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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찬은 사 먹어도 됩니다

by 김콤마

오늘의 말씀

이렇게 다 해서 16,000원 밖에 안 하니까 사 먹어도 죄책감이 안 들어.

—저녁 식탁에서 아내 혹은 내가 한 말



묵상

억돌이가 태어나기 전 요리는 제가 담당했습니다. 집에서 일하니까 출퇴근하는 아내보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더 있었거든요.


억돌이가 태어난 후로는 반반입니다. 한 명이 억돌이 보고 남은 한 명이 요리해요.


그런데 요즘 들어 요리하는 빈도가 확 줄었어요. 괜찮은 반찬 집을 하나 뚫었거든요. 아내가 동네 친구에게 추천받은 집인데 먹어보니 괜찮아서 일주일에 1~2번씩 반찬을 사다 먹고 있어요.


이 집은 반찬이 다양하지 않고 고기 요리, 튀김 요리가 거의 없다시피 한 게 육식기름칠주의자인 저로서는 아쉬운 점이지만 대신 나물이 맛있어요. 저는 원래 나물은 정말 그거라도 안 먹으면 굶어야 할 지경이 됐을 때나 먹는 사람인데 이 집 나물은 그냥 나물만 갖고도 한 끼 뚝딱 할 수 있을 정도예요. 양념 맛이 강하지 않은데도 채소 특유의 씁쓸하거나 비린 맛이 안 나요.


거기에 더해 가격이 저렴합니다. 오늘 산 걸 보면 나물 5천 원, 가자미구이 3천 원, 두부조림 3천 원, 육개장 5천 원 해서 총 1만 6천 원인데요, 양을 보면 다른 집들보다 기본적으로 1~2천 원 정도씩 저렴해요. 이렇게 사면 둘이서 못 해도 사흘은 먹어요. 하루에 5천 원쯤 쓰는 셈이죠.


그 정도면 직접 요리한다고 재료 사는 비용과 들어가는 수고를 생각했을 때 차라리 사 먹는 게 이득이다 싶은 수준입니다.


사실 예전의 저는 반찬 사 먹는 것에 약간 죄책감을 느꼈어요. 주부라면 많이들 공감하실 텐데 가족에게 정성껏 요리를 해주는 게 주부의 의무 비슷한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아내도 육아 휴직으로 일시적으로 전업 주부가 되니까 비슷한 심정을 말하더군요.


근데 이 집은 반찬을 살 때 죄책감이 안 느껴집니다. 맛있고 싸니까요. 솔직히 저희 두 사람이 다른 반찬은 몰라도 나물은 이 집 절대 못 따라가요. 그런데 싸기까지 하니까 몸에 좋은 나물을 예전보다 많이 먹게 돼서 좋아요.


그리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느낌도 들어요. 사실 요리는 하려고 재료 손질하는 것도 일이지만 끝나고 나서 조리도구 씻고 정리하는 것도 아무리 식기세척기를 쓴다고 한들 귀찮고 손이 많이 가잖아요. 근데 반찬을 사 먹으면 밥 다 먹고 나도 개수대가 텅텅 비어 있어서 얼마나 홀가분한지 모릅니다.


이 집을 이용하면서 삶의 만족도가 부쩍 높아졌어요. 주부 여러분, 부담 없는 가격에 맛있는 반찬을 파는 집을 찾을 수만 있다면 반찬 사 먹는 것 강추입니다.



기도

내일은 고기 사다가 수육으로 몸보신할 계획인데 잡내 안 나고 맛있는 고기 걸리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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