섭섭하게 했나? 

"그랬구나. 미안해. 푹 자라." 

잠을 자면서 고개를 살짝 끄덕거린다.... 으이그, 우리 고딩이! 

 

7과목을 온라인 수업으로만 공부해 왔는데, 1월 초에 전과목 시험을 보아야 한다. 영어(미국 고등학생들에게는 국어), 생물(Biologoy), 수학(Geometry), 체육(Physical Education, PE), 예술 (Art), 사업정보(Business Information Management, BIM), 그리고 세계사(World History). 이 중 2과목, 영어와 PE는 교과서를 찾고, 해외배송으로 구입하는 데에만 7-8주가 걸렸다. 다행인 것은 짱이가 미국 교과서 중고시장까지도 파악을 한 덕분에 저렴한 비용으로 구입할 수 있었다. 9월부터 학기는 시작되었지만 10월 중순이 넘어서야 교과서를 손에 넣고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첫 2-3주는 기상이 하늘에 닿을 듯하여 1월까지 기말고사를 기다리지 말고 그냥 후딱후딱 시험 치르고 방학을 더 길게 잡아 보자고 했었다. 모르면 용감하다더니! 


한 주에 나가는 분량은 Big Book 사이즈의 교과서를 각 과목마다 평균 30페이지가량을 읽고 온라인으로 과제를 하고, 매주 Graded 퀴즈, 즉 주간 평가들을 봐야 한다. 전부 다 성적에 반영이 된다. 퀴즈는 퀴즈가 아니다. 숙제는 숙제가 아니다. 거의 단편 리포트다. 미국초등학교 선생님이 "미국초등학교는 20분이 넘을 정도로 숙제를 주면 불법이다. 우리 아이들은 정말 공부를 안 해서 큰일이다"라고 하던 말이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 과정이면 과목당 그럼 1시간 정도면 미국 또래들은 이 숙제가 끝난다는 말인가? 우리 짱이는 아닌데..... 예를 들어 보면, PE, 즉 체육 과목 숙제를 하는데 사흘을 꼬박 썼다. 문제는 "다이어트의 역사를 1870년대부터 최근까지 조사하고 가장 두드러졌던 사건들을 중심으로 연대기표를 만들어라. 이 연대기표에는 그림을 한 장씩 포함하여 설명하라"였다. 관련 자료들은 제공되지 않았다. 짱이는 관련 자료들을 리서치하기 시작했다. 시대별로 적절한 모멘텀도 스스로 선택해야 했다. 자료를 모으는데만 꼬박 이틀이 걸렸고, 이를 분석, 정리, 자기 글로 쓰는 데는 다시 하루가 오롯이 들어갔다. 처음에는 나는 "무슨 체육 전공 대학생들이 할 법한 숙제니?"로 놀라기 시작했고, 아무리 해도 마무리가 되지 않는 숙제에 "너 그냥 그걸로 체육 논문 써라"까지. 짱이는 식탁에 앉으면 다이어트의 역사를 공부한 사람답게 식품에 대해, 영양 섭취에 대해 뭐라고 뭐라고 말이 많아졌다. 공부한 보람은 있었지만, 양은 너무 많았다. 이 사흘이란 시간 동안 나머지 6과목은 스톱 상태였고, 녀석의 속은 타들어갔다. 

사진: PublicomainPictures from Pixabay 

시간관리에 빨간 등이 켜졌다. 기말고사를 준비하라는 메일이 학교에서 오기 시작하는데, 짱이는 진도가 너무 뒤처져 있었다. "실패를 통해서 가장 크게 성장하니 부모의 역할은 묵묵히 지켜보는 것일까?" 짱파도 조바심이 점점 나기 시작했다. 아침잠이 많은 우리 짱이, 드디어 "다른 아이들은 지금 이 시간에 얼마나 열심히 하는 줄 아니?"를 아빠에게서 듣게 되었고 무척 무척 속상해했다. 학기 초에 규칙적으로 전과목을 골고루 했어야 하는데 우린 홈스쿨의 묘미를 살려 보자며 여러 가지 변형된 스타일로 하루 일과를 보냈다.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 했다. 컴패션 Compassion, 컴패션 Compassion, 컴패션 Compassion! 이란 단어를 외치며 온라인고등학교 오리엔테이션 웨비나에서 배운 데로 "정기적인 가족회의를 통해 진도를 함께 빼기"를 시작했다. 가족들이 여유를 갖는 저녁 시간에 미팅을 하자, 짱이는 스트레스를 받아했고, 우리도 목소리가 저음으로 되기가 일쑤였다. 짱이가 열심히 한다는 것도, 내용이 무척 어려울 것이라는 것도 이해를 하고 있었지만, 우리가 당사자가 아니기에 "그래도 조금 더!"를 아이를 위한답시고 자꾸 입 밖에 내었던 것이다. 결국 가장 힘든 건 이 아이인데..... 짱이는 스케줄 미팅을 낮 시간으로 바꾸자고 제안을 했고, 바로 그 주부터 아침 식사 후에 가벼운 마음으로 했다. "일정표는 수정하기 위한 것일 뿐"이라는 구절을 자꾸 이야기하며 스트레스를 조절할 수 있도록 도왔다. 짱이가 자신감을 가지고 있고, 전략적으로 가장 우선시하고 있는 수학 Geometry도 숙제가 장난이 아니다. 주관식 문제들을 어떻게 그렇게 이해하고 풀어내는지...... 신기했다. 객관식 문제들 중에 4지 선다도 아니고, 5지 선다도 아니고, 20지 선다가 나올 줄이야. 세상에 맙소사! 


