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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리 Aug 05. 2017

우리의 한 그릇 소울푸드


부부가 살다 보면 닮는다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이 단순히 '잘 어울린다'는 말로 인사치레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긴 시간 자라온 환경도, 살아온 과정도 다른 상대와 닮아간다는 것이 크게 와 닿지 않은 이유다. 그런데 이제 와 갑자기, 사랑하면 닮는다는 말이 마냥 터무니 없는 소리는 아닐 수 있겠다, 싶은 여지가 생겼다. 어쩌면 나도 사랑하는 그와 닮아가고 있는 중일지도 모르니. 


4년 전, 새벽예배를 드리러 오가는 길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어 우연히라도 만날 일이 있을까 싶은 인연이지만, 이렇게 만나 지금껏 사랑하며 함께한다는 것이 새삼 신기하다. 그는 좋고 싫은 것에 대한 입장이 확실한 편이다. 이제 와 하는 말이지만 처음 연애를 시작할 때만 해도 당혹스럽거나 기분이 상하는 일이 왕왕 있었다. 늘어놓으면 시시콜콜한 이야기겠지만, 원래 별거 아닌 일에 더 기분이 상하는 법이 아니던가. 그런데 재밌게도 맞물리지 않을 것 같던 시간이 하루씩 지날 때마다 딱 그만큼씩 점점 닮아갔다. 강아지보다 고양이를 더 좋아하게 됐고, 즐겨 듣는 음악 중 서로 겹치는 플레이리스트가 많아졌다. 특히 허기질 때 떠올리는 소울푸드까지도 비슷해졌다.


나는 하는 일의 특성상 김밥이나 패스트푸드로 끼니 때울 일이 많아 흰밥에 국하나, 밑반찬 서너 개가 나오는 백반을 좋아한다. 하물며 가격도 저렴하고 제철 채소도 맛볼 수 있으니 왠지 건강한 집밥을 챙겨먹는 기분이 들어 만족스럽다. 이에 반해 그는 혼자 작업을 하는 직업이다 보니 혼밥 먹을 일이 잦다. 그래서인지 빨리 나오고, 혼자 식사하기에 부담이 없는 한 그릇 음식을 자주 찾았다. 한 번씩 전화해 "식사는 했어요?"라고 물으면 덮밥, 비빔밥, 돈가스처럼 한 그릇 메뉴가 단골처럼 등장했다.


그는 특히 일본식 덮밥을 좋아한다. 한 그릇으로도 든든하고 깔끔하다는 것이 이유다. 처음엔 만원 정도 하는 가격에 한 그릇만 덜렁 나오는 모양새가 아무래도 야박하다 싶었는데, 이제는 과하지 않아 좋다며 예찬한다. 말간장(쯔유)만 잘 끓여 놓으면 두고두고 한참을 먹을 수 있고 응용이 쉬워 실패하는 게 더 어려운 일일 만큼 초간단 요리다. 특히 설거지의 부담도 가볍다. 대접 하나와 수저 한 벌이면 충분하니 말이다. 이모저모로 실용의 메뉴다. 


맛간장(쯔유)을 만드는 법은 간단하다. 프라이팬에 파와 간장을 약간 태우듯 굽고 진간장과 설탕, 국물용 멸치를 한소끔 넣어 끓이면 되는데, 이때 생강이 있으면 한쪽 정도 같이 넣어주면 맛이 더 향긋해진다. 내리기 직전 가쓰오부시를 넣고 걸러내면 감칠맛이 더하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도 부족함이 없다. 한 김 식혀 냉장을 해 두면 한참 동안 먹을 수 있다. 


뜨끈한 밥 위로 간장소스를 끼얹어 전날 먹고 남은 삼겹살이나, 치킨, 혹은 계란 프라이나 햄만 얹어도 근사한 한 끼 식사가 된다. 아무래도 맛간장을 만들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 덮밥용 쯔유나 조림용 간장을 사서 쓰는 것을 추천한다.


사실 이렇게 쉽고, 간단한 요리라며 젠체하고 있지만 생각해보니 그에게 단 한번도 만들어준 적이 없다. 갑자기 언행 불일치를 자행하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알싸해진다. 그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혹은 한참 후에 알았을 한 그릇 음식의 매력을 마음껏 뽐내어 그의 한끼 식사를 챙겨주어야겠다. 


그 한 그릇을 함께 비우고 나면 우리는 조금 더, 닮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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