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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릴화와 브런치의 매력

by 김콤마

오늘의 말씀

선생님: 좀 떨어져서 보니까 다르죠?

나: 네, 이게 그림인가 싶었는데 떨어져서 보니까 괜찮네요.

—미술학원에서



묵상

벌써 아크릴화 5번째 작품을 그렸습니다. 이번에는 선인장이었는데요, 초록색을 명암만 달리 해서 계속 칠하는데 아무리 봐도 색깔이 조화가 안 되고 이상해요. 제가 쓰는 물감은 초록색 계열이 투명하게 칠해져서 다른 색보다 더 많이 덧칠해야 하는데요, 그러다 보니 원래 칠했던 색보다 진해져서 주위 색보다 튀거나 군데군데 떡진 부분이 많았어요. 그리고 아직 붓질이 익숙하지 않다 보니 색이 덜 칠해져서 캔버스의 하얀 바탕이 점점이 보이고

윤곽선이 깔끔하지 못하고 색이 삐죽삐죽 튀어나와서 보기 싫었어요.


이걸 그림이라고 그렸나 싶었어요.


저는 끈기가 없어요. 그래서 어지간한 건 망쳤다 싶으면 그냥 포기하고 새로 시작하거든요. 아크릴화 그릴 때마다 매번 망쳤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그냥 중간에 캔버스를 불태워버리고 싶어요. 하지만 그건 가르쳐주는 선생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니까 꾹 참고 그림을 끝까지 그립니다. 다 그리고 나서 보면…… 개차반이예요.


그런데 반전은, 좀 떨어져서 보면 괜찮다는 거죠. 특히 어제 그림은 멀찍이서 보니까 가까이서 볼 때와는 정반대로 색깔이 너무 잘 어울리는 거예요. 가까이서 볼 때는 명암이 너무 급격하게 바뀌는 느낌이었는데 멀리서 보니까 자연스러워요. 윤곽선도 깔끔해 보이고요.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제 그림도 가까이서 보면 내가 왜 이 귀한 시간을 써서 이런 쓰레기나 만들고 있나 싶어서 눈물이 날 것 같지만 멀리서 보면 휴, 다행히 쓰레기는 아니야, 하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요.


생각해 보면 제가 브런치를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자기 삶을 가까이에서 보여주잖아요. 브런치에 올라오는 글들 보면 대부분이 나 대단할 거 없는 사람이고 나 이렇게 평범하고 나 이런 게 고민이고 나 이런 데가 부족하고 나 이런 억울한 일 당했고 나 이래서 힘들고 나 이런 말 해주고 싶었는데 못 했어, 하는 얘기예요. 여기저기 지저분하고 빈틈이 많은 제 그림처럼 자신의 약점과 빈틈을 그대로 보여줘요. 가끔은 나 이렇게 찌질한데 나보다 더 찌질한 사람 있어, 라고 천하제일찌질이대회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근데 저는 그렇게 브런치 작가들이 자기 삶을 가까이서 보고 쓴 글을 독자로서 멀리서 보는 입장이잖아요. 그런 제 눈에는 그들이 묘사하는 평범하고 때로는 찌질한 삶이 썩 괜찮아 보여요. 왜냐하면 다들 그래도 잘 살고 있거든요. 다들 그래, 나 이 정도밖에 안 돼, 하지만 안 죽어, 하는 자세로 살고 있거든요. 다들 세상과 인생을 향해 “내가 지금 무릎을 꿇은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다!”라고 외치고 있는 사람들 같거든요.


그래서 브런치에 올라오는 글들을 읽고 나면 기분이 좋아요. 아, 나만 나 자신을 찌질하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었어, 다들 그런 생각 하면서도 자기답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잖아, 하는 생각이 들어요. 다른 SNS를 보면 다들 똑똑하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데 브런치는 정반대예요. 그게 제가 느끼는 브런치의 매력이에요.


저는 오늘부터 저를, 제 삶을 좀 더 멀리서 보는 연습을 해야겠어요. 요즘 너무 가까이서만 보는 것 같아요. 대신 여러분의 삶은 좀 더 가까이서 보고 위로를 얻겠습니다.



다짐

나는 멀리서 보고 남은 가까이서 보자.



제 아크릴화. 창작은 아니고 전부 베껴 그린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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