Business Information Management(BIM), 사업을 하기 위한 기본 필요 사항과 자신의 사업을 시뮬레이션으로 해 보게 하는 이 과목이 짱이에게는 제일 어려운 코스이다. "난 사업하지 않을 거라고요. 그런데 내가 왜 이 과목을 해야 하는 거냐고요. 무슨 말인지 읽고 읽고 또 읽어도 난 모르겠어!" 그녀의 아우성! 그렇다고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상황인가..... 어쩌란 말인가.... 우리가 아니면 누가 있겠는가? 셋은 머리를 모으고 앉아서 짱이의 설명을 들으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내어 놓았다. 햐..... 이런 교육을 미국 공립고등학교에서 모든 학생들이 받는다고? 그러니, 앙트십 마인드가 우리보다 높은 거지. 하긴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을 하지 않고, 바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십대들도 있으니, 이 교육은 라이프 스킬이겠다. 미국 교육의 실용주의구나. 


워낙 양이 넘치게 많다 보니, 한 주에 해당되는 양을 하루 만에 해내고, 시험도 매일, 아니, 하루에도 두세 개씩 볼 정도로 집중을 하는데도 진도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었다. PE와 BIM을 한 주 내내 해도 요지부동이다. 균형을 맞춰서 골고루 진행해 보자고 했건만 짱이는 이렇게 한 과목으로 일단 승부를 걸고 싶어 했다.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실험하고 자신을 살피는 기회이니 그렇게 해 보자 하고, 한 주를 기다렸다. 시간관리는 실패였다. 짱이는 이제 다른 방법을 써 보자는 제안에 동의를 했다. 우린 2+3+2, 즉 수학, 과학, PE를 일정한 배율로 시간을 배정하고 다시 함께 진도를 빼보자고 전략을 바꾸었다. 짱이는 이 방법이 더 효과적이었다며 제안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짱파가 참고 참고 참다가 현실을 타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발표했다. 즉, '예체능 & 인턴십 시간을 당분간만이라도 중단하자,' '중단하지 않으면 학기를 마칠 시간 확보가 절대적으로 어렵다'였다. 짱파는 현실을 직시했다. 짱이가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시간을 만들어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인턴십을 하는 화 & 목요일은 학교 공부를 할 시간도 에너지도 0, 토요일은 첼로 레슨, 오케스트라, 기타 레슨으로 하루 종일 차있고 역시 교과서는 1도 볼 수 없는 날들이다. 일요일은 "쉬어야 한다"가 짱이가 삶을 대하는 태도이자, 우리가 꼭 지켜 주고 싶은 마인드. 그렇다면 7일 중 고작 3일 학과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짱파의 산수가 맞았다. 짱이는 인턴십, 즉 목공 배우는 시간은 이번이 아니면 배울 수가 없기 때문에 아빠 말에 동의는 하지만 따를 수는 없다고 자기 주장을 펼쳤다. 음악 전공할 것은 결코 아니지만, 첼로와 기타는 취미로 계속할 것이기 때문에 "그냥 하겠다." 오케스트라는 어차피 이번 송년 공연이 있고 나면 졸업을 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가야겠다"이었다. 팽팽한 의견차... 어찌해야 할지..... 첼로와 기타를 2주에 한 번 꼴로 하면서 어찌 어찌 그 고비를 넘겼다. 아!!!! 아!!! 젬베!가 빠졌구나. 이동시간이 왕복 3시간이 걸리는 이 활동을 하느라 일요일 2시부터 8시까지..... 이번 학기를 무사히 넘기자며 7과목을 어떻게 마칠지를 계획표로 만들고, 고치고 완성하고 또 고치고 다독이고 다그치고를 매주 했다. 결국 이 과정이 우리 가족이 함께 인생이라는 진주를 만들어가는 시간이라 생각되었다. 

