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나, 운전 중에
주말을 처가에서 보내고 아침 일찍 어디 좀 들렀다가 오후에 집으로 출발했습니다. 억돌이는 오전 일정으로 지쳤는지 금세 잠이 들었고 아내도 피곤한지 점점 말수가 줄어듭니다. 그래서 저는 괜찮으니 자라고 했습니다. 햇볕이 너무 세서 에어컨을 최고로 높여도 차 안이 후끈한 탓에 컨디션이 최상은 아니지만 운전을 못 할 정도는 아니었으니까요.
그러고서 30분쯤 지났을까요, 룸미러로 보니 카시트 맞은편에 달린 거울로 곤히 자는 억돌이가 보이고 슬쩍 고개를 돌리자 아내도 한쪽 뺨을 머리 받침대에 기대고 곯아떨어졌습니다.
그 광경이 흐뭇했습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부인과 자식이 잠든 차를 홀로 꿋꿋이 몰고 가는 남편이라니! 꼭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가장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비록 겨우 1시간 30분 거리였지만. 그중에서 아내가 잠잔 시간은 30분에 불과하지만. 우리 집 가장은 나와 아내 둘이지만. 평소에 억돌이 떼쓰는 소리 참는 것 빼면 희생이랄 것도 없는 삶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런 느낌이 들었고 좋았어요.
왜 그런 느낌이 좋았는지도 알 것 같아요. 평소에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고생하는 남편, 아빠가 아니니까 그런 느낌이 색달랐던 거죠. 평소에도 쇠 빠지게 고생한다면 어휴, 이것들이 내 등골을 아주 뽑아먹으려 하는구나, 싶었을지도 모르죠.
제가 얼마나 고생을 안 하고 사냐 하면, 집에 오니까 아내가 고작 그 정도 운전한 것 갖고 힘들었을 테니까 쉬래요. 억돌이는 자기가 보겠다고. 저녁에는 치킨도 시켜줬어요.
운전 좀 하고 육퇴(육아 퇴근)에 치킨이라면 밑지는 장사는 아니죠.
앞으로 더욱더 고생 모르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