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문이 열렸고, 온라인 커뮤니티도 풀가동이다, 두근두근.....
이번에는 달랐다.
지금까지는 나는 내가 배우고 싶으면 그냥 했다.
직접 경험해 봐야지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지라, 공부하는데 쓰는 돈은 투자다 뭐다 생각하지도 않고, 일단 배우고 봤다. 평생 그렇게 해 왔고, 나의 성장 동력이 거기에 있다 생각했다.
멘토님이 오랫동안 여러 번 권했지만, 이번 공부는 나는 "No, thanks"로 일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년 동안 나에게 멘토님은 은근히 지속적으로 이 배움을 권했다. 멘토의 추천이어서 "굳이" "별로" "하지만 고마워요"로 일관되게, 그것도 여유 있는 미소로 거절하는 것이 쉽지는 않은 일이었지만, 웬일인지 나는 이 건에 대해서는 망설이지 않고 거듭 거절했다. 그러다가...... 혼자서는 버틸 수 없었던 도전이 닥치자 "설마... 여기에 해결의 실마리가?"라는 아지랑이와 같은 모습으로 이 단어가 다시 나에게 다가왔다. 멘토의 인사이트가 비로소 내 귀에 들렸다. 그런데 이번엔 뜻밖의 곳에 허들이 또 있었다.
가족들에게 내 생각을 말했다. 놀랍게도 짱파와 짱이는 강력히 반대를 했다. 별로 ”No”를 하지 않는 이 두 사람이 설명도 장황히 붙이면서 하는 “No”는 의외였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 두 사람에게서 서포트는 커녕 격려 한 마디 조차 받지 못하는 일이라면 굳이..... 다시 생각을 접었다.... 근데 그게 아니었다. 나는 이 공부가 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 집에는 이 일로 긴장이 흘렀다. 주변에서 나를 이해하고 아낀다고 생각했던 분들에게도 의논을 나눠봤다. "뭐? 공부? 그만 하자. 우린 공부공화국이야. 그 일이 하고 싶으면 그냥 해. 이미 충분해"를 비롯하여, 지지해 주는 사람을 찾기는 어려웠다.
신기한 일이었다. 아무도 내 선택을 지지해 주지 않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꼭 해야 되겠다고 주장을 꺾지 않고 있었다. "목적이 불투명한데도 이렇게까지 하고 싶어 하는 나를 보니, 이건 내게 꼭 필요한 공부겠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나의 강력한 동기를 깨닫고 나자, 지난 몇 년 동안 돌아 돌아서 이제야 이 선택을 했다는 것이 반가웠다. 그 동안 경험한 다양한 마음의 갈등들이 9개월짜리 코칭 연수를 LA에서까지 받게 하는데 걸려야 했던 시간이었다.
캘리포니아가 사막이 많은 주라는걸 상기시켜 주는 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 정원 사이로 나 있는 작은 길을 종종걸음으로 따라 걸어가면서 아침 공기를 느꼈다. 코칭 트레이닝 공간은 자기 자신이 가장 편안한 자세로 참여하도록 다양한 의자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천장은 아주 높았고, 한가운데에는 창이 뚫려 있어서 가을 햇살이 쏟아져 들어와서, 우리들의 이 특별한 공간을 환히 밝혔다. 그 공간에는 하얀색 등이 여러 개가 달려 있었는데, 마치 우주를 보는 것 같았다.
40명 가까운 동료들과 각자 어떤 뿌리에서 왔는지, 지금은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계기로 이 프로그램을 참여하게 되었는지를 나누었다. 이들의 스토리가 너무 방대하고, 품고 있는 비전들이 원대해서, 나로서는 짧은 시간에 전부 이해하고 기억하기가 벅찼다. 더구나 책 속에서나 듣고, 미디어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접하면서, 거리를 두고 바라보았던 역사적 사건들과 현재 진행되는 사건들 속에 이 동료들이 있다는 것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마치 한 명 한 명이 나에게는 하나의 소우주인 듯 느껴졌다. 40명 참여자가 갖고 있는 40개의 각기 다른 이슈들은 Social Justice 사회적 정의라는 하나의 단어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 단어는 구호가 아니었고, 책에만 머무는 글자가 아니었다. 동료들은 어제 보다 더 나은 내일을 자신들이 속한 커뮤니티에 실현하기 위해 워싱턴에서, 캐나다에서, 시카고에서, 뉴욕에서 매일매일 일하고 있었다. 믿기 어려운 일은 각기 다른 곳에서 서로 통하는 가치를 실천하던 이들이 이 곳 LA 트레이닝 공간에 모두 모였다는 것이다.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는 알고 지냈던 사이처럼 자연스럽게 공존이 되었다. 여기까지 오기 전에 거친 고민의 시간들이 새삼 감사했다.
코칭 트레이닝은 새로운 스킬들을 소개하는 시간이 아니었다. 이미 우리 안에 있었던 것들을 발견하고, 캐내고, 이름을 붙여주는 작업이었다. 그 과정 자체가 곧 성취였다. 코칭을 서로 해 주고, 받으면서 상호 임파워먼트를 경험했다. 이들은 캐나다인, 아시안계 미국인, 유럽계 미국인, Native Americans, African Americans 등 다양했다. 해외 유학도 가보지 않은 순수 토종 한국인 Korean Korean인 내가 처음인가 보다. 내가 살아온 스토리를 듣고 "힘든 이야기였을 텐데 처음 만난 우리를 신뢰하고, 경험한 그대로를 나누어 주어서 고맙다"라고 표현할 때, 나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한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 그가 속한 공동체 문화를 파악하게 되었다. 또한, 그게 단순한 사회 문화를 기술한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의 인생이기에 우리들의 이야기는 그만큼 소중하게 여겨졌다.
LA에서 이틀에 걸쳐 시작된 코칭 트레이닝은 이제 온라인 커뮤니티로 이어졌다. 지금부터는 각자 커리큘럼에 따라 리딩을 하고 온라인에서 만나 서로의 성장을 돕는다. 두 번째 프로그램이 있는 11월에 우린 이 곳에서 다시 만난다. 이렇게 9개월 동안 6번을 만나게 될 우리! 이제야 만났다.
진짜 배움이 시작되었다. 지금은 불확실하지만, 이 트레이닝에서 나는 인생을 걸만한 사명감을 발견할 수도 있다. 9개월 간의 트레이닝을 마치고 나면 나는 어떤 모습일까? 호기심 가득이다. 코칭 동료들과 함께한 LA에서 만난 추석날 보름달은 이 곳이 어쩌면 고향 같은 곳일 수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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