사진: Gerd Altmann from Pixabay 

이 와중에 짱이는 카이스트 컴퓨터 프로그램도 매주 과제를 올리면서 무사히 마무리를 했다. 젬베를 하고 난 후 집으로 와서 마무리를 하면 마감 시간에 허둥댈 수 있어서 짱이와 나는 합정역 앞 가게에서 자정이 가까워질 때까지 짱이는 과제를 하곤 했다. 이렇게 되면 또 학과 진도를 할 시간이 줄게 되었다. 시간관리를 꼼꼼하게 따지는 습관이 아주 조금씩 생기고 있다. 포스텍영재기업인교육원에 지원서를 쓸 때도 자기에게 생길 시간, 즉 인턴십이 끝나는 시점, 카이스트 프로그램이 마무리되는 시점 등을 계산했다. 물론 놀 시간도 계산에 넣었다. 그리고 자신이 이걸 꼭 해야만 하는, 그렇지 않으면 못 배우게 될 내용도 계산에 고려되었다. 그리고 지원서를 넣었고, 인턴십과 카이스트가 마무리되던 주에 포스텍 프로그램에 최종 합격을 했다. 승리의 세레나데 후 "학교 진도 빼자"며 다시 책상으로...... 짱아.... 핸드폰에 앱을 깔고 모든 SNS를 사용하는 양을 관리하는 모습을 보였다. SNS에 쓰는 시간의 양이 점점 줄고, 일정한 시간에만 목적이 있게 사용하는 자신의 모습을 무척 자랑스러워한다. 디지털 틴들의 모습은 이런가 보다.        

Physical Education, 체육 교과서로 380쪽 가량이다.

우리를 무척 걱정하게 하는 성향도 드러났다. 짱이는 퀴즈를 모두 만점을 목표로 하겠다 한다. 고집스럽게 이 목표에 집착한다. 부모로서는 최선을 다해서 공부를 하고, 숙제를 하고, 퀴즈를 보는 것만으로도 자랑스럽다. 만점을 못 받았을 때 보이는 격한 감정 표현은 부모로서는 참으로 마음이 아프다. 짱이가 이런 성향이 있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한국 학교에서는 성적이 영어와 과학 등에서만 만족스러웠고, 다른 과목들은 지극히 평균이었던 터에 이 아이의 이런 모습은...... 처음 하는 미국고등학교 프로그램에서, 이렇게 양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완벽을 추구하는 모습은 마냥 좋게만 보기가 어렵다. 


짱이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몇 과목은 extend를 신청해야 할 것 같다고 비용이 들 것 같다고 "미안하다"라고 했다. 공부하는 것만 해도 마음에 부담이 많을 텐데 경제적인 것까지 챙기는 성숙함에 마음이 짠했다. 우리는 몇 과목을 extend 신청할 것인지, 그렇게 될 경우 2학기 진도를 나가는 것과는 어떻게 충돌이 있을 수 있는지를 며칠을 두고 의논하고 수정하고 다시 결정하기를 반복했다. 이 과정에서 소중하게 건지는 것이 있다면 과목별로 어느 정도의 시간이 있어야 그 공부를 해 낼 수 있는지, 어느 정도의 어려움이 예측되는지를 스스로 판단해 낼 수 있는 힘이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사진: Michal Jarmoluk from Pixabay

간신히 다음 주 초면 PE와 수학, 과학이 어느 정도 진도를 따라잡을 것 같다. "해냈지, 해냈지! 나 해낸다, 이번에도!"라는 짱! 진도가 따라가기 힘들고 Extention을 요청할 계획이라는 것을 학교 담당자와 의논을 했더니, 이 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고, 진도를 맞추기 힘들 것이라면서 학교가 어떻게 도와주면 되겠냐고 한다. 2학기 공부와 겹쳐서 가는 것이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힘든 상황이 계속되면 2학기에 또다시 힘들어질 것이라면서 어서 속히 1학기를 마치고 extension을 하지 말라고 권한다. 관심사가 많고, 하면 최대치까지 해야 하는 짱이라서 이러한 상황이 왔기에 나는 짱이에 대한 믿음이 있다. 답장을 썼다. "걱정을 해 주어서 고맙습니다. 지금 진도가 많이 쳐져 있는 상황임을 인지하고 있고, 우리 가족은 최선을 다해서 돕고 있습니다. 나는 이 아이가 결국은 마무리를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extension은 본인이 희망하는 바이고, 저는 부모로서 지지하고자 합니다. 신청하겠습니다"라고 답장을 썼다.  


이렇게까지 과목 진도가 밀리면 혹시나 좌절하고 따라잡을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봐 마음이 쓰이는데 짱이는 끝까지 집착한다. 짱이에게 나의 걱정을 말하면서 "고맙다"라고 했더니, "엄마, 내가 어째서 이런 마음이 생기는 줄 알아?"라 한다. "스포츠부, 스포츠를 하는 애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아. 끝까지 한다니까. 그래서 난 여자애들에게 스포츠 시간을 꼭 줘야 한다고 하는 거야"라 한다. 그랬구나. 딴짓을 하면서 "그릿 Grit"이 생겼구나. 고맙다. 우리 이번에도 끝까지 완주해 보자. 

사진: Michal Jarmoluk from Pixabay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