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게 너무 많아요.
—박경, <꿈꾸는 라디오>
저는 술, 담배 안 합니다. 당구도 안 치고 게임은 하지만 스타와 피파는 안 해요. 스포츠는 하는 건 고사하고 올림픽, 월드컵조차도 안 봅니다.
그러면 무슨 재미로 사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도 재미있어하는 거 많아요. 책 읽기, 영화와 드라마와 예능 보기, 게임하기, 산책하기, 피자와 돈까스와 탕수육 먹기, 쇼핑몰 구경하기, 아내와 말장난하기, 연극 하기(이건 안 한 지 오래됐지만) 등등.
아이가 없을 때는 이 모든 걸 충분히 즐길 수 있었어요. 가령 주말이면 일단 금요일 밤늦게까지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해요. 그러고 자면 토요일 아침 6시에 눈이 번쩍 떠져요. 그러면 일단 아파트 헬스장 가서 가볍게 운동하고 집에 와서 신나게 게임하다가 혼자 나가서 조조 영화 보고 오면 12시쯤 됩니다. 그러면 느지막이 일어난 아내와 점심 뭐 하나 시켜 먹고 같이 텔레비전 보거나 산책을 가거나 쇼핑몰 구경을 가거나 나들이를 가죠. 저녁에 돌아와서는 책 좀 읽고 텔레비전 보고 게임하다 자고요. 일요일도 똑같이 반복입니다.
하지만 억돌이가 태어난 후 그런 생활은 불가능해졌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애 봐야 하니까 밤늦게까지 뭘 하는 건 말도 안 되고요, 아내한테 애 맡기고 몇 시간 동안 영화 보는 건 못할 짓이에요. 저녁에 보러 가면 되지만 애 보느라 힘 다 빠져서 못 가요. 다음날 또 애 보려면 일찍 자야 하고요. 음식 시켜 먹는 것도 애한테 들어가는 돈이 있다 보니 횟수가 확 줄었습니다. 산책, 쇼핑몰 구경, 나들이는 애를 데리고 가니까 쉬는 게 아니라 노동에 가깝습니다.
결국 할 수 있는 건 애 잠든 후에 게임 좀 하고 책 읽는 거예요. 게임할 시간에 텔레비전을 볼 수도 있지만 게임이 더 좋아요. 예전에는 둘 다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중에서 더 좋은 것 하나를 선택해야죠. 시간이 없으니까요.
요즘은 미술에 재미가 붙었어요. 일주일에 하루씩 미술학원 다닌 지 두 달쯤 되니까 슬슬 재미있어지네요. 근데 미술 말고도 하고 싶은 게 생겼어요. 근처 대학교 평생교육원에 노래 발성 수업이 개설된다네요.
문제는 이 역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겁니다. 일주일에 이틀 저녁이나 아내에게 아이를 맡기는 건 종일 아이를 보는 아내에게 못할 짓이에요. 그러니까 미술과 노래 중에서 하나만 배울 수 있어요. 드디어 미술이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는데 여기서 그만두자니 아깝고, 그렇다고 발성 수업을 포기하자니 제가 요즘 가족 말고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시간이 없어서 그런 단체 활동이 좀 필요해요. 미술학원도 여러 명이 수업을 듣지만 각자 자기 그림에 몰두하느라 커뮤니티 성격은 없거든요.
안 그래도 얼마 전에 부모 성향 및 성격 테스트를 했는데 거기서 제가 지금 외롭다고 나왔어요. 그럴 만도 해요. 아내 따라서 연고도 없는 지역에 내려와서 살고 있는데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없거든요. 제가 원래 활동적이거나 붙임성 있는 성격이 아니기도 하지만 사람을 사귈 만한 기회 자체가 별로 없어요. 회사를 다니는 것도 아니고 어떤 모임에 들어가기에는 마흔 직전인 아저씨 받아주는 데도 없거니와 애 키우는 입장에서 친목 도모를 위해 주말이나 저녁 시간을 밖에서 오래 보내는 건 부담스러워서 말이죠.
그런 면에서 보자면 발성 수업이 지금 제 조건에 잘 맞네요. 일주일에 하루 2시간 정도만 투자하면 되고 여럿이서 같이 하는 거니까요. 그렇잖아도 작년 가을, 겨울에 뮤지컬 수업을 들었는데 열 명쯤 되는 사람들이 모여서 같이 노래하니까 좋았거든요. 올해 또 하길 바랐는데 안 하더라고요.
글을 쓰다 보니 마음이 정해졌어요. 미술은 이번 달까지 하고 좀 쉬고 발성 수업을 들어야겠어요.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날 수 있는 체력을 주세요.