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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리 May 04. 2016

뜨끈 뜨끈 밀크티

꽃샘추위가 지나고 한동안 비가 내렸다. 겨울의 끝을 알리듯 촉촉이 젖은 땅에서 흙냄새가 진동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벚꽃이 흐드러진 봄이 왔다. 나는 아직 나갈 채비가 안되어 있는데 불쑥 봄이 와버린 것이다. 유독 풍성하고 뽀얀 벚꽃은 출근할 때마다 몸과 마음을 들썩이게 했다. 당장이라도 돗자리만 챙겨 일탈을 감행해야 할 것 같은 충동이 일었다. 그러나 현실은 기한에 맞춰 시즌을 준비해야 했고 그 덕에 세끼를 회사에서 해결하기 일쑤였다. 우선순위를 정해 하나씩 일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벚꽃도 함께 끝이 났다.


퇴근길, 문득문득 생각나는 몇 안 되는 친구들이 궁금해졌다. 주어진 삶이 다르고 타고난 그릇의 모양이 다르다 보니 통, 먹고 사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안부 묻는 것도 쉽지 않았다. 써리원 코튼캔디 아이스크림처럼 온갖 파스텔 톤이 하늘을 물들였다. 지는 태양은 더 빨갛게 지글지글 거렸고 퇴근길 꽉 막힌 사거리는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나는 그 공간 속 횡단보도의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서 있었다. 이전보다 한결 여유로운 마음으로 전화번호 리스트를 휭휭- 올려갔다. 그러다 2년 전, 만남을 뒤로하고 통 소식을 묻지 못했던 친구가 생각났다.


"며칠 전, sns 에 댓글을 달았던 것 같은데?"


혼자 중얼거리며 이전에 올렸던 게시물의 댓글을 확인했다. 그 친구의 댓글이 있었다. 바로 글에 답글을 달려고 하는데 괜히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개미야! 이 가시나- 잘 지내? 퇴근길에 생각나서 전화했어"

"캭! 뭐야- 나야 잘 지내지, 우리 봐야지"

"너는 어디야? 아직 안산에 있어?"

"나 용인으로 배정받았어"


그렇게 시작한 통화로 그 주 토요일 바로 얼굴을 보기로 했다.


"야! 웬일이야- 잘 지냈어? 우리 2년 전에 보고 처음이지?"

"뭐야, 학교 옮겼으면 연락이라도 하지, 가시나-"

 

여전히 친구는 눈매가 그렁 그렁했고 체구가 작아 여전히 사랑스러웠다. 특히 렌틸콩 만한 입가의 점이 매력적인 친구다. 눈썹도 머릿 털도 까만데다 머리를 허리까지 길려 터키에 사는 어린아이 같았다.


그간의 이야기를 하느라 밥이 도통 줄어들 기미가 보지 않았고 결국 채 먹기도 전에 배가 불렀다.


"우리 차 마시면서 본격적으로 얘기나 할까?"

"그래, 좁지만 밀크티 맛있는 집이 있는데 거기로 가자?"



# 합정에 있는 밀크티 집



그간의 사는 이야기를 한참을 하다가 파란만장 친구의 결혼 승낙 과정을 듣게 되었다. 오랜 시간 교제를 했음에도 아빠의 허락을 구하기가 여간 쉽지 않았던 시간을 공유하고 나니 작은 체구의 친구가 강단 있는 슈퍼우먼처럼 느껴졌다. 이후 결혼 승낙, 상견례, 현재 진행 중인 준비 과정을 듣고 있노라면 어떻게 8년을 버텨왔는지 정말 '대단하다'라는 말이 연거푸 세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두어 시간이 휙- 지나가 있었고 찻 잔은 야무지게 비워져 있었다. 나는 한 여름에도 뜨거운 밀크티를 마신다. 뭔가 더 진한듯하고 실제로도 향이 오래 남는 것 같다. 특히 갑자기 쌀쌀해진 오늘 같은 날에는 입천장을 위협하는 온도로 푹- 끓여나온 밀크티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는 날이면 이 곳에 함께 오게 된다. 이 부드럽고도 진하고, 뜨끈하면서도 달콤한 밀크티를 놓고 마음을 나누다 보면 금세 시간의 공기가 따뜻해 지니까. 


이야기 끝에 학창 시절이 십 년이나 지난 일임을 알게 됐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데 어찌나 충격적이던지


"우린 여전히 그대론데?" 라며 빡빡 우겨보았다.


그 사이 많은 사정을 겪으며 이렇게나 많이 변해버렸는대도 마음은 분명 그때나 지금이나 같으니까. 이런 네가 결혼을 한다니 이젠 정말 어른이 되고 살아있던 그때의 우리가 왕년의 우리가 돼버리는 것 같아서 오늘의 날씨만큼이나 방향 없는 바람이 휘몰아쳤고 뜨거운 만큼 쌀쌀함을 느꼈다.


우리 아무리 바쁘고 녹녹지 않은 삶을 살더라도 간혹 안부 묻고 다시 만날 때까지 잘 살고 있자!

7월 전에 다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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