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나를 다정한 사람으로 알고 있지만, 실은 그 다정함도 다 계산된 것이다.
—태재, ⟪스무스⟫
사람들은 저를 공감을 잘하는 사람으로 압니다. 대화를 나눌 때 잘 들어주고 “그랬구나”, “그랬겠네”, “그러니까 이러저러해서 이러저러했단 말이지?”, “저런! 이러저러했겠네!” 같은 말은 잘해줘요.
하지만 그건 제 마음에서 나오는 말이 아닙니다. 머리에서 나오는 거예요.
전 머리가 좀 좋은 거 같아요. 사람들 얘기를 들으면 ‘아, 그래서 기분이 어떠어떠했다는 거구나’, ‘여기서 이런 말을 해주면 좋아하겠구나’, ‘이런 말이 먹히겠구나!’ 하는 계산이 파바박 나오거든요.
그러니까 마음으로 그 사람의 입장이 되는 게 아니라 순전히 내가 보이면 좋을 반응을 머리로 계산하는 거죠.
그렇게 계산적인 인생을 오래 살았더니 이제는 이런 것도 가능해요. 겉으로는 듣는 척하지만 속으로든 딴생각하고 있다가 적절한 타이밍에 지금까지 띄엄띄엄 들은 정보를 대충 종합해서 “아까 김 부장이 사표 썼다더니 아직 수리 안 됐나 봐?”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겁니다.
그러면 상대방은 내가 경청하고 있는 줄 알죠. 질문이 틀렸어도 괜찮아요. 상대방은 자기가 설명을 제대로 안 했거나 그냥 제가 잘못 들은 줄 알 테니까요.
아, 써놓고 보니까 되게 진정성 없는 인간이네요. 위의 문단은 뺄 것 그랬나? 항상 저 수법을 쓴다는 건 아니에요. 좀 듣기 귀찮을 때만 적당히 쓰는 거지.
그런데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원하는 건 자기 말 잘 들어주고 공감을 표현해주는 거잖아요? 근데 실제로는 그렇게 경청과 공감을 잘해주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하지만 저는 비록 계산에서 나온 것일지언정 그들이 원하는 것을 아주 그럴듯하게 제공하잖아요?
그럼 된 거죠, 뭐. 상대방은 원하는 걸 얻고 저는 좋은 사람 코스프레하고 서로 윈윈이에요.
제 기도 건성으로 들으시는 건 아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