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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리 Jun 03. 2016

대파 한단은 어디로

매일이 야근이다 보니 오랜만에 일찍 들어가는 날에는 "뭘 해 먹을까?"가 가장 큰 숙제다.


퇴근길, 마트에 들렀다. 선뜻 들고 갈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수박도 한통 사고 아침에 해먹을 계란밥 재료(계란밥엔 대파가 꼭 필요하니까)도 샀다. 계산 후 주섬 주섬 카드와 영수증을 지갑에 챙겨 넣고는 수박을 두 팔로 안았다. 그리고 봉지 손잡이를 손목에 걸었다. 걷는 내내 봉지가 내 무릎을 탁탁 치는 바람에 꽤나 거슬렸지만 그것 빼고는 무거운 수박은 생각보다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집에 오자마자 재료를 정리하고 수박을 손질해 냉장고에 넣었다. 텅텅 빈 냉장고가 금세 가득 찼다.


전날 샀던 재료로 아침을 챙겨 먹어야겠다 싶어 조금 일찍 아침을 맞았다. 계란밥을 할 요량으로 재료를 준비하는데 어이없게도 대파가 사라졌다. 아무리 찾아도 없거니와 기억을 더듬어 정리했던 순간을 떠올려보니 이미 대파는 없었다. 


"아, 없었어 없었어. 어제 정리할 때부터 없었어"

"나참, 이젠 별걸 다 잃어버리네"


봉지에 담을 때부터 밖으로 힘없이 넘어져 말썽이더니 결국 수박을 안고 가느라 신경 쓰지 못한 사이 대파는 길가 어딘가에서 탈출을 감행했을 터. 그 덕에 허전해진 계란밥을 숟가락으로 퍼먹으며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사나 싶었다. 그러다 길가에 차분히 떨어져 있었을 대파 한단을 상상하니 피식 웃음이 